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미집>
'영화에 관한 영화'가 다시금 찾아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난 2~3년 사이에 영화에 관한 영화(메타 영화 형식)가 줄곧 나왔다. 데이미언 셔젤의 <바빌론>,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 난니 모레티의 <찬란한 내일로>가 대표적이다. 지난 가을, 김지운 감독도 영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고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거미집>이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거미집>은 1970년대 한국 영화 현장에 대한 오마주이자 불안에 시달리는 예술가의 고뇌와 고백을 담은 영화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지운 감독은 <거미집>을 각자가 자신에게 영화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소환하고 재정립하고 재정의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때였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런 소회라든가 성찰, 상념들을 반영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진지한 드라마 같겠지만 그 속에서는 배우들의 앙상블을 중심으로 한 소동극이자 유쾌함과 처절함을 오가는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은 <거미집>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70년 신성필림 스튜디오, 김열 감독(송강호)의 '거미집'이 재촬영 중이다. 이미 완성된 작품의 결말을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것이라는 열망에 빠진 김 감독은 스튜디오의 후계자 신미도(전여빈)의 도움을 받아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재촬영을 도전한다. 문공부의 검열과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라는 악조건 속에서 김 감독은 원하는대로 '거미집'을 완성할 수 있을까? 액자식 구성을 통해 우리가 보는 작품 <거미집>과 김 감독이 만드는 작품 '거미집' 두 가지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작품 속 작품이라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영화의 의미, 감독의 역할 등을 자연스레 고찰하게 된다.
영화 속 김열 감독이 연출하는 '거미집'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 3부작을 연상케 한다. 집에 들어온 하녀, 그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집안의 남성, 그녀를 쫓아내려는 집안의 여성이라는 캐릭터는 젊은 여공인 한유림(정수정), 공장 사장인 강호세(오정세), 호세의 처 이민자(임수정)의 관계와 오버랩된다. 고부갈등을 겪고 있는 집안의 두 여성의 대립도 유사하다. 미장센 측면에서도 김기영 감독의 여러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가파른 계단이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한다는 점, 벽에 장식된 무수한 접시들은 <하녀> 시리즈의 시계들과 닮아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러나 김지운 감독이 각색한 부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신상호 감독(정우성)의 존재, 쁠랑세캉스(한 씬을 컷 없이 한 번에 찍는 것), 영화 속 영화의 후반부 장면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김지운 감독이 추가한 요소들이다. 그리고 '거미집'에서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여성 캐릭터를 욕망의 캐릭터로 바꿔 여성 서사를 만들었다는 것, 후반부에 들어서 '거미집'과 '거미집' 밖이 아수라장 소동극이 된다는 것도 1970년대 한국 영화보다는 현대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영화 속에서 영화와 영화 밖 세상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려지는데,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영화 밖과 영화 속 제목이 <거미집>과 '거미집'으로 동일하다. 세트장 안에 설치된 계단과 스튜디오-사무실로 이동할 수 있는 계단은 금고로 향하는 길이라는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호세와 한유림은 부정의 관계인데 영화 밖에서도 불륜으로 얽혀 있다. 그리고 영화 안팎으로 펼쳐지는 강력한 여성 서사가 두드러진다. '거미집'의 후반부에 이미자와 한유림이 남아있듯이, 신성필림 대표는 백 회장(장영남), 후계자는 신미도로 계승된다.
<거미집>은 세상과 벽을 치기보단 둘 사이에서 거미집을 치듯 얽히고 섥힌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미루어 볼 수 있는 영화적 태도는 바로 '영화란 독립된 무언가라기보단 세상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거미집>에는 1970년대를 경유하는 영화예술에 대한 낭만 어린 시선이 담겨 있다. 김지운 감독은 처음 영화를 알게 됐고 영화를 사랑하게 됐던 때에 그 당시에 했던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들, 그리고 영화를 만들면서 현장에서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을 영화 안에 반영하였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재능과 욕망을 모두 실현하고 싶은 창작자의 마음을 김열 감독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투영하고 그가 가진 믿음과 고집으로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한다.
극중극이라는 형식이 관객에게는 호불호의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이는 그간 김지운 감독이 내놓은 작품 중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거론할 수 있다. <거미집>은 말그대로 영화 얘기인데 과연 OTT로 개봉하고, 한편에 끝나는 형식이 아닌 시리즈물로 연재됐다면 우리가 아는 <거미집>이 되었을까 질문하게끔 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했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영화적인 자존심을 지켜낸 것이다. 이는 한 창작자로서 사명감을 지켜낸 것과 다름이 없다.
끝으로 영화 <거미집>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스터피스를 향한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