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포빡쌤 Jun 06. 2024

나의 학원일지

tvN 드라마 '졸업'

대치동을 배경으로 학원 얘기이다. 로맨스, 경쟁, 가족 등 여러 가지가 나오지만, 결국은 성장 드라마 느낌이다.


나의 학원 생활은 오해에서 시작되었다. 




영어 회화를 하고 싶었다. 개인 과외 선생님을 찾던 중 친구로부터 캐나다 여선생님을 소개받았다. 


수업 시작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그 선생님이 나에게 제안을 하였다. 자기가 아는 영어학원이 있는데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는 거 어떠냐고.

???


갑자기 뜬금없는 제안에 어리둥절하였다. 지금 너에게 돈 주고 배우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소개로 간 그곳은 초등생 위주의 외국인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는 유명 프랜.


한 달이 지났을까? 소개해 준 그 선생님에게 받은 한 통의 메일. 사과의 메일이었다. 나를 의심해서 미안했다고. 

???


내 영어 실력이 자기에게 굳이 돈 주고 배울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다른 의도로 자기에게 접근한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다른 학원으로 보내는 것. 


내가 그 학원을 가면 나는 순수한 것이고, 가지 않으면 나는 불순한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결국 그 학원으로 간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돈을 주고 배우지 않고 돈을 받고 일을 하게 되었고 의심까지 벗어날 수 있었으니. 


나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선생님이 될 거라는  말로 훈훈하게 메일은 마무리되었다. 지금 자기는 캐나다에 있는데 늦게 말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 첫 학원에서는 매달 월급이 올랐다.


입시학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적보다도 그 외 일들이 많았다. 


원장님이 내가 쓴 상담 기록을 다른 선생님에게 보이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 나의 상담 기록이 이렇게 모범 사례가 된 일은 나중에 서초동 다른 학원에서도 있었다. 




두 번째 학원. 강남 지역의 학원이었다. 


새로운 경험을 했다. 외부에서 들어온 학원 접수 세력. 돈과 기술로 학원을 이렇게도 가질 수 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그들과 함께 갈 것이냐 떠날 것이냐. 




이번 학원은 대치동 토플 학원. 


그 선택의 순간에 먼저 나간 동료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가 지금 있는 학원으로 오라고.


내신 수능 그런 것 없고 토플만 가르치는 학원이었다. 학생들 내신 기간 한 달은 수업을 아예 하지 않았다. 물론 월급은 똑같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한국에서 유일한 조건이었다. 일 년 네 달은 그냥 유급휴가였다. 정신을 차린 원장님에 의해 달콤했던 그 순간은 끝이 나고 정상으로 돌아왔다. 


학생들이 밀려들어왔다. 방학 때는, 지방에서 온 학생들과 잠시 귀국한 유학생들까지 북적였다. 


늘 긴장이었다. 이전 학원처럼 어린애들이 외국인들과 즐겁게 영어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점수가 나오는 학원이었기 때문에. 학생들도 많기도 했고. 


단어 시험 채점을 하는데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하다면서 단어 뜻을 영어로 쓰겠다는 학생, 영어보다 독일어가 더 편하다며 독일어로 단어  뜻 설명을 하겠다는 학생, 심지어 중국어까지 있었다. 


한 학생은 토플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원장님에게 개인 과외까지 받은 학생이었다. 짧은 인터뷰 기사에도 나왔다. 그런데 원장님이 짜증이 나셨다. 인터뷰 내용은 이랬다. 사교육 없이 토플 만점을 받은... 기본 교재로 자기주도 학습을 했습니다... 당시 그 학생 아버지 직업은 검사.


이후로 수능 만점자들의 교과서 위주의 공부 방법을 나는 반만 믿는다. 


이후 대학교 편입 학원과 서초동 학원에서 근무를 하기도 했다.


이제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두루 경력을 쌓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반포에서 나는 중 고등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반포 생활도 할 말이 많지만 현재 있는 곳이라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그래서 생략.


학생 한 명 한 명, 원장님들 선생님들, 다른 학원들 그리고 학원 사업...


아직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위에 쓴 것을 보니 이미 너무 많다. 


아침에 눈뜨고 채점하고 수업하고 채점하다 잠든 적도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학원 건물 옥상에 올라가 햇빛을 받으며 몸과 마음을 진정시킬 때도 있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선택의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마다 보수적인 선택을 하였다. 이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드라마 졸업, 


배경으로 나오는 대치동은 내가 중고교를 다니고 이십 대를 보낸 곳이라 조금 더 집중이 되기도 한다.


4회에서 정려원이 한 명의 학생에게 같은 단어를 시차를 두고 두 번 말한다. "고마워."


첫 고마움은 진심이긴 하지만 조금은 형식적인 감사의 표현, 두 번째는 자신의 인생이 흔들릴 정도의 진심의 감사의 말.


겉으로는 둘 다 학생에게 하는 말이지만, 두 번째는 학생이 아닌 자신에게 하는 것으로 나는 느꼈다.


몇 분 사이에 이어지는 이 두 번의 고마워. 


이 장면이 이 드라마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한다. 


성장 드라마, 맞다. 



작가의 이전글 미라클 이브닝 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