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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음 Aug 29. 2024

보통의 시선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기회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까만 의복을 입고 멍하니 구석에 앉았다. 조촐하게 치러진 장례식엔 오가는 사람도 몇 명 없었다.

  그곳엔 낡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만 있었다. 그동안 장례를 치를 일이 없어 익숙지 않다지만, 곡소리 없는 장례가 흔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사진 속 그 애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입사 사진이었던 터라 정장 차림이었다. 몇 주 전, 마지막으로 봤던 그 애의 이질감이 들 정도로 달라진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이방인이 된 것처럼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커다랗게 붙어 있는 사진 속 그 애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졌다.

  나는 또 서러워져서 물속으로 빠져들어간 불티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그 애의 이름은 권서해.

  햇수로 치면 십 년을 함께한 그 애는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함께함이 자연스럽고 침묵과 멀어짐이 생경한 사이.

  그 애는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환한 얼굴로 그 애를 맞이하던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와 따뜻한 손을 좋아했다. 어린 그 애가 나와 다신 안 볼 작정으로 싸우고 난 다음 날에도 우리 집 문을 두드리던 단 하나의 이유였다.

  어느 날엔가, 그 애는 차가운 복도 한복판에서 아줌마에게 새파랗게 멍이 들 정도로 얻어 맞고는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것이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쯤, 가끔 그 애가 맞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엄마와 나는 아줌마를 붙들고 말리곤 했다. 엄마가 술에 취한 아줌마를 부축할 때, 나는 재빠르게 그 애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신고하자.”

  작은 어깨를 붙들고 결연하게 말해도 그 애는 누렇게 멍이 든 얼굴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기만 했다.

  “네가 못하겠으면, 내가ㅡ”

  그 애는 얼굴을 더듬거리는 내 손을 쳐냈다.

  “쪽팔리게……….”

  벙쪄 허공에 내쳐진 손을 바라보다 괜스레 울컥해 그 애를 홱 노려봤지만 곧 바람 빠진 풍선처럼 가라앉았다. 그 애는 울고 있었다. 잔뜩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수그리고, 소리 없이……

  나는 가만히 그 애의 작은 몸을 안아주었다.

  괜찮다고, 나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말로 그 애를 위로하며.



  “신고 안 해.”

  내내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던 그 애가 입을 열었다. 두서없는 말에 연고 뚜껑을 열던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그 애를 바라봤다. 단호한 말투와는 다르게 물에 젖은 종이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왜?”

  “……엄마잖아.”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물어봤자 대답이 없을 게 뻔해서 한숨만 푹 쉬고 면봉 위에 연고를 짜 뺨 위에 톡톡 펴 발랐다.

  “성인이 되면… 꼭 독립할 거야.”

  연고를 발라주는 손에 얌전히 자신을 맡기던 그 애는  콧잔등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혼잣말인지, 내게 하는 말이었는지, 혹은 그저 다짐이었는지. 이제는 영영 알 수 없겠지만.

  나는 그 애의 하찮은 꿈을 응원했다.

  그땐 그 애의 결심이, 푸념처럼 늘어놓던 그 애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몰랐다.



  성인이 된 그 애는 작은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다. 일하는 시간에는 휴대폰을 걷어간다는 이유였다. 하루 종일, 쉬는 날 없이도 그 애는 열심히 일했다. 나는 독립을 바라는 그 애의 마음을 알았고, 엄마도 알았다. 우리가 그 애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움이 그 애에게 걸림돌이 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연락을 완전히 끊게 된 것은, 세 달 뒤에야 연락이 닿은 그 애의 문자 한 통 때문이었다.



  그 애는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당연한 것처럼 그 애를 도왔고, 그 애의 회사에 찾아가기로 한 날에 수린을 만나게 되었다. 수린은 그 애가 다니는 회사에 오랫동안 잡혀 있다가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뒤늦게 알아본 그 애가 다니는 회사는 꽤 유명한 다단계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회사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처음으로 빚을 지게 되었다.

  엄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말없이 울다가도 멍하니 창밖을 볼 때가 늘어났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죄책감을 느껴야 할 건 그 애인데, 나는 피해자인데. 가슴이 시큰거렸다. 배신감과 분노, 생전 느껴보지 못한 생경한 감정들을 느꼈다. 난 항상 그 애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서야 그 애와 다를 바 없어진 것 같았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볼품없어 보이는 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사무쳐서 피잉 눈물이 어렸다.

