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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Aug 14. 2023

[국제연애 성공담] 미국 남자와 한국 여자 0-1

지구의 어느 낯선 곳에서 그대라는 사람을 알게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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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짓느라 30분은 걸린 것 같다. 30자 제한에 걸려 고민 끝에 선택한 제목은 간단명료한 '미국 남자와 한국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다름없이 마치 베스트셀러 이름을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그 책이 많이 팔린 것 마냥 이 이야기는 나와 남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미국인과 한국인의 흔하디 흔한 연애와 결혼 이야기가 될 수 있을 테다.


나는 한국 여자, 올해로 31세,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독자 입장의 나는 주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풀어 말하면, 사람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동화처럼 '멋진 백마 탄 왕자님이 저를 구해주셨답니다.'와 같은 이야기는 논픽션으로 내게 그리 구미가 당기는 편은 아니다. 사람이 풍파를 부딪히고 견뎌내 결국에는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랬기에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브런치에서는 국제결혼에 관한 글들을 심심찮게 많이 볼 수 있었다. 국제결혼 선배들의 일상, 그리고 외국 남자와의 이혼을 다룬 이야기 등,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온 이야기들이 이곳에는 땀 한 방울 한 방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나도 마냥 쉽지만은 않았던 남편과의 친구부터 연애까지, 결혼 생활, 그리고 문화 차이 등의 이야기를 여기서 펼쳐보려 한다.


그럼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 남편과의 첫 만남이 되겠지. 아마 묘사하기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다. 어렵나? 아무튼 우리는 친구였다. 친구가 연인이 되고, 연인이 부부가 되는 흔하디 흔한 결혼 이야기. 하지만 좌충우돌 우당탕탕 여러 가지 사정들이 가미된 엉망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이뤄낸 우리들의 이야기. 그럼 이야기 주머니 속으로 초대합니다.




'내 남자친구는 생산적일 일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이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생각이었다.


나는 스물아홉 살, 서울 중앙에 살고 있다. 한참 번역일을 프리랜서로 하다 얼마 전에 좋은 기회로 을지로에 있는 마케팅 회사에 입사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은 참이다. 남자친구와는 교제한 지 일 년 하고도 반이 넘었다. 어쩌다 보니 그와는 사귄 지 몇 달 되지 않아 동거를 하게 되었고, 그는 처음에는 구직 활동이나 스펙 쌓기, 하고 싶은 분야의 공부 등 많은 것을 하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는 그저 내가 외벌이로 회사에서 돈을 매달 받아올 뿐이고, 그는 말로는 직업을 갖겠다, 꿈을 이루겠다는 별 말을 다 하더니 결국 지금 하는 거라고는 하루종일 집에서 게임하는 것뿐이다. 허울 좋은 '전업주부 남자친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친구들에게는 가정적인 남자인 것 마냥 굴지만, 사실은 빨래도, 청소도, 밥도 다 내가 하는데.


하지만 이제까지 해온 연애들 중 내가 먼저 끝내자고 한 연애는 없었다. 나는 유별나게 애인에게 헤어지자고 하는데 정말로 서투르다. 그래서 아무리 밴댕이 소갈딱지에다 빈대 같은 남자친구라 해도 감히 쫓아낼 수가 없다. 이제까지 쌓아온 정이 있고, 기억이 있는데, 그걸 시계태엽처럼 되돌려가며 일 년 전에 그가 내게 건네준 손 편지를 보며 화를 삭일 수 있는 셈이다. 재택근무로 일하고 있는 나는 서재에서 업무를 하다 잠깐의 환기로 이전의 그가 나에게 나누었던 사랑의 말을 다시 읽고 곱씹어 본다. 응, 그는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는 나를 먹여 살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뭐 어때, 그럼 내가 먹여 살리면 되지.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화를 삭이면 다시 쌓이는 법이더라. 그도 나보다 한두 살 어린 나이에 2년제 대학을 겨우 졸업했기에 첫 취업에는 많이 늦은 나이다. 그는 내 도움으로 토익 점수를 750 넘게 올렸고, 한 해 전 내가 다니던 번역 회사에 낙하산 인턴으로 취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걸 재계약으로 끌어가는 건 그의 몫이었고, 그는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지. 그 계약직이 끝난 후 그는 완벽히 '전업주부 남자친구'라는 타이틀을 가져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들께는 '공모전, 어학 점수, 자격증,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어요.'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들만 늘어놓을 뿐. 이제 부모님들께 할 변명이 떨어진 참인지, 가라앉은 기분을 막 환기시키고 온 나에게 갑자기 자신에게는 토익 점수가 아닌 토익 스피킹 혹은 오픽과 같은 스피킹 어학 점수를 올려야 도움이 되겠다며 내 도움을 요구하던 차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 대학 생활 중에 외국인 친구의 멘토가 되어 외국인 친구를 사귀어 본 적도 있으며, 대학원 동기 중에도 외국인이 꽤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 대학 생활 이전에도 언어교환 앱으로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서로 문화에 대해 교류하고는 했다. 단지 그 사실 하나만 보고 이 남자는 나에게 영어 스피킹 과외를 요구하는 것이다. 외국이라고는 일본, 마카오 여행밖에 가본 게 다인 나에게 말이다. 정말 왜 이러는 걸까.


