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니 음악 영화 3부작
※ 이 글은 2018년에 작성한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음악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접하고 편히 즐길 수 있는 예술이다. 타 예술 분야와 비교되는 음악의 큰 장점은 레코드판(LP)이 나오던 시절보다 편리한 방법으로 찾아 들을 수 있고, 지식의 정도가 아닌 자신의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음악은 청취자(Listener)의 위치에서 머무르지 않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겸비해 싱어송라이터처럼 직접 음악가(Musician)로 활동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다면 '음악'이란 우리에게 무슨 존재이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음악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당시 느꼈던 감정을 떠올리게 하고, 마치 내 이야기 같다며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또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동반자이고 특별한 일을 하게끔 영감을 일깨운다. 음악에 대한 인상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음악이 영화와 만나면 어떨까? 영화는 이미지가 주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연히 '시청각 매체'다. 음악은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이끌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묘사하며 행동 변화를 표현하는 데에 탁월한 역할을 한다. 음악은 그저 단순한 영화 서사를 뒷받침하는 보조장치가 아니다.
20세기 고전인 <사운드 오브 뮤직>(1965)부터 래퍼 에미넴이 직접 출연해 자신의 일대기를 그린 <8마일>(2002), 코믹함이 묻어나는 <스쿨 오브 락>(2003), 피아노의 선율이 인상적인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극적인 긴장감을 안겨주는 <위플래쉬>(2014) 그리고 꾸준한 인기를 보여주는 <라라랜드>(2016)까지. 모두 음악을 소재로 사용하고 주제로 한 '음악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영화의 중심이 되는 영화 삽입곡(OST)은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다.
음악 영화에서 강건한 행보를 걷는 사람이 있다. 바로 존 카니(John Carney) 감독이다. 1972년에 태어난 그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연출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일랜드 스타 감독이다. 그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록 밴드 더 플레임즈(The Flames)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단편영화 <샤이닝 스타>, <호텔>과 같이 자신이 속한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노벰버 애프터눈>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했다. 이 영화는 저예산 흑백영화로, 1997년 아이리쉬 타임즈 최고 작품으로 선정됐다. 이어 1998년에 연출한 <저스트 인 타임>은 당해에도 아이리쉬 타임즈 선정 최고의 TV의 영화로 뽑혔다.
이처럼 존 카니 감독은 아일랜드 내에서 영화와 TV 시리즈 면에서 높은 인기를 끌며 각본가와 영화감독으로서 입지도 함께 굳혀나갔다. 밴드에서의 음악생활은 존 카니 감독이 처음 영화를 연출하는 것부터 '음악 영화'라는 장르를 다루는 데에 있어 결정적인 동기가 됐다. 신기한 점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버트 로드리게즈, 존 카펜터처럼 음악 면을 손대는 영화감독들은 많았지만, 그처럼 록 밴드 출신의 영화감독은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존 카니 감독은 같은 밴드의 일원이었던 글렌 핸사드(Glen Hensard)를 남자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례 없는 형식의 음악 영화를 선보였다. 그는 출연 배우들의 뜬금 없는 군무, 과장된 표현과 액션 연기 등을 버무린 전형적인 뮤지컬 영화에서 탈피해 영화의 전개와 음악이 하나가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영화를 제작했다. 새로운 형식 외에도 저예산 영화에서 오는 날것의 분위기가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에 제격이었다.
핸드헬드(Hand-Held)로 찍어 조금씩 흔들렸고, 전용 세트도 없어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다가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장소를 옮겨 촬영해야 했다. 이런 제작환경은 감독의 고향인 아일랜드 더블린 시내 곳곳을 세밀하게 담아내기도 했다. 즉, 기존에 음악을 활용한 영화들이 스토리와 음악이 따로 흘러가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면, <원스>에서는 음악 자체가 스토리가 되며, 음악으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을 연결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존 카니 감독의 첫 음악 영화 <원스>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동시에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단순히 대사에 음율을 실어낸 것이 아닌 노래 자체가 영화의 주제며 목적인 것이다. 이 영화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감정적인 요소를 중요시하는 사람, 영화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모두의 마음을 훔쳤다. 이 영화는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가져가면서, 존 카니를 단번에 음악 영화의 거장의 자리에 올렸다.
이후 제23회 선댄스영화제, 더블린국제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이에 영화 삽입곡 'Falling Slowly'는 200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으며 전 세계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은 노래임을 입증했다.