  나는 가장 가까웠던 친구를 살기 위해 진탕으로 끌어들인 그 애가 미웠다. 엄마를 위해서, 빚을 갚기 위해선 더 열심히 일해야 했고, 그렇게 그 애에 대한 감정이 서서히 지워질 때쯤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그 애는 돌아왔다.

  삼 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엄마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 그 애를 마주했다. 그 애는 키가 조금 자랐고 어깨 밑으로 길었던 머리카락은 귀 밑으로 바짝 잘려 있었다.

  그 애는 맞고 있었다. 어김없이 그 애를 때리던 아줌마는 하얗게 샌 머리와 주름진 얼굴로 시선을 올려 나와 엄마를 번갈아봤다. 그 형형한 눈동자와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렸다. 그 애는 머리를 잘못 맞았는지 초점이 엇나간 얼굴로 바닥을 기고 있었다. 떨리는 시선이 그 애와 맞닿았다. 그 애가 손을 뻗었다. 나도 모르게, 그 애에게 달려가는 대신 엄마를 바라봤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엄마는 힘을 주어 손을 잡아끌었다. 주춤거리며 고개를 뒤로 빼 힐끔힐끔 쳐다보는 내 시야를 가리며 문 안으로 작은 등을 밀어 넣었다. 닫히는 문 너머로 알 수 없는 말이 흐느낌에 뒤섞여 꼭 주문처럼 들렸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귓가에서 불길처럼 일렁였다. 나는 서럽게 일그러진 불그죽죽한 얼굴을 보고도 그 애를 외면했다.

  ㅡ문이 닫혔다. 나는 조금 멍해진 얼굴로 엄마의 옷소매를 꾹 쥐고 올려다봤다. 엄마는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평소대로 신발을 벗고 겉옷을 벗어 의자 위에 올려두었다.

  "엄……."

  "손 씻어."

  엄마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엄마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현관 불이 초라하게 깜빡이다 말고 꺼졌다. 적막한 어둠 속에 남아있는 건 낡은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흐려지는 그 애의 울음소리뿐이었다. 문 틈을 고집스럽게 비집고 들어온 소리가  가슴에 박혀 한참을 현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군가가 신고를 했는지, 다른 장소로 간 건지, 평소보다 빠른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처절한 비명과 울음소리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멎었다. 길고 긴 소음 끝에 이어지는 고요가 초조했다. 나는 다리를 떨며 손톱을 물어뜯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똑똑ㅡ

  방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었다. 문고리를 돌리려고 가져다 댄 손이 천천히 밑으로 떨어졌다. 그 애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알고 있다.

  연민은 풍요에서 태어난다는 걸.

  그 애는 늘 가족이 되고 싶어 했지만, 우린 그 애를 연민과 동정으로만 품어왔던 걸.



  아주 오래도록 울리지 않던 초인종 소리가 적막한 거실을 울렸다. 인터폰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애인 걸 알았다. 소리가 나지 않게 발끝으로 걸어가 소파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가만히 현관문을 봤다. 열어줄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 애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으니까.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죄책감을 닮은 감정이 피어올라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오래도록 흐느낌처럼 울리는 벨 소리가 끊어지기를 기다렸다.

  낡은 초인종 소리가 길게 이어지다 뚝 끊어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애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크게 벌어진 눈동자와 마주쳤음에도, 그 속에 맺힌 감정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애의 시선을 피했던 그날의 내 모습에 대한 합리화, 혹은 더 이상 그 애에게 연민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옆에 두었던 휴대폰에 알림이 울렸다.

  “……”

  그 애였다.

  나는 머뭇거리다 문자 내용을 보지 않고 휴대폰 전원을 껐다. 그 애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그 애는 내게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 애를 마주하기 불편해 그 애가 자주 다니던 동선을 피해 다녔다.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사실을 잊었고, 그것은 그 애와의 마지막이 되었다.



  며칠이 흘러 그 애에게 안부 문자를 보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안정되어 변명이라도 들어보려고 했지만, 그 애는 답이 없었다.

  잘 지내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 애의 소식을 들은 건, 그로부터 몇 주 뒤.

  직접 연락하기는 꺼려져 수린에게 전화를 걸었던 날이었다.

  그 애의 소식을 물었을 때, 죽었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무감해서 옷을 갈아입다 말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뺨과 어깨 사이에 끼고 있던 휴대폰을 제대로 잡아 귀에 댔다.

