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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삭 Mar 11. 2024

절대 집에서
따라 하시면 안 됩니다

「SLEEP EXHIBITION」,  2022

단편영화 「Sleep Exhibition」

「SLEEP EXHIBITION」,  2022

・ 쳇 블랙 감독 / 뷰티풀 노이즈 출연


  고무장갑 히어로, 마미손이 수장으로 있는 레이블 "뷰티풀 노이즈"에서 제작한 단편영화 「SLEEP EXHIBITION」입니다. 


  쳇 블랙, 다른 이름으론 지올 팍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제목대로 "수면 전시회"에 찾아오게 된 기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출연자로는 <호텔 델루나>부터 <D.P>까지 넓고 깊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배우 조현철 외 뷰티풀노이즈 소속 아티스트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근미래 배경, 작품의 형태는 말하자면 뮤직비디오에 가깝습니다. 다만 각 아티스트의 개성 넘치는 음악들, 그리고 감독이 스스로 팀 버튼의 팬이라고 밝힌 만큼 SF적인 요소를 동화스러운 연출로 표현해 내며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죠. 


* 「SLEEP EXHIBITION」 은 현재 유튜브에서 무료로 관람이 가능합니다

https://youtu.be/0F6EQCfoi0o





I

잠들지 않는 시대

줄거리



휴대폰의 카메라 수로 직관적으로 근미래를 표현

  현재로부터 100년이 조금 덜 지난 시대, 2110년 서울에는 "수면 전시회"가 열립니다. 현시대 사람들이 과거 레트로에 열광하듯 이러한 토픽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꽤 있었으니. 


  백설공주처럼 죽은 듯 누운 채 박제된 전시품 앞에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몰려있습니다.


  등장하는 큐레이터의 설명에 따르면, 작품 속 세상에선 '잠'이라는 행위가 꽤나 낯설어진 듯 보입니다. 아니 사실은 이미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더 이상 잠이라는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저장해 둘 뿐인 사람들은 전시품을 휴대폰으로 마구 찍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눈가에 드리운 다크서클을 보면, 관람객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잠의 완벽한 대체품을 찾았다 보기는 힘듭니다. 그들에게 수면이란 정말 필요 없어진 것일까요, 혹은 그냥 행하지 않는 것일까요. 


  진실은 15개의 카메라 렌즈 너머의 머릿속에만 있겠지만, 곧이어 그러한 푸념들은 빅 브라더의 세뇌(Big Brother is watching you)처럼 귓속으로 울려 퍼지는 한 마디에 다시 숨어듭니다.


이건 절대, 집에서 따라 하시면 안 됩니다.

 - 미소를 잃지 않는 큐레이터의 말 - 


SECRET SLEEP CLUP

  기자는 어딘가 넋이 나간 듯 전시회를 빠져나옵니다. 그러던 중 경비원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종이를 줍는데요. 영등포구에 있는 SECRET SLEEP CLUB. 마치 다잉메시지 같기도, 혹은 십 계명 같기도 한 작은 종이는 기자를 [비밀 수면 클럽]으로 이끕니다.


  참고로 경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쪽지에 펜으로 무언가를 휘갈기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없었다는 점. 


  결정적으로 클럽을 찾아간 기자를 문에서 직접 맞이하는 모습을 봤을 때, 아마 후술 하게 될 수면 사교 클럽의 직원이 아닐까 하는 해석의 여지도 있겠습니다.






II

루시드 드림

잠이 낳는 사람들



  기자가 수면 클럽의 건물로 들어간 이후로 작품은 여러 아티스트들의 노래와 그들 각각의 음악에 담긴 시선을 보여줍니다. 


  대부분 잠과 연관되어 있으며 누군가는 공포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 또 누군가는 남들을 밟고 올라서기 위해 줄여야 하는 것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 마미손 파트 中 -

엄마, 엄마. 나쁜 꿈을 꿨어. 
저기 벽 앞에 무언가가 서 있어. 
엄마, 엄마 무서워. 달려간 안방은 왜 잠겨있어 
아빠랑 하는 말들을 다 들었어.
실수로 기침처럼 뱉어버린 속마음이 진짜라면? 


  가사에서 알 수 있듯 마미손은 어린아이를 화자로 삼고 있습니다. 아직은 어두운 방 안이 무서울 나이. 두려움에 달려간 안방 문은 왜 잠겨있는지. 


  아니 사실은 아빠와 엄마가 했던 대화 때문에 문고리를 잡은 내 손이 움직이지 않았던 건지. 결국 자기 발로 어둠에게 돌아가야 했던 아이의 따가운 트라우마는 어째서 잠들지 않는 건지.


  강렬한 808 베이스의 힙합 사운드와 마미손 특유의 날카로운 하이톤 랩 스타일로 어린아이의 불안을 잘 표현해 낸 부분입니다.


