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래랑 Sep 16. 2023

<피아노라는 아름다운 것>

중 EP. 8 <세 번째 떨림 속의 무대 위>


<세 번째 떨림 속의 무대 위>


 기운 없는 나에게 종이 한 장이 내던져졌다. 콩쿠르 신청서였는데,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 칸에 사인을 하는 순간 나는 무대라는 전쟁 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항상 제일 고민되는 것은 역시 대회 신청서였다. 하지만 나의 팔은 나의 망설임을 팽개치고 가차 없이 칸에 내 사인을 그렸다. 나는 이걸 후회해야 하나, 기뻐해야 하나 고민됐다. 그때 내가 감정을 선택하려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세 번째는 이유 없이 고민이 더 많이 되었다. 그 떨어지던 아픔을 잊을 수 없기에, 뇌에 번뜩일수록 한 발자국을 주춤했지만, 그렇다면 내가 아니지. 나는 한 발자국만 물러서고, 그다음 발자국은 폭넓게 앞으로 찍기로 했다. 그렇게 100명이 넘는 동갑생들과 피 튀기는 싸움을 준비했다.


 가장 중요한 건 곡 선택인데, 잘 알려진 소나티네 정도는 대상을 받는 게 거의 기적이라고 볼 정도로 받기 힘들다. 소나티네나 특히 피악존카 타란텔라.. 둘이는 대상 받기 위해 8시간은 족히 연습해도 유분수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느낌이 화악 올 때까지 연습하면 대상은 물론 쟤 잘 친다고 소문까지는 슈퍼카 타고 금방인 셈이다. 소나티네는 소달구지정도… 소나티네로 대상을 받는다면 진짜 실력은 인정해 줘야 된다. 소나티네나 피악존카 타란텔라 같은 학생들이 많이 친 곡은 더 까다로이 평가하기 때문에.. 무조건 곡 선율이 감미롭다고 감동에 젖어 뽑는다면 대회 결과 발표 때 티셔츠가 눈물로 젖을지는 나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말을 따라 모슈코프스키의 에튀드를 선택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이게 맞던가… 머리 한 대 친 기분이다. 아무튼, 다른 곡은 손이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해서 그나마 나은 에튀드를 선택했다. 근데… 에튀드가 제일 어려운 거라네..? 그걸 악보를 뽑고 왜 지금 설명해 주시죠..? 사실, 이게 음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닌데 속도가 메트로놈으로 한 200이 넘어서 사람 하나 죽어나가는 연습이 아니고서야는 절대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살아있음에 또다시 감사했다. 나는 악보와 내 꼼지락꼼지락 건반을 두드리는 손가락을 정신없이 번갈아 보며 그렇게 손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게 글 하나로 정리해서 몇 개월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하나도 못 느낄 텐데.. 진짜 대회날 절반을 이미 다가왔는데 난 이제 곡 하나 완성시켰다는… 나는 완곡하고 나서 달력을 보고 아하하하하하하 거리며 미쳐버린 것 마냥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선생님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괜찮아, 두 번째처럼 5시간은 족히 연습하고 레슨은 3번 정도 받으면 대상감이야.” 하시며 눈을 찡긋거렸다. 나는 턱뼈가 마비되어 움직이질 않았다. 뭐 걱정하기는 시간도 부족하니, 반응은 빨리 넘어가고 이제 곡의 스케일을 정리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사실은 속도가 200이 넘는 곡인데, 잘할까 의심되기도.. 아니 많이 의심되었다. 피아노 동료들도 이건 사람 따위는 그런 빠르기가 안 나온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부추긴 슬럼프에 잠시 땅을 보았다.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내가 이날만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데, 무너질 내가 아니지. 하며 하늘을 잠시 바라보고, 다시 방의 문을 쾅 닫고선 피아노 앞에 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습을 시작했다. 진짜 그때부터 순수 노력파로만 연습했는데. 스타카토 120번 (각각 3마디 40번씩) 전체 20번, 부분연습 30번씩… 진짜 인간의 한계에 맞서 싸우는 연습을 했다. 친구들은 내가 진짜 폭주했다며 턱뼈를 뺐다. 나는 그렇게 3주를 남긴 채로 메트로놈 200으로… 완곡을 했다. 친구들도 앞다투어 작은 창문사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난 눈물이 글썽일 뻔했다. 순간 눈물을 흘리면 민망하겠구나 싶어 눈물을 쏙 집어넣었다. 근데.. 나에게 시련이 찾아와 버렸다.


 2주를 남긴 채. 일본여행을 갔다 와야 하는데.. 이거 취소할 수도 없고.. 손가락은 다 굳을 것 같은데… 그래서 난 일본여행을 할 때도 콩쿠르 걱정만 내 눈앞을 가렸던 것 같다. 손가락이… 점점 굳어가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다. 나의 손가락은 돌처럼 딱딱히 굳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난 일주일이 다 돼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메트로놈 200을 킨 뒤 손을 두드렸다… 180이 한계다. 200을 진짜 못 따라갈 것 같았다. 200 달성한 지가 언젠데… 세상이 너무 미웠다. 나는 초승달 돌린 눈으로 거의 대성통곡 직전처럼 표정을 지은 뒤 몇 시간의 연습과 시련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내 실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3일 남기고 나서야 실력을 되찾았으니…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어린 나이에 맥주 한 캔 딸 뻔했다. 그렇게.. 최종 대회날은 나를 꼭 끌어안았다.


