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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무

나무의 이름과, 나무의 추억과

by 구자훈

나무 이름이 열매의 이름에 따라 정해진다는 관점은 올바른 것인가?

나무는 선택할 수 없는 조건에 의해 한 장소에서 삶이 시작되고 흙과 바람과 물과 햇볕을 받으며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마침내 열매를 맺는다. 나무와 열매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면, 감나무가 감나무여서 그곳에 깃드는 열매의 이름이 감이 된 것은 아닐까.


주변에서 자라는 나무나 풀 중에서 꽃 진자리에 열매가 달리는 식물을 사람이 관리하기 시작했다. 크고 맛 좋은 열매가 달리도록 개량하고, 인위적인 장소에 심어 가꾼다. 그런 나무에서 달리는 과일은 생계수단이 되었고, 나아가 ‘식후 과일’이 되어 인간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기에 성과에 목마른 우리는 나무보다 과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관심 대상이 과일이니 사과를 제공하는 나무는 사과나무, 배가 달리는 나무는 배나무, 복숭아가 익는 나무는 복숭아나무. 그러니까 어떤 과일이 달리는지에 의해 나무의 이름이 정해진다는 생각은 이익 또는 편익의 측면으로 자연을 대하는 호모사피엔스종의 자만 아닌가.


“청아한 매화나무 한 그루 마음에 품고 여행하고, 안에서도 밖에서도 성실하게 매화나무 하나 가꾸겠습니다. 이것 또한 진정한 나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홍승완의 마음편지’를 읽으며 나의 나무들을 생각해 본다.


내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나기 전까지 자랐던 곳은 야트막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20여 호쯤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집 뒷란에서 산자락까지 퍼져 살던 ‘대나무’는 숲을 이루어 추운 북풍을 막아줬고, 참새들은 천적을 피해 저녁이 되면 그곳에 깃들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경쾌한 소리로 아침을 깨웠다.


커다란 ‘회화나무’ 한그루는 그 대숲 한가운데에 있었다. 가을에 낙엽이 지면 대나무 우듬지 위로 아이보리색 콩깍지 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고, 겨울을 지나 나무에 물이 오르기 직전에 동네 어른들이 약으로 쓴다며 그 나무의 가지를 잘라가곤 했다.


나무로 만든 시커먼 부엌문 앞에는 올망졸망한 단지들이 있는 장독대가 어머니의 손길을 기다린다. 반질대는 장독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붉은 꽃과 열매가 탐스럽던 ‘해당화’가 날카로운 가시를 햇볕에 말리고 있었다.

아카시나무’는 집 주변에 지천이었다. 주린 배를 채우려 꽃을 따고, 좌우로 주르르 달린 긴 잎사귀는 토끼 먹이려 따고, 운수 보려 따고, 그냥 심심해 따고, 그러다가 그냥 아카시의 알싸한 향기에 젖었다.


집에서 가장 먼 담장 쪽에는 수령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대봉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연한 아이보리색의 감꽃이 조롱조롱 피었다가 질 무렵에는 동네 조무래기들이 감나무 밑에 둘러앉아 떨어진 꽃으로 공기놀이하는 장소가 되었고, 겨울에 뒤주에서 꺼내온 붉은 홍시는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었다.

살구나무 열매.jpg 살구나무 열매

이제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나무를 소개해야겠다. 그 나무는 마당 중간쯤 담장 쪽에 살던 고목 ‘살구나무’이다. 봄이 아슴푸레하니 물들 즈음 벚꽃보다 조금 일찍 피는 연분홍색의 살구꽃을 무척 좋아했는데, 지금도 꽃이 피면 멀리서도 단번에 그 나무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어린 시절 마당에 살고 있었던 살구나무에 핀 꽃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분명히 보았을 터인데 말이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있던 마을 앞은 복숭아와 배 과수원이 펼쳐져 있어서 봄마다 흰 배꽃과 붉은 복숭아꽃이 지천인 꽃동네였다. 그러니 마당에 오도카니 서 있던 한 그루의 살구나무가 피웠을 꽃이 기억에 없을 만하다. 살구나무는 수령이 오래되어 군데군데 큰 가지가 고사하여 살아있는 몇 안 되는 가지가 도드라져 보였다.


그 나무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는 들은 바 없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노란빛의 커다란 살구와 입에서 녹아내리던 살구의 맛이다. 너무 고령이었던 나무에는 해마다 몇 안 되는 살구가 달릴 뿐이었는데, 그나마 그 열매는 대체로 남자 어른들 몫이었다. 철도 들기 전에 서울로 나간 큰 형님과 큰 누님을 빼고도 누님 세 분과 나 그리고 어른들과 함께 살았으니 살구 먹을 기회는 언감생심!! 그러나 내게는 어머니의 막내를 향한 애처로운 사랑이 있었다. 큰형님 이후 딸만 내리 넷을 낳은 후 다섯 번째에 얻은 막내인 나를 보는 어머니의 측은지심이 아버지에게 드려야 할 살구 한 알을 내 손에 슬쩍 쥐여주고야 말았다.


나는 얼른 식구들의 눈을 피해 집 모퉁이에 숨는다. 그리고 손에 놓인 살구를 본다. 그 티 없이 노란색이라니! 너무나 잘 익은 살구를 보고 또 보며 아주 천천히 조금씩 먹었다. 마침내 노란 과육이 조금도 붙어 있지 않은 적갈색의 씨앗만 손에 남을 즈음의 아쉬움이라니. 그렇게 식구들을 애태우며 힘들게 살구를 키워내던 고목은 어느 해에 더 이상 새싹을 틔우지 못했다. 지금은 내 기억 속에서 산다.


그 기억을 소환하여 실한 살구나무를 양지바른 곳에 심어야겠다. 손자가, 손녀가 그 나무와 함께 자라고, 나무와 함께 그 시절에 겪을 만한 가슴앓이를 하고, 노란 과육을 먹으며 자신을 스스로 위안하며 커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다 저들이 50년쯤 후 살구나무 기억을 되새김하며 아름다워서 그리운 유년의 시절이라며 글의 소재가 된다면 멋지지 않겠는가?


살구가 달려서 살구나무가 아니라 살구나무에 열려서 살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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