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그맨>
'신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는 말이 있다. 신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불행하다고 느낄 때 또는 고통스럽다고 느낄 때 무엇을 믿고 무엇에 기대는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종교에 의지하고, 자신의 신념으로 버티기도 한다. 영화 <도그맨>은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개를 통해 구원받은 한 남자의 처연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
뤽 베송 감독의 신작 <도그맨>은 프랑스 낭만파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문장으로 막을 올린다. 주인공에게 닥쳐올 시련과 이를 감당하게 하는 재를 드러내는 강렬한 한 줄이다. 이런 '불행'과 '구원자'의 서사는 뤽 베송의 영화 세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레파토리다. 위 인용구만으로 감독의 여러 영화들을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의 대표작 <레옹> 역시 킬러 레옹이 홀로 살아남은 10대 소녀 마틸다를 구원해주는 줄거리로 요약될 수 있다. <도그맨>은 40년간 20편에 달하는 작품을 연출한 뤽 베송의 필모그래피를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더글러스는 지금까지 감독이 창조해온 모든 캐릭터들의 집약체다.
※ 이 글은 <도그맨>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 뉴저지의 한 마을. 핑크 드레스를 입고 여성 행색을 한 남자가 경찰에 체포된다. 체포 당시 그가 운전하던 트럭의 뒷칸에는 몇십 마리의 개들이 타고 있다. 이를 보고 난색을 표하는 경찰들은 곤란하기 짝이 없다. 아이를 돌보고 있던 정신과 의사 에블린(조니카 T. 깁스)은 급히 경찰서로 출근하게 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가 금발의 가발을 벗으며 자신의 처연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심문이 시작된다. 인간보다 개들을 더 사랑하고 수백 마리의 개들과 함께 지내온 더글러스(케일럽 랜드리 존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어떤 큰 불행이 있었기에, 신은 이토록 많은 개들을 그에게 보낸 것일까.
더글러스는 에블린에게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투견용 개를 사육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개들에게 사랑을 주다 형에게 들키고, 가족과 개들 중에 누가 너의 가족인지 묻는 아버지에게 '개들'이라고 대답하자 끔찍한 벌을 받게 된다. 결국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린 더글스는 개가 살고 있는 철장에 갇혀버리고 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척수에 부상을 입게 되지만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그는 개들과 힘을 합쳐 불행의 덫에서 벗어나려 한다.
뤽 베송 감독은 5살 아이가 아버지에 의해 4년간 철장에서 가두어져 자라다가 구출됐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계획했다. 작품은 유년기에 사랑이라고는 받아본 적 없지만, 개들한테만은 조건 없는 사랑을 받은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라는 상상에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의 고통에서 한발짝 나아가려 했던 더글러스는 자신의 곁을 지켜준 개들과 함께 다시 태어난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현실의 각박함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보육원에서 만난 연극 교사 셀마(그레이스 팔마)를 사랑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고, 신체적 장애로 인해 일자리 하나 얻기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글라스는 고통에서 한발짝 나아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예술적 재능을 노래 한 곡의 시간 동안 펼쳐내며 잠시나마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잊는다.
더글러스는 짙은 화장과 가발, 화려한 의상 속에 자신을 감추고 매번 다른 캐릭터로 변장한다. 이는 더글러스가 상황에 따라서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가고, 페르소나를 통해 그는 생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은유하고 있다. 분장을 지우면 '도그맨'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지만, 개와 대척점에 있는 인간을 상대할 때는 분장을 하며 자신을 보호한다.
한편, 그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기보다는 삶을 일찍이 깨닫고 자신의 영역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에디트 피아프의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d rien)'의 가사처럼 어떤 위로를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훔친 보석으로 돈을 벌거나 부를 증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믿는 개들과 함께 지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영위한다. 인간이 사랑받고 싶어하는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더글러스는 개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을 알수록 개가 더 좋아져요. 허영심 없는 아름다움, 오만함 없는 힘, 잔인함 없는 용기. 인간의 미덕은 갖추되 악덕은 없죠. 내가 알기로 개의 결점은 딱 하나예요. 인간을 믿는다는 것." 인간에 대한 배신감,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들 때 이 작품을 감상한다면, 그 순간만큼은 구원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도그맨>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매력적인 서사와 개에 대한 폭력 없는 연출이 돋보이기도 한다.
끝으로 영화 <도그맨>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
신이 함께라면 고통이, 개와 함께라면 구원일지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