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호] 2025년, 무엇을 배우셨나요?
예수가 태어난 지 2025년. 모두 그가 태어난 날을 알고 있다. 12월 25일. 성탄절이라 한다. 생일은 살아있는 동안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한 날이다. 예수는 살아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니니까 말이다.
오아린이 태어난 지는 40년이 되었다. 독자는 내가 말하기 전까지 내 생일을 모른다. 9월 22일. 가을 생이다. 나는 생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지금까지 태어난 것을 수없이 축하받았다. 나는 분명히 살아있다. 하지만 나와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은 내 글을 읽지 못한다면 나의 생을 알 리가 없다. 글 또한 눈에 보여야 생명을 가진다.
예수는 신성한 능력을 가졌으므로 그의 말과 행동은 모두 기록이 되었다. 과학적으로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분의 신화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과학자의 수보다 우주의 별만큼 많다. 심지어 과학자 중에도 기독교인이 적지 않다. 글이 주는 믿음은 과학의 객관성을 초월한다. 그것은 모두 성경에 담겼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1위라는 부동의 자리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어떤 과학책도 성경을 이긴 적 없다.
나는 기록에 남겨질 만한 능력이 없는 아주 평범한 인간이다. 과학적으로 따져보아도 내가 가진 모든 재주는 평생 갈고 닦아도 염력이나 초능력으로 발전될 리 없다. 그러니 잊혀지는 게 자연스러울 내가, 의미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는 나를 믿어야 하며, 나는 나를 추앙해야 한다. 그것은 모두 내 글에 담겼다. 많이 읽히지 않는 글이 될지라도 나는 내 글을 아낀다. 내 글이 곧 내가 될 것이니. 어떤 책에서도 나를 다룬 적이 없어 희소한 가치로는 성경을 이긴다.
예수는 죽어서도 살아있다. 그의 행적을 다룬 책을 읽은 자들에 의해서이다. 독자는 독자를 낳았고 독자가 아닌 자들까지 그의 말들을 안다. 유명한 것이 이유가 되어 또다시 유명해진다. 유명 바이러스는 국경과 세대를 넘어 계속해서 증식할 것이다.
나는 살아서 죽지 않기 위해서 계속 꺼내 보이려 한다. 자가 증식력이 없어 나는 매번 하나의 나를 낳아야 한다. 그것이 되레 나를 키울지 모른다. 잊힐 나를 문장에 담는다. 늙어질 나는 어렸던 나에게 배우리라. 2025년에 썼던 글을 통해 나는 비로소 나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