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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삭 Feb 28. 2024

바다에 녹은 건
소금뿐만은 아닐 거야

「바닷마을 다이어리」 , 2015

주인공들

「바닷마을 다이어리(海街diary)」 , 2015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아아예 하루카, 히로세 스즈 외

예고편


  최근 「괴물」을 제작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2015년작 「바닷마을 다이어리」입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부모의 품에서 멀어져 서로에게 의지하며 자라온 세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와 그녀들의 의붓 동생인 스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코끝이 찡해지는 짠내가 길거리에 들이차는 마을. 그 속에서 지지고 볶고 사는 사람들. 언제나 그렇듯 고레에다 감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 같진 않은'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특히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라는 지지대 없이 함께 일어서야 했던 자매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죠.


  또한 작품은 실제 바닷가가 있는 일본 간토 지방 중 카마쿠라를 주 무대로, 수많은 장면이 공간만으로 기억에 남을 정도로 생생한 로컬함과 아름다운 광경을 안겨주기도 하는데요. 


아름다운 공간

  유명한 벚꽃 터널 장면 말고도 인서트 샷으로 쓰인 마을의 전경들은 방부의 세월이 따뜻하게 쌓여 직접 방문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게 합니다.


시놉시스

어릴 적 자신들을 버리고 가버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세 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는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이복 자매 스즈를 만난다.
세 자매는 스즈에게 작은 해변 마을인 가마쿠라에서 같이 살 것을 제안하고,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가족과 삶의 의미에 관해 깨닫는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I

줄거리

여기가 네 집이야. 언제까지나.

  

왼쪽부터 치카, 사치, 요시노

   15년 전 불륜을 저지르고 가족들을 버린 아버지. 남겨진 세 자매를 외가댁에 맡긴 채 재혼해 버린 어머니. 그 뒤로 서로에게 의지하며 자라온 자매들에게 부모님이란 흔하고도 멀기만 한 존재입니다. 


  비록 어릴 적 상처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삼자매 사치, 요시노, 치카는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먼 길을 달려 장례식장으로 향하며 영화는 시작됩니다.


  첩첩산중에 있는 촌동네에 도착한 세 사람. 그녀들은 기차역으로 마중 나온 스즈라는 여자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스즈

  어리지만 공손하고 성숙한 스즈의 모습에 그녀들은 신기함 내지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데요.


  스즈는 세 자매의 아버지의 내연녀의 딸입니다. 사실상 의붓 동생인 셈이죠. 어릴 때부터 꽤 굴곡 있는 삶을 살아왔음이 드러나듯 그녀의 행동에는 아이의 천진난만함 대신 선의의 뒷걸음질이 서려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이야기의 구분선에 대해 움츠리는 인물.


  하지만 그런 스즈가 어딘가 안쓰러웠던 세 자매는 스즈에게 함께 살지 않겠냐고 말하고, 스즈는 잠시 순수한 소녀로 다시 돌아간 듯 반짝이는 눈으로 그러겠다고 답합니다.


  엄마처럼 잔소리를 퍼붓기도 하지만 또 엄마처럼 현명한 조언을 하기도 하고 따뜻하게 안아주기도 하는 큰언니 사치. 어딘가 철없어 보이지만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는 둘째 요시노. 그리고 아직 어린애 같아 보이지만 알 건 다 아는 구 막내와 현 막내, 치카스즈


  한 지붕 아래 네 사람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같은 핏줄이지만 피 속에 서린 상처가 가득해 그녀들은 삐걱대고 충돌하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II

성장의 격차

맏이와 막내


  작 중 가장 큰 충돌과 성장을 보이는 인물들은 아마 사치와 스즈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맏이인 사치는 스즈를 데려와 살자고 앞장서 주장한 만큼 주변의 걱정과 작은 소란들을 통제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는데요.


  그 이전에도 사치는 자신의 두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첫째의 습관 때문에 잔소리를 하면서도 살뜰하게 챙겨주는 등 마치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는 듯 보입니다.


스즈와 사치

  다만 그녀가 그런 역할을 동경하고 원했던 것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치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자매들에게 동아줄이나 다름없었던 어머니가 재혼해 버리자 큰 배신감을 느끼고 성인이 된 이후로도 그녀를 멀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동시에 사치 본인도 유부남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등 괴리가 많은 인물이죠.


  자신도 사랑을 만나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지만, 밀물이 왔으니 썰물에 빠져나가는 바다처럼, 가지 말라고 허겁지겁 붙잡아 보지만 손에 남은 건 젖은 흙과 눈이 시큰해지는 짠내뿐.  


