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 여러 생물학적 지식이 필요한 간호학과는, 문과보다는 이과에 더 가까운 과목임이 분명한데도, 내가 사랑하던 수학과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학 영재에 대한 자부심으로 교양과목으로 "화학"을 들었는데, 화학과 학생들 사이에서 간호학과 학생이 중간고사에서 3등 안에 드는 일이 벌어졌다.
화학과 교수님은 내가 왜 간호학과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셨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학과공부를 할 때는 나은 편이었지만, 실습을 시작하자 나는 나의 선택을 되돌리고 싶어졌다. 내가 생각했던 막연한 미래의 나는, 조용한 실험실에서 공식을 계산하거나, 논문을 읽거나, 실험결과를 분석하거나 하는 모습이었지, 웃으면서 "환자분, 혈압 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내가 숫자와 씨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 매일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그것도 몸이 아파 신경이 날카로워진 사람들과 씨름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한 번씩 내가 떠밀려온 간호사라는 외딴섬에서 헛웃음이 났지만, 이 섬을 떠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그저 열심히 생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쩌다 보니, 호주 간호사
주변에서 이야기했듯이 간호사 면허를 받고, 취업을 하는 과정은 다른 직업들에 비하면 순탄했다. 차라리 그 과정들이 순탄하지 않았다면 그때 진로를 바꿔서 지금은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은 너무나 순탄해서, 다른 학과의 친구들이 스펙을 만들고 취업에 여념이 없었을 때, 나는 병원으로의 취업을 확정 짓고 그들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며 뉴질랜드로 어학연수 겸 여행을 갈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병원에서 직장인으로서, 간호사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자, 동정의 눈길을 받는 건 내가 되었다.
지금 간호사의 근무 환경을 둘러싼 많은 논란들은 10년 전에도 똑같이 존재했다. 부당한 추가 근무, 환자와 보호자로부터의 언어폭력, 선배 간호사들로부터의 태움 등등. 많은 부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 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매번 많은 사람들 대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내과에 발령을 받았었는데, 병상 수가 60 병상으로 그 당시 내가 일하던 병원에서 최대 규모의 병동이었다. 병동은 항상 만원이었으니, 매일 60명의 환자와 보호자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었다.
신규인 나는 모든 환자들의 이름과 병명을 외울 수 조차 없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이 병명과는 관계가 없었다. 아니, 관계가 있었지만, 나는 그 관계를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분명히 질병과 그에 대한 간호에 대해서 배웠는데, 매일매일 바뀌는 60명의 질병과 간호에 대해서 생각할 여력이 없었고 앞으로도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경력이 쌓이면 충분히 가능했을 이야기이지만, 그저 신규였던 나는 수간호사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