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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yss Sep 23. 2024

Digging.08

2024.09


나를 다잡으려는 내 마음보다 시간이 훨씬 빨리 흘러갔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지나면 그칠 줄 알았던 사사로운 눈물은 멎을 기미도 보이지 않지만

울면서도 가야 한다












방금 지나간 계절들을 돌아보자

여전히 회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복싱장에 등록했다가 다쳐서 더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았고

수영장에 등록해서 기존 회원분들의 칭찬 및 교습을 받았다

홈트도 하고 헬스장에 다니기도 하고

새로운 건강식을 알아보고 직접 요리하고

보고 싶은 영화도 많이 예매했다가 조금 보러 갔다











복싱은...... 다니면서 자주 울고 싶었다 실제로 그랬던 것 같고

강도가 높기도 했지만 허약해지고 망가진 신체를 직시하면서 하염없이 속으로 눈물이 나는 기분이었다

나아지고 싶다, 나아지고 싶다...... 수백번 되새긴 말을 달리면서 뛰면서 또 했다

눈물을 참으면서 체육관을 달리고 자세를 잡고...... 익숙해질 때쯤 발을 다쳤다


수영은 재미있었다

수영할 때 호흡과 자세에 집중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강제로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물은 좀 먹지만)

나는 계속 고개를 많이 들어서 다른 회원분께 교정을 받았고 3주가 지나갈 때쯤 겨우 터득했다

고개를 비스듬히 조금만 들어야 하는 거였다

겁이 나서 고개를 바짝 들면 계속 수영하기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숨이 차서 레일 끝에서 쉬어갈 때에도

그냥 멍을 때리면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의식적으로 천천히 호흡하며 숨을 다듬어야 한다는 걸 익혔다

그런 과정들을 배우고 익히는 게 즐거웠다












그리하여 이번에 처음 본 차이밍량 작품들...... 엄청 좋았다

영상으로, 이미지로 전달하는...... 무언가가 크게 다가왔다

언어화하자면 고독이나 그리움일 수도 있는 것들

취향이다 (그래도 아주 가끔 졸릴 때는 있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을 잘 해서 보러 가야 함)


박인환상 공모는 떨어졌지만

최후의 3인(?)에 이름을 올렸다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내가 쓰는 과정은 아직도 첫술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몇 번의 공모 끝에 좋은 평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한 발짝 내딛은 기분이다







 

최근에는 유독 동경이나, 누군가나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던 것은 후지모토 타츠키의 <룩 백>

오아시스의 곡이 떠오르기도 하고, 과거를 뒤돌아본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지만

역시 다가왔던 것은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과정의 소중함'이다


실제로 <룩 백> 영화(만화) 안에서 '등을 보다'라는 네컷만화가 룩 백으로 번역되어 자막으로 나오고 있었기도 하고

주인공이 다른 주인공에게 '너는 내 등을 보며 성장하는구나'라는 대사를 뱉기도 하기에


+ 후지모토 타츠키에 대해서는 따로 내 생각을 정리해 두고 싶다










띄엄띄엄 본 <흑백 요리사>

에드워드 리를 바라보는 고기깡패 씨의 눈빛이 꽤 화제가 되었다

동경하는 사람과 되고 싶은 꿈은 어쩌면 언어만 다른...... 비슷한 게 아닐까?


<룩 백>에서의 후지노 - 쿄모토도 생각나고


또 몇 년 전 부국제에서 남다은 선생님과 나란히 택시에 탔을 때

사실 그때 했던 질문들이나 들었던 조언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데도

내가 되고 싶은 일을 먼저 하고 있는 사람, 그걸로 빛나고 있는 사람 곁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느낌

내가 하고 싶은 '글'이라는 세계에서 나는 아주 작고 어린 아기이고 이 사람은 아주 큰 어른인 느낌

그래서 내가 저 사람을 보며 저렇게 되고 싶다 생각하며 달려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일 때의 기쁨

그 두근거림이 떠올라서 솔직히 엄청 감동 주워먹었다








나 너무 잘 우는 것 같은데

최근에 본 짱구 에피소드에서, 프린세스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지만 프린세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부끄러워 '나도 프린세스를 좋아한다'라고 말하길 주저하는 철수

겨우 용기를 내서 "나도 좋아하는 게 있어!"라고 말했을 때

이 친구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너를 빛나게 해 줘!"라고 대답하고

뭉클해진 철수는 나도 프린세스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이 에피소드 보고 울었다


둘만이 이해할 수 있는 프린세스라는 존재, 나와 같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 이전에 오롯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소중히 했던 내가 있다

철수는 프린세스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서 무척 기뻤을 테지만

또 그 감정 이상으로 프린세스를 소중히 간직해 온 시간들도 무척 소중하고 빛난다










여기까지 가면 너무 과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그냥 사회에서, 이미 친하지 않은 누군가와 가벼운 스몰톡을 할 때

나는 지난 주에 뭘 했냐는 질문이나 요새 좋아하는 거 있냐는 질문이 좀 두렵다


영화 봤다고 하면 뭘 봤냐고 묻는데

내가 보고 좋아하는 영화들을 대답하면 상대방은 당혹스러워하거나

싸가지없는 인간들은 그딴 걸 왜 보냐, 예술병이냐 매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진짜 이걸 좋아하는 건데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말하더라도 그게 기어이 고백이 되어버리고 마는 철수 같은 순간을 나도 종종 느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이 없다는 가벼운 외로움도 아주 가끔












그러나 요새 접한 이야기들, 작품들...... 이런 것들이

새삼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서, 내 애정과 열정에 대해서

계속 간직해도 좋다고 말해 주는 느낌이었다



나는 글을 쓰는 아마추어인데

돈도 안 받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막 보고 쓰고 그런다


이게 참 가끔은 자괴감도 들지만 실력이 늘기까지는 당연한 과정이고

뒤집어 생각하면

돈 안 받고 쓸 때나 이 무책임함을 즐길 수 있으니

내가 훗날 유명한 롸이터가 됐을 때 이 시기를 즐겁게 추억하리라......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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