그의 요구를 오냐오냐 들어주는 것은 늘 나의 몫이었기에, 알겠다 하고서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어떻게 한다, 나는 원어민도 아닐뿐더러 해외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내게 스피킹 어학 점수 따위는 없다. 이유? 응시료가 비싸니까 단순히 응시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런데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하지? 여기서 언어교환 앱을 사용했던 과거가 생각났다. 그래, 그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연애 중에는 늘 지웠었던 T 앱을 다시 설치한다. 언어교환보다는 데이팅 앱이라는 말이 맞겠지만, 그래도 이 앱이라면 어쩌면 괜찮은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한국을 떠난 친구들이 태반이지만 내 경험상 그랬던 좋은 친구들이 많았기에. 프로필 사진은 죄다 커플 사진으로 채워 넣고, 간략하게 영어로 '남자친구와 나는 같이 어울리면서 영어 스피킹을 배울 수 있는 친구를 찾고 있어요. 성적인 목적이 있다면 사양합니다.'라는 조건부 문구를 달아두었다. 이렇게 프로필을 적는다면 이상한 놈들은 일차적으로 막을 수 있겠지.


프로필을 설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도 상대방들을 살펴본다. 나의 조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원어민일 것, 남자친구와 어울릴 수 있는 취미를 가질 것 - 술을 좋아한다던가, 당구를 친다던가. 웃통을 벗고 사진을 찍은 남자들은 죄다 넘겨버렸다. 그리고 취미가 그나마 점잖아 보이는 사람들을 하나씩 골라냈다. 책 읽기, 술 한잔 하기, 데이팅이 목적이라면 매칭이 되더라도 어차피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겠지.


두어 시간 앱을 붙잡고 있다 보니 머리가 아파왔다. 아직도 게임에 빠져있는 그에게 슬쩍 언질을 건넸다.


"나 T앱 깔았어, 너 원어민 친구 찾아주려고."

"뭐? T앱? 미쳤어?"


당연히 그는 내가 데이팅앱으로 썼다고 생각하고 저렇게 화를 내는 걸 테다. 역정을 내는 그에게 프로필 사진과 설명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응, 이렇게 너랑 커플사진 올리고, 성적인 대화는 원하지 않는다고 적었고, 조건으로 남자친구와 셋이 어울려 놀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분명히 적어뒀어. 안심돼?"


그는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한다.


"그래, 잘했어. 이상한 사람 안 걸리게 조심하고. 좋은 사람 걸리면 좋겠다. 아, 나 던전 매칭돼서. 나중에 얘기해."


이럴 줄 알았지. 뭐, 이제 곧 퇴근 시간이니 어떤 사람이 매칭되었는지나 봐야겠다. 그리 가입 시간이 오래되지 않아 별로 매칭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데이팅 앱에서 여성이라는 지위는 남성들에게 참 먹잇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수십 개의 영어로 된 메시지가 와 있다. "오늘 저녁에 뭐 해?"라는 뻔한 메시지류와, "너를 더 알고 싶어"같은 판에 박힌 작업 멘트는 넘긴다. 딱 하나, 괜찮은 메시지가 있다. 정중하게 "안녕, 네 프로필을 읽어봤고 나는 너와 네 커플에 무례한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 그저 한국에서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화를 걸어봐. 괜찮니?"


정말 좋은 사람일 지도 모른다. 친구는 될 수 있겠지만, 연인은 될 수 없을 좋은 사람 후보 하나가 나타났다. 그래, 뭐, 남자친구의 영어 선생님으로 나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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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잠깐의 순간이 지금의 남편을 온라인으로나마 알게 된 첫 순간이었다. 2022년 3월 말, 잊히지 않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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