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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래랑 Sep 16. 2023

<피아노라는 아름다운 것>

중 EP. 7 <연습해도 안 되는 것이란>

   그전 콩쿠르를 망치고 학원도 바뀌며 몇 달이 지났을 때, 나에겐 또 내 발목을 부여잡을 신청서가 와락 안겼다. 그리 반갑진 않았지만, 내 손에 쥐인 신청서를 보며 오만가지 생각에 잠겼다. 변함이 있을까, 하지 않는 게 내 정신에 좋지 않을까. 등등.. 결국 포기하자고 신청서를 내려놓고 등을 돌렸지만 내 손목과 발목을 휘감는 미련에 못 이겨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선생님께 신청서를 보여드렸다. 선생님께선 연습 시작 날짜를 정해 주시면서 난 터덜터덜 학원을 나왔다. 나에게 과연 맞는 길일까,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던 걸까 등 여러 생각을 거치며 밤을 새웠다.


그렇게 몇 달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나와 함께 3개월을 지킬 악보가 찾아왔다. 악보를 들추어보니 나에게 맞지 않는 난해해 보이는 악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카엘 코엘링의 헝가리 광시곡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악보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며 아마 이 곡으로 치면 입상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알려주셨다. 이걸 3개월 안에 스케일 연습까지 꽉꽉 채워서 다 하고 나갈 수 있으려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해 보아야지. 처음 피아노 건반을 눌렀던 손가락을 잠시 생각하고, 마치 처음인 것처럼 손을 들이밀었다. 하나하나 음을 거치고 나서는 마디를 끊는 벽이 세워졌다. 그렇게 계속 연습하고 연습했다. 입상 결과에 내가 당당히 세워지도록 말이다. 절대 예전의 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놀고 싶어도 참아가다 보니 그렇게 마디마디 연습은 끝이 났다. 이제 뭘 해야겠는가? 스케일 연습을 시작해야 할 차례인데, 그때는 최대한 더 놀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많이 힘들었지만 꾹 참으며 4~5시간 적게는 3시간을 채웠다. 스타카토, 스케일만 100번, 200번을 채우며 오직 노력으로만 승리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채로 계속 연습했다.


그렇게 대회는 나를 반겼다. 댓바람부터 단장하고, 꾸미며 우리 집은 시끌시끌거렸다.  차을 타고 긴장감과 어색함을 해치며 집을 등졌다. 그렇게 2시간쯤을 달리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선생님과 학원 친구들이 정문에서 날 맞이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수고했다는 말을 연속 말씀하신 뒤 나를 공연 백스테이지로 안내해 주셨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디딜 때마다 얼마나 긴장이 되었던지, 공연 후엔 입술을 너무 깨문 탓에 입술 주위까지 벌게지게 되었다. 그렇게 계속 입술과 손톱을 번갈아가며 깨물다 보니 어느새 내 차례는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내 공연이 시작되기까지를 기다렸다. 대회 진행자 분께서 나를 부르시자마자 나는 걸어 나갔다. 전혀 긴장하지 않는 발걸음인 줄로 알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께서는 아주 긴장해 보였다고 박장대소하시며 신나게 말씀해 주셨다. 나는 저번 콩쿠르와 다르게 여유롭게 자리정리와 마음을 가다듬고 피아노 건반에 손을 댔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은 뒤 내 세계만을 떠올리며 나만의 연주실력을 보여주었다. 심사위원님의 눈이 바뀌지 않자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종이 울린 뒤 나는 터질 가슴을 진정시키며 백스테이지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속으로 목이 터지게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 고생했던 모든 날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기쁘게 느껴졌었다. 지금 보면 그날만을 위해 연습을 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꽃다발을 드신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선생님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셨다. 내 담당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원래 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는데 너 보러 왔다. 궁금해서 왔다 등 함께 웃으며 1시간 동안 왈가왈가 이야깃 주머니를 들췄다. 그렇게 차에서 1시간 반동안 잠을 잔 뒤에 나의 수상소식이 들려왔다. 메시지로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뭐 해? 지금 수상결과 나왔는데 3등이래ㅎㅎ 축하한다 “


나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목이 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3등이라는 소식에 좀 아쉽기도 했다만 그래도 입상한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이 결과만을 위하여 앞만 달려왔노라고, 나 자신도 잘했다며 칭찬해 주었다. 다음에 더 좋은 소식을 기약하며 그렇게 나의 대회 준비날은 끝이 났다.


근데 이상하단 말이다. 그렇게 다섯 시간을 꼬박 연습을 했는데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없는데, 아직도 3등이 된 사유가 무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건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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