짙은 감성을 녹여낸 'Falling Slowly'
설렘 가득한 'Fallen From The Sky'
실연의 절규가 흐르는 'Leave'
떠난 연인에 대한 처절한 음성이 느껴지는 'Lies'
슬픔과 고통에 울부짖고 싶어지는 'Say To Me Now'
가슴 한 켠 미어지는 처연함의 'If You Want Me'
<원스>로부터 7년 뒤 그는 두 번째 음악 영화 <비긴 어게인>을 발표했다. 전작보다 화려한 캐스팅으로 눈길을 끌었는데,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던 록 밴드 마룬파이브(Maroon Five)의 보컬과 기타 애덤 리바인(Adam Levine)과 보장된 연기는 물론 뛰어난 노래 실력까지 갖추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가 영화 주연으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적 역량에 힘입어 노래와 영화의 조화는 또 다시 존 카니 감독이 음악 영화의 대가임을 다시 한 번 알려줬다.
<비긴 어게인>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으며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더빙하는 미션을 수행했을 정도로 인지도를 높였다. 작품의 OST인 'Lost Stars'는 마룬파이브의 팬들을 더 양산해내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국내에서는 <원스>를 능가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아쉬운 점이 여러 존재한다. 전작에 비해 배우들의 연기가 많이 다듬어졌고 감정 표현은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게다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외면당하고 음악을 통해 스스로 우뚝 선다는 줄거리 역시 흔다는 평도 있다.
통기타와 피아노 반주가 어우러진 'A Step You Can't Take Back'
나긋하면서도 선명한 보컬의 'Like A Fool'
센치하면서도 담담한 'Coming Up Roses'
남녀 보컬의 서로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Lost Stars'
록 음악의 박력 넘치는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그 후 2016년 여름, 존 카니 감독은 음악 영화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세 번째 영화 <싱 스트리트>를 들고 돌아왔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MTV 시대를 맞아 호황을 누렸던 뮤직비디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퍼포머스적인 요소를 더했다.
<싱 스트리트>는 존 카니 감독의 10대 시절 밴드 활동 모습을 고스란히 녹여낸 것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영화에 줄곧 등장하는 듀란듀란의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John Taylor)가 누군지도 모르던 주인공 '코너'에게 음악의 매력에 눈을 뜨게 한 것도 뮤직비디오였고, 그가 첫눈에 반한 여인 '라피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민 것 역시 뮤직비디오였다. 감독 자신이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던 경험이 영화에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앞선 두 영화는 어쿠스틱한 분위기의 곡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신디사이저와 일렉트릭 기타로 대변되는 시대의 밴드 연주와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B급 뮤직비디오의 케미로 다양한 음악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싱 스트리트>는 영화의 형식적인 측면뿐 아니라 주인공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동시에 한 사람에게, 여러 사람에게 음악이 발휘하는 힘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첫눈에 반한 미지의 여인에 대한 'The Riddle Of The Model'
첫사랑을 향한 설렘을 표현하는 'Up'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학교에 대한 반발심을 드러내는 'Drive It Like You Stole It'
미숙하지만 진정성 있는 사랑이 돋보이는 'To Find You'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도전을 담은 'Go Now'
존 카니 감독의 작품은 깔끔하고 잔잔한 매력으로 이야기와 음악을 조화롭게 그려낸다. 지극히 현실적인 스토리에 인물들의 솔직한 감정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담아낸 <원스>는 투박하지만 따뜻한 어쿠스틱 기타의 음색, 노래를 통해 상처를 딛고 자신의 분야에 재개하는 <비긴 어게인>은 포크 발라드와 일렉 기타 솔로의 조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정을 배우며 성장하는 <싱 스트리트>는 풋풋한 록 트랙과 레트로 음악이 각 영화의 독특한 매력을 살린다.
그리고 세 영화는 격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전달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우리가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문득 깨닫게 한다. 등장인물 또한 우리와 비교했을 때 결코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거리를 떠도는 힘든 청춘, 중년 퇴물 프로듀서와 무명 싱어송라이터, 빈곤한 가정의 청소년들은 모두 삶을 노래한다. 이들은 우리처럼 저마다 삶의 고통을 겪지만 이를 '음악'이라는 고통된 힘으로 극복해 나간다.
존 카니 감독의 음악 영화 3부작은 평소 음악에 대한 애정과 경험을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즉, 음악이 감독 자신뿐 아니라 등장인물 삶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그의 영화에서 음악이란 삶 그 자체였다면, 그는 영화를 통해 관객인 '우리' 삶에서 음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혹은 어떤 존재인지 상시시켜준다.
끝으로 세 영화에 대한 별점과 한줄평을 남기려 한다.
<원스>
★★★★
음악영화 또는 영화음악, 그 이상의 영화.
<비긴 어게인>
★★★☆
한 때는 그랬지만, 다시 한번 일어나 거리 위에 발 디딜 그대에게.
<싱 스트리트>
★★★★
처음이라는 단어가 음악을 만났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