  “……뭐?”

  죽었다고, 걔.

  심드렁한 목소리에 멍한 얼굴로 한 번 더 되물었다. 들려오는 대답은 같았다. 몸이 부르르 떨렸고 식은땀이 났다. 지끈거리는 머릿속을 가느다란 이명이 관통했다.

  “그럴, 그럴 리가. 누가 죽…… 일단 끊어봐.”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기 전 들린 수린의 작은 한숨 소리가 귀에 박혔다.

  나는 멍청하게 풀어진 얼굴로 익숙한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ㅡ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리다 기계음이 이어졌다. 심장이 발 끝까지 뚝 뚝 떨어졌다. 발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현관문이 열리고, 정신없이 뛰쳐나가 그 애의 집 문을 두드렸다.

  “권서해!!”

  초인종을 누르고, 주먹으로 문을 쳤다. 답이 없었다.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땀에 젖은 온몸이 창백하게 식었다.

  “어……아…….”

  발 밑이 차가워 천천히 정신이 들었다. 맨 발로 뛰쳐나왔던 모양이었다. 철문이 부서져라 내리쳤던 손날이 화끈거렸다. 정제되지 않은 숨을 내쉬느라 몸이 바르르 떨렸다. 멍하니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던 휴대폰을 꺼냈다.

  “아……씨.”

  배터리가 방전됐는지 순식간에 화면이 까맣게 가라앉았다. 충전기를 찾으러 다시 집으로 가 현관문을 열고, 까만 발바닥으로 방 안으로 뛰어들어가면서도 머릿속은 잔뜩 뒤엉켜 혼란스러웠다.

  영겁 같은 몇 초의 기다림 끝에 전원이 켜졌다. 느리게 바뀌는 화면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빠르게 잠금을 풀었다.

  메시지에서 익숙한 번호를 찾아 들어갔다. 010-****-****. 눈을 감고도 칠 수 있는 그 애의 번호로 일부러 읽지 않았던 문자 몇 통이 빨간 숫자를 매달고 맨 위에 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 애의 이름을 눌렀다.

  마지막 문자는 몇 주 전으로 찍혀 있었다. 문자를 보내려다 말고 스크롤을 올렸다.

  ‘……내가 이런 말을 했던가?’

  기억은 흐려졌고 억지로 흘려보낸 과거는 낯설기만 했다. 멍하니 스크롤을 내리던 손은 그 애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문자에서 멈췄다.

  ㅡ만나자.

  그 뒤로 전원을 껐었던지, 몇 번의 매너콜이 남아 있었다.

  “……”

  부산스럽게 엉킨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다. 호흡이 떨렸다. 수그린 고개 밑으로 눈물이 떨어졌다. 오래도록 참았던 눈물이 가슴에 얹힌 것처럼 몸이 밑으로 허물어졌다.

  언젠가 그 애가 붙들었던 마지막처럼, 나도 붙들 수 있다면.

  그러나 영영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대답 대신 부고를 들었을 때처럼 나는 물아래로 까맣게 가라앉는 불티가 된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난 나름 용기 낸 안부 문자에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조금은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바보 같이. 그 애가 죽은 줄도 모르고.



  에어컨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굳게 감고 있던 눈을 느리게 뜨자 다시 그 애가 보였다. 정장을 살 돈이 없어 엄마의 정장을 빌려줬을 때, 언젠가 꼭 갚겠다던 그 애의 말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나는 여전히 그 애가 밉다.

  아줌마에게 매일 같이 맞으면서도 매정하지 못했던 그 애가.

  보이는 것만이 사랑이어서, 우리의 동정만으로도 삶을 이어갈 수 있어서, 자신을 몰아붙여서라도 보이는 것으로 갚아야만 했던 그 애가.

  그럼에도, 늘 내가 아닌 엄마를 바라보며 애정을 갈구하던 그 눈동자만은…… 조금은, 안쓰러웠을지도 모른다.

  부유스름했던 초점이 잡히면서 까만 장례복을 입은 엄마의 모습이 희뜩하니 어른거렸다. 나는 향을 피우는 엄마의 뒷모습을 멍멍히 바라봤다.

  엄마는 여전히 그 애가 당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애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등을 돌리고 우시는가.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있으니까, 아줌마가 올 지도 몰라서……

  별 볼 일 없는 이유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 애에게 필요한 건 내가 아니라 엄마니까.

  엄마의 다정한 눈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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