  먼저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나이와 세월의 격차. 그러나 촘촘한 나이테에도 두껍지 않았던 그녀의 성장은 영화가 진행되며 비로소 단단해지고 가지를 뻗어나가 열매를 맺는데요.


  중반부에는 사치가 그동안 엄마의 역할을 했던 이유, 스즈를 집에 들이기로 한 이유로서 아이러니하게도 미성숙한 그녀의 면모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사명감이나 가족애보다는 조금 더 개인적이고 치기 어린 이유로.


  사치는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잊히지 않는 상처를 준 어머니에게 "난 당신 하고는 달라"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스즈를 친딸처럼 보란 듯이 소개하거나 남들의 진심 어린 걱정을 흘려듣는 등 나이를 먹음에도 더더욱 이해가지 않는 부모의 형상, 사치는 마음 깊이 남은 그것을 정정하고자 합니다.


자매들

  한 편 막내인 스즈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아이입니다. 스즈는 분명 자신에게 무관심하지 않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언니들 사이에서 어릴 적 느끼지 못했던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는데요.


  그러나 세 자매와의 동거가 길어지며 유대가 깊어지고 그녀들의 상처를 알게 될수록 마음 안에서는 미안함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세 자매의 가정을 붕괴시킨 것이나 다름없기에, 언니들과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에 마음 깊이 죄책감을 느끼죠. 


  사과하고 싶지만 스즈 역시 사과를 제대로 받아본 적 있던가요.


  사치와 스즈는 이토록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성장의 격차는 가장 적은 인물들입니다. 


  장녀지만 아직 어릴 적의 상처에 머물러있는 사치와 굴곡진 삶으로 아이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생각이 부쩍 자라 버린 스즈.





III

다녀왔습니다

탓하지 않는 사람들  


바닷가

  그럼에도 그녀들은 가족입니다. 상처가 없는 게 아닌, 용서가 더 따뜻해지는 관계죠.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클라이맥스에서 스즈는 결국 자신의 가슴속에 채워지던 울음 섞인 말들을 사치에게 고백하게 되는데요. 사치는 한 때 자신들을 무책임하게 떠난 친모를 탓하던 스스로의 모습을 보는 듯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의 탓도 아니야.


  정말로 누구도 원인이 아닌 건 아니지만, 탓해야 하는 것은 또 아닙니다.


  스즈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곧 사치 자신에게도, 그리고 이 복잡한 가정사에 눈물을 흘린 모두에게도 건네는 말인 셈입니다. 


  정말로 지금이란 시간의 결과물에 누구의 책임도 매달려있지 않다기보다는 그저 그것을 자신이 품던 사랑으로 스쳐 보낼지, 아님 서슬 퍼런 마음으로 탓을 하게 될지의 차이일 뿐이죠.


  탓하는 사람들이 옹졸하고 철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지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인물들은 스쳐 보내지 못해 스스로 상처받고 힘들어하며 삶을 조금씩 갉아먹게 되거든요.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나를 위해서라도 스쳐 보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새어 나오는 한숨과 사회 속 나의 선호가 우선시되지 않는 선택지. 그러한 일상 속에서 몸에 흙먼지가 묻은 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다녀왔어", 혹은 "다녀오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뜨뜻한 물에 몸을 담거나 씻는다. 


  형제자매의 성격이 대부분 다르듯 모두 다른 성향을 지닌 네 명은 지나가는 나날들을 부딪혀가며 삶에 익숙해지고, 그러도록 불친절하게 설계된 세상 속에서 흉터를 간직한 채 살아간다. 


  자신들에게 상처를 주고, 주어야 했던 사람들. 또 자신들이 상처를 주었고, 주고야 말았으며 주어야 했던 이들에 대해. 조용히 다가오고 거리를 두는 바닷물처럼, 하지만 그 바다엔 소금만 녹아있는 게 아닐 것만 같은. 마음 어딘가가 뭉클해져 오는 하늬바람.







가족

  가족이라는 집합체는 자의든 타의든 함께 살을 맞대며 살아가는 경우가 대다수고, 그로 인해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선이나 분위기 자체에 대한 감정 이입의 유도가 비교적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점을 이용해 과도한 신파에 기대는 영화가 심심치 않게 나오기도 한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어느 가족」이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등의 영화를 볼 때 히로카즈의 작품들을 볼 때면 간간히 충격에 빠지곤 합니다. 


  그가 표현해 내는 가족의 민낯. 그들은 때때로 서로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들은 때때로 하늘 같던 가족 중 누군가의 볼품없는 모습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세상. 히로카즈는 그 안에 일본 전체에 흐르는 것들이나 사회상을 담아두기도 하고, 아이의 시선처럼 청명한 하늘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담아둔 것들 위에 단아한 뚜껑을 덮기도 하는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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