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논평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7년 이래로 자기만의 별난 방식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왔다. 그렇게 이미 소설가로서 입지를 굳힌 한 사람의 자전적 엮음글들이 자서전이라는 딱지를 피해 조각조각 출현하고 있다. 자신의 달리기 습관에 관한 근사한 단상을 시작으로 아버지를 회고하는 장문의 에세이, 보다 최근에는 자기가 소장하는 티셔츠를 그림을 곁들여 소개하는 글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리고 마침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기에 이른다. 글쓰기 지침서와 회고록의 중간 격인 이 글에서 무라카미는 자신의 젊은 시절의 성취를 되짚으며, 어느덧 작품이 50개 국어 이상으로 번역되고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지금의 무라카미가 있기까지의 역정을 이야기한다. 문학상에 응모하며 원고를 원본째로 제출하고는 결국 1등상을 거머쥐었다는 마법 같은 이야기가 특히 그답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가. 결과적으로 이 책은 꾸밈이 없고, 직설적이고, 상당히 불편하다.
소설가로서 무라카미의 역량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의 소설 14편이 영어로 출판된 가운데 읽을 가치가 없는 작품은 없으며 그중 못해도 3편은 걸작이다. 단연 최고는 1994년에 나온 <태엽 감는 새 연대기>로, 이 작품은 명료하고 겸허한 1인칭 서술로 평범한 도쿄주민의 꿈같은 내면세계를 그리며 무라카미 초기작들의 정점을 찍는다. 간단명료하면서 진솔한 문체로 묘하고 신비로운 자연주의적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 무라카미 작품들의 매력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군데군데 이런 무라카미의 진솔한 사색이 엿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그가 소설가로서의 ‘계시’를 받은 순간에 관한 일화다. 때는 1978년, 도쿄의 어느 야구장. “하늘은 새파랗고 생맥주는 이가 시리도록 시원했으며 푸르른 잔디에 공이 유난히 하얘보였다 …… 그 순간, 아무런 근거도 맥락도 없이 직감했다: 나도 소설가가 될 수 있겠구나”라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몇 안 되는 순간을 제외하면 글들이 대체적으로 기이하고 불평불만에 차 있다. 독창성, 문학상, 해외출판 등 목차만 보면 작가 지망생 또는 현직 작가들에게 유용한 주제를 다룬 책일 것 같다가도, 막상 읽어보면 그저 뭐든지 무라카미 개인의 경험담으로 이야기가 수렴할 뿐이다. 실질적 조언은 미미하면서 작가의 목소리는 뽐내는 듯, 안일한 듯, 고집불통인 듯, 억울해하는 듯하다.
글쓰기는 결코 어렵지 않다고 무라카미는 주장한다. 그는 “솔직히 말해, 글 쓰는 게 고역인 적이 없었다”며 “즐겁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고통에 신음하는 작가’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소설이란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이것이 무라카미 자신의 거침없는 작품활동을 설명해 줄지는 모르지만, 이 발언을 두고 이 땅의 수많은 작가 유망주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 마땅한가? 여러 차례에 걸쳐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무라카미와 달리 프루스트와 오웰을 위시한 대다수의 작가들이 생각을 달리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무라카미가 자신의 경험만으로 얘기를 풀어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나, 그 경험에 지나치게 손발이 묶인 모양새다. 문학상에 관한 부분에서 이 책은 바닥을 친다. 문학상 심사위원을 맡은 적이 없는 것에 대해 “나는 개인주의자다. 나는 나만의 비전이 있고 그걸 실현해내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고 한다. 평론가들에 대해서는 “내 유일한 안위이자 구원은 그동안 이렇게도 많은 평론가들이 내 작품을 맹비난했다는 것”이라며 “나는 그저 하루키인 것으로 만족한다”고 못을 박는다.
더 심각한 것은 무라카미의 현실외면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순히 입지를 다진 소설가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일본문학, 더 나아가 세계 문학계의 거성이며, 작품 하나로 사람들을 구름처럼 집결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이 세상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 사실에 정작 본인은 기분 좋아하면서도 애써 관심을 안 두려는 눈치다. 스스로 밝히길 “거짓말이 아니라 나의 여성팬들은 다들 아름답다. 그 밖의 공통점은 전혀 없다”고 한다. 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런 무라카미 특유의 덕(德)이 그의 소설의 핵심이라는 것이 난점이다. 그의 소설은 말보다는 심상의 진실성을 드러내며 인물 하나하나에는 지는 해와 가느다란 달과 한 줄기 파도와 각자의 삶을 사는 정든 이들이 깃들어 있다. 그런 무라카미가 여기서는 상상력을 거두고 성격이 정반대인 설명문을 써야 했던 것이다.
얼마 전 영국의 만텔(Mantel)이 죽었을 때, 가슴 깊이 슬픔을 느꼈다. 사람의 의식을 소재로 삼으며 자아성찰과, 삶의 의미와, 우리 안의 미와 파괴의 본능을 다룰 수 있다는 게 소설의 힘이다. 그것을 대중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가 만텔이었다. 무라카미 또한 그렇다. 그런 소설가로서의 무라카미의 경험담이 어딘지 모르게 단편적이고 기묘하다는 건 어쩌면 길들지 않은 그의 무한한 재능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벨로우(Bellow)가 한 말이 있다. “나는 조류학자가 아니다. 새다.”
원작: Charles Fi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