토요일, 그날이 되었다. 이제 심사위원들 앞에 서서 내 실력만 보여주기만 하면… 끝난다. 이 개고생이 드디어 끝난다. 나는 고양문화회관으로 달려 단정하고 예쁜 차림으로 나의 무대를 기다렸다. 무대는 점점 다가오고, 나의 긴장감은 앞을 가리는 게 정말.. 심장이 찢어질 듯했다. 막 쿵쾅쿵쾅 쿵쾅 에레베레베베 거리는데 그때 이미 나의 수명은 절반 줄었을 것이다. 엄청난 심장속도에 놀라고.. 곧 나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음에 더 떨렸다. 밖에 나가라고 하셔서 무대에 서는 줄 알았는데, 또 밖에 4개의 의자가 있었다. 요번 학생이 너무 많아서 밖에 4개를 또 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무대 밖에서 기다려라..? 얼마나 심장이 찢어질는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어우 이제 그때만 상상하면 정말 아직 심장이 쿵쾅거린다. 진짜 끝자락이 다가왔다. 4oo, 000입니다.라고 외치는 순간 난 여유롭게 자리를 박차고 피아노 위에 앉았다. 난 쓸데없이 시선이 넓기에 심사위원들이 다 보였는데.. 아 저 매의 눈빛을 어떻게 좀 할 수 없던가.. 순간 실력이 굳어버려 5번을 틀리고 속도조차 느려져버렸다. 심사위원은 경멸하는 것 같기도 한데 미소 짓는 것 같기도 싶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종을 울렸다. 나는 종을 울리는 순간 반사신경으로 자리에 일어나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백스테이지에 들어서자 긴장한 사지가 모두 풀리고 난 맥없이 쓰러졌다. 다행히 몇 초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정말 그 정도로 애탔던 대회였던 것 같다. 좀 휴식시간을 가지고, 저녁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메시지로 좀 받아봐 라며 계속 울려대는 전화 알림에 시끄러워 받았다.


“ 네 선생님, 말씀하세요. “


“너의 결과가 지금 막 나왔는데… 아마 깜짝 놀랄 거다. “


선생님은 알 수 없는 톤으로 키득키득거렸다. 나는 더 궁금해져 선생님을 재촉했다.


“ 아이 뭔데요, 그러니까 더 궁금해지잖아요ㅋㅋ ”


“ 너무 잘했어. 얘 준대상이다. 네가 생고생을 다하더니 빛을 발하는구나ㅋㅋ “


”에..? 진짜요?? “


나는 자동차의 딱딱한 시트 위에서 팔짝팔짝 뛰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댔다. 부모님도 수상 결과를 듣고선 같이 자동차 안에서 아우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그 시간 동안 계속 콩쿠르 때문에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다했는지 설명해 주었다. 근데 웃기게도 다들 다 다른 주제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그렇게 열심히 입을 굴렸다. 계속 조잘조잘거리니 다 함께 아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지겨웠던 생고생은 끝났다. 다음날 크게 붙여진 내 이름과 준대상이라고 크게 쓰인 포스터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몇 주 뒤엔 큰 트로피도 왔는데, 바이엘 아이들이 내 트로피를 만지작 거리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뭐 부수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만져도 될 것 같았다. 기분이 너무 좋으니 어떤 자비를 베풀어도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기에, 아이들이 만지작거리게 두었다. 트로피는 안경수건으로 닦으면 되지 않는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장학금으로 소고기를 사 먹었다. 이렇게 한 번에 낭비되니 좀 서러웠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내 돈으로 사 먹으니 더 당당하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음..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피아노에 도전 중이라면 콩쿠르는 꼭 나가라 하고 싶다. 보았듯 이렇게 많은 풍파를 겪어옴으로써 사람은 더 발달되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 콩쿠르가 진짜 좋은 예다. 여러 대회에 도전해 봄으로써 이제 남의 시선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심장을 가진 사람이 되는데, 그 심장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엄청나게 귀한 정신력이 되는 것이다. 이제 대회라는 것으로 독자들도 나처럼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 풍파를 겪어내며 더 단단한 사람이 되기에, 무엇보다 콩쿠르 전에 관객을 조금 모아두고 당일 날 앞에서 연주하는 연습이 효과가 많이 미칠 듯싶다. 나처럼 연습땐 잘했는데, 갑자기 실전에서 실력이 반으로 뚝 떨어지기 때문에, 인맥이 넓으면 넓을수록, 좁으면 부모님이나 친척이랑 영상통화로 주고받거나, 그렇게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건반 위의 얹힌 발을 한걸음 한걸음 재촉하며 나 자신을 채찍질한다면, 더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건반 위의 날개를 활짝 펼치는 독자들이 되길 기원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피아노라는 아름다운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