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byss Jun 04. 2024

무기력에 대하여 생각하며 쓴 글

2024, 여름

조울증 약을 복용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조증 증상을 인지하지 못했다. 우울증이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분이 들뜨고, 그만큼 조금 예민해지지만 이건 원래 앓던 불안장애의 영향이라고 여겼다. 몇 번이고 불쑥 떠오르는 '하자!'는 생각들. 이걸로 사업을 하자, 새로운 취미를 가지자, 공부를 하자, 운동도 하자...... 끝도 없이 생성되는 목록들. 그게 다 활력이라고 생각했다.


  깨달은 건 그 활력이 점점 내 삶에 불편한 위협으로 다가오면서부터였다. 출근 전 운동이나 공부, 퇴근 후 취미 생활, 쉼 없는 외출이 필요했던 주말. 몸의 피로는 물론이고 정신의 피로도 쌓였다. 이건 좀 이상하다. 그렇게 느낄 때쯤 이미 통장 잔고도 바닥이 났고 이미 뭔가 많은 실수를 저지른 후였다. 수많은 '하자!'에서 비롯된 실패와 뒤따르는 좌절감도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예민해진 것도 평소보다 너무 과했다. 잘 웃다가도 쉽게 울었다. 길을 걷다가 조금만 큰 소리가 들려도 속으로 욕을 씹기 일쑤였다. 회사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수근거림이 모두 내 욕처럼 들렸다.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착각한 것이라고 아무리 나를 다잡으려 해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나 가족을 만나도, 길을 걷다 모르는 사람을 마주쳐도 모두 나를 공격하려는 것 같았다. 과도한 방어와 의심에 지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거나, 폭식에 구토를 반복하고, 세상을 외면한 채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미리 알아봐서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역시 좌절스러웠다. 우울증을 없애려고, 이겨내려고 애썼던 몇 년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다. 나름대로는 노력했는데 병을 키우고만 말았다고 생각이 됐다. 두 번째 지옥을 만난 느낌이었다.


  조증의 영향인지 사람들과 엮이는 모든 활동이 점점 불쾌하고 불편하게 다가왔고,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그래도 괜찮고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치료받으면서 좀 쉬면 나을 거라고. 이때는 조증을 불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증이 지나고 울증이 찾아오자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왜 회사를 뛰쳐나왔을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왜 그렇게 사들였을까,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 후회와 자책, 이제는 익숙한 무기력이 평소보다도 더 무겁게 몸을 짓눌렀다. 계속해서 작아지다가 사라지고 싶었다. 누가 '조증을 그리워하게 된다'라는 표현을 했었는데, 그 말이 뼈저리게 공감이 됐다. 적어도 그때는 뭐든 할 수 있었다. 자주 울어도 자주 웃을 수 있었다. 뭐든 괜찮다고 생각이 됐다. 그리고 울증이 찾아왔을 때는, 정말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다. 아무리 건져도 수렁에 빠진 내가 건져올려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조울증이나 우울증 같은 병의 가장 해로운 점 중 하나는 사람의 생각 자체를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증상은 서서히 진행되고 스스로 알아차리기 힘들다. 물론 생각을 다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아니기에 주변 사람들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나? 아니야, 그럴 이유가 없잖아. 착각했나 보다.'라고 시작된 '이상한 생각'은 진화를 거쳐 그 사람을 향한 공격적인 마음이 된다. '나 너무 늦었나? 아니야, 각자의 속도가 중요하지. 지금 이대로 열심히 하면 돼.' 의 상태였던 생각은 시간이 흘러 '나는 정말 구제불능의 인간이구나. 죽으면 편해지지 않을까?'가 된다. 의심은 확신이 되고, 망상이 된다. 그쯤 되면 내가 이상해진 걸 알면서도...... 고칠 방법을 모르게 된다. 


 지금 내가 그렇다. 누군가 나를 낫게 해 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다. 그게 안 된다면 답을 줄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도무지 혼자서는 못 할 것 같다. 약을 먹고, 조금씩 걷고, 밥도 잘 챙기고 잠도 잘 자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일단 그것부터도 못 하겠고, 그렇게 나를 내버려둔 채로도 시간은 잘만 간다. 이러다가는 더 큰 괴로움이 반드시 온다는 예감에 두렵다. 그걸 피하고 싶어서 사라지고 싶다. 어떻게 해도 이 두려움과 괴로움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분명 잘못된 확신일 것이나 그걸 떨칠 힘이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지금은 살고 말고의 문제도 아닌 느낌이다. 어떻게 버텨야 하나. 언제 끝이 나나. 끝이 있긴 한 건가. 왜 버텨야 하나. 이렇게 힘든 걸 왜 버텨야 하나...... 종일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면 눈물이 나서 울기 싫으니까 최대한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하고 밖에 나가지 않는다. 잠만 잔다. 열심히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하지만 도망쳐온 만큼, 돌아가게 된다면 더 멀고 험한 길이겠지. 


 글을 쓰고 나면 조금은 개운해지니까 이번에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끝을 내야 할지 모르겠다. 힘내야겠다, 열심히 해야겠다. 이렇게 마무리할 수가 없다. 힘내고 싶지 않다. 열심히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정신이 들면 이렇게 눈물이 난다. 정신을 차리고 싶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