찬추(Chanju)가 있는 허브 바

  클럽의 또 다른 공간인 "허브 바"에 다다른 기자. 게다가 그의 옆엔 바의 또 다른 손님처럼 보이는 여자(CHANJU)가 앉아 있습니다. 그녀는 차를 마시기 전까지만 해도 수줍은 소녀 같았지만, 이내 잔을 비운 뒤 술에 취한 듯 몸을 휘청거리며 노래를 시작합니다.


- 찬주 파트 中 -

Oh my god, Look at my rabbit eyes!
미친, 토끼처럼 빨간 내 눈 봐!

Want to sleep like crazy but I’m afraid this will be my last sleep.
미치도록 자고 싶지만 마지막이면 어쩌지?

If I cover myself with a blanket, go to bed for DEAD sleep.
만약 담요로 나를 감싼다면, 난 쥐 '죽은 듯' 잠들 테야.

  

  마미손 트랙의 느낌이 어릴 적 잠에 대한 트라우마였다면, 찬주의 트랙은 어딘가 사춘기 소녀의 방황 같습니다. 술도 아닌 허브 향 차를 마시고 취한 듯 휘청거리는 모습이나, 분명 좋은 상황은 아닐 테지만 동화적으로 느껴지는 가사의 느낌을 보면 그러한데요. 


  보통 허브 차는 잠 오게 하고 싶을 때 마시는 것 아니었나요? 양을 세다가 평생 도달해 본 적 없는 숫자를 읊어보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쨌든 여자는 그렇게 빨간 매트리스 위로 쓰러지며 잠들고, 곧이어 지올 팍과 원슈타인의 트랙이 재생됩니다.



- 지올 팍 파트 中 -

I lost my dream like a grown man.
난 다 자란 어른처럼 꿈을 잃었어.

Block my ghost, It doesn't help me.
When I lie down, It always steps me.
내 유령을 없애줘, 전혀 도움도 안 돼.
내가 누울 때면, 나를 짓밟잖아.

Like a McDonald’s 24 hours never shut down.
맥도날드처럼 24시간 내내 눈 떠.

Never abide my bedtime, then what?
잠잘 시간을 절대 지키지 않기. 그래서 어쩌자고?



- 원슈타인 파트 中 -

Then What?!
뭘 어쩌긴!

잠을 줄여서라도 난 가져 My turn
실핏줄이 터져 이건 나의 오랜 저주

Since I young and always dream 
비싼 시계를 갖고 싶었잖아 Custom

오일남처럼 침대 몇 백 개를 사고파는 Game 
Never lose 절대 질 일이 없으니


  현악 베이스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비트에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합니다. 동시에 두 사람이 갖는 에 대한 생각은 정반대인데요.


  지올 팍은 마치 그래야 한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잠을 포기해 나간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다지 건강한 삶도, 마음도 유지할 수 없는 삶이죠. 앞서 말했듯 이 미래 시대의 인간들도 잠의 완벽한 대체품을 찾지 못한 것일까요.


  꿈 정말 "잘 때 꾸는 것" 또는 "희망, 욕망을 투영하는 어떤 것"이란 이중적 의미가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첫 가사인 '다 큰 어른처럼 꿈을 잃었다'라고 한 부분은 더 심오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잠도 줄이고, 맥도날드처럼 24시간 불철주야 움직였는데, 그래서 어쩌겠다고? (Then What..?)


  원슈타인은 대답합니다. 뭘 어쩌긴! (Then What!)


  원슈타인의 파트는 오히려 지올팍과 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가사 첫 줄에서부터 드러나듯이, '잠을 줄여서라도 내 턴이 오게 만들겠다'며 야심을 품고 있는데요.


  어릴 적 갖고 싶었던 비싼 커스텀 시계. 그리고 그런 노력이라면 내가 승자일 것만 같은 느낌. 


  "Never lose 절대 질 일이 없으니" 자신이 절대적으로 이기는 게임에 들어와 있다고 자신하는 그의 이야기는 광기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화자는 잠이 쓸데없는 것이라는 명제를 자신의 경험으로 증명하였으며, 그 연장선으로 자신의 삶을 아예 잠으로부터 분리시킨 것으로 느껴지죠.


흑백으로 연결시키는 연출이 인상적

  수면 클럽의 직원인 두 사람은 수면제를 건네고, 기자는 결국 난생처음으로 수면제를 삼키며 잠에 들기 시작합니다. 앞서 등장한 큐레이터가 다시 나타나 말하길,


이제, 잠에 드실 거예요.


  어두운 방 안처럼 온통 새카만 곳. 약을 먹고 나자 기자는 그 어두운 곳 한가운데에서 어떤 개를 마주합니다. 마치 전에 키웠던 개와 아주 닮았다는 듯 기자의 얼굴은 조금 서글퍼 보이기까지. 이내 재생되는, 가장 감정을 뒤흔드는 시온의 트랙.


https://youtu.be/VcYzchB19GQ?list=PLZyIkRKqVv9ISMPg80UtcSzu2xdGQuoWn


- 시온 파트 中 -

Mother always told me
When you fall in your dreams 
it means that you’re growing, so don't be afraid 

엄마는 언제나 내게 말했죠
"네가 꿈속에 빠져들 땐 두려워하지 마. 네가 자라고 있다는 거니까"

Then I told her, Mommy I ain't telling stories 
I just keep on falling in reality

그러면 난 그녀에게 말하죠
'엄마, 난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난 그저 현실 속에서 계속 실패해요.'  

I took pills to paralyze the pain 
I knew at the end it'd be the same
Someone answered there are thousand questions 
I could ask But let me ask you these 

난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약을 먹어요.
결국 끝에 가선 다 똑같아질 걸 알지만.
누군가 대답해 줬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은 수 천 개도 더 된다고.
하지만 이걸 묻고 싶어요.

Why is it me?
Why is it me? 
Why is it me? 

왜 나인 거죠?

How should I sleep?
내가 어떻게 잠들 수 있겠어요?

  

  꿈은 대게 현실을 반사하는 거울이라고들 합니다. 꿈에 빠져드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계속 현실에서 실패하고 고꾸라지기 때문.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가사였는데요. 


  비루한 현실에 비해 이상주의자인 스스로의 모습을 자조하며 그 끝에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세상의 잔인함을 탓하기도 합니다. 잠은 죽어서 자라는 말이, 잠은 쓸데없는 것이라는 말들이 이런 사람들을 정말 빨리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최소한 죽음을 가까이 상상해 보도록 말입니다.


  잠에 대한 현대인의 공포를 극대화시켜 아이의 질문으로 표현해 낸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자는 누구의 눈총도 없는 방 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깊은 잠을 자게 됩니다.






III

해몽

그럼에도 우리는



  영화는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지만, 이내 다시 전시회의 모습을 비추는데요.


그렇다 한들

  그 순간, 새롭게 전시된 전시품이 전 장면에서 잠에 들었던 기자였음이 드러납니다. 큐레이터는 다시 한번 관람객들에게 상기시킵니다. 미소를 잃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경고하듯이.


아.. 이건 절대, 집에서 따라 하시면 안 됩니다.


  언제부턴가 잠이라는 것은 도태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네가 퍼질러 자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이란 말이 수식어가 붙는 순간 괜스레 내려오던 눈꺼풀을 치켜뜨고 팔을 꼬집어대곤 합니다. 


  영화는 텍스트적으로나 장면적으로나 Sleep을 거꾸로 한 Peels라는 말장난을 자주 사용합니다. 보통 약, 그중에서도 알약을 칭하는 Pills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을 이용해 여러 가사나 장면에 알게 모르게 집어넣는데요. 


I took pills to paralyze the pain

난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약을 먹어요


  실제로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약을 먹어가며 억지로 깨어있는 사람들. 현대인이자 스스로를 부정하고픈 좀비. 혹은 말장난을 생각해 봤을 때 화자 자신에게 '잔다는 것'은 누워서 쉬는 게 아닌 잠시 고통만을 잠재우기 위한 행위일 뿐입니다. 


  현실에선 잠을 줄여야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최소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취하는 수면 속에선 고통을 달래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내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잠들 수 있겠냐고 푸념하는 마지막 가사까지.




  이런 영향은 때때로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또 때때로는 잔잔하고 느린 비극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TV에서 가끔 하던 카드사 광고 중 아인슈타인이 "잠은 하루 4시간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말하던 광고를 기억하는데요. 유튜브에 넘쳐나는 동기부여 영상만 보더라도, 성공한 사람들의 말들을 보아도 수면 시간이란 경우에 따라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 모두가 수면이라는 것은 너무도 달콤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건강을 위해선 필요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천천히 달궈지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우리는 나날이 선택화되어 가는 수면에 대해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합니다.


  어디까지가 잠시 힘을 푸는 순간이고, 어디까지가 게으른 도망을 일삼는 순간이 될까. 그 모호한 간극에 서 있는 현대인들.


  동화적인 색채를 띄던 「SLEEP EXHIBITION」은 다시금 가볍게 우리에게 현실을 알려줍니다. 당신이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진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옛(뒤처진) 사람의 쓸모없었던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사진처럼 영원히 담아둔다는 것. 


  결국 졸고 있는 사람의 옆구리를 찌르며 하는 말, 점점 잠이라는 것을 멀리하는 우리에게 하는 말. 집처럼 누구의 시선도 없는 곳일지라도, 그 꼬리표와 먼지는 따라온다는 말.



  절대, 집에서 따라 하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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