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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음 Aug 31. 2024

우상을 위한 레퀴엠

허상을 사랑했다


은랑의 신은 인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몸을 입은 신.


“뭐야…….”


그런 자신의 신의 이름이 어째서 아침 댓바람부터 매스컴에 도배되었는지. 은랑은 잠에서 덜 깨어 멍한 얼굴로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눌러보았다.


—또 사이비……

—전 진명사랑교회 피해잡니다. 교주 이서형은 자신을 신이라고 자칭하며 제게 접대를 요구했습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두려움은 아니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눈동자가 부산스럽게 얼굴을 가린 머리칼을 정돈할 새도 없이 바삐 움직였다.


“이……서형…….”


창을 닫고 검색창에 ‘이서형’을 쳤다.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몇 분 전에 올라온 기사부터 14시간 전 올라온 기사들이 물밀듯 쏟아졌다.


‘진명사랑교회 이서형 교주, 아동 성범죄 연루……’

‘나도 당했다… 진명사랑교회 이서형 교주를 둘러싼 미투 운동 이어져’


달칵. 달칵. 달칵.

새로고침 버튼이 빠르게 굴러갔다. 화면에 코를 박다시피 한 은랑의 눈동자도 팽글팽글 돌아갔다. 익숙하지 않아 굼뜬 움직임으로 마우스를 연신 달칵거렸다.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기사들에 하나하나 ‘추천하지 않음’을 누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사이비라뇨? 제대로 알고 기사를 쓰셔야죠.


그녀의 신을 모욕하고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댓글들은 가장 위에 노출이 되어 있었지만, 정작 바른말을 하는 댓글은 가장 밑바닥에 처박혀 수많은 ‘싫어요’와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대부분이 그 사람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댓글이었다. 그녀는 비난하는 댓글을 남김없이 정독한 후 다시 스크롤을 올려 좋아요를 눌렀다.


누군지 몰라도, 그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실한 신도임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의 믿음과 용기에 감복했다.


은랑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노트북 전원을 끄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휴대폰도 겨우 습득한 수준인 그녀에게 노트북은 영 적응되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켜고 조금 전과 같은 사이트에 들어갔다.


박해는 찰나의 시련이다. 거룩한 순교자가 되어 그분의 곁으로 갈 수만 있다면, 순교조차 거룩할 것이니, 박해를 기뻐할 것……


그녀는 지난 예배 시간 들었던 말씀을 복기하듯 중얼거리며 기사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먼저 장문의 글을 쓰고, 교회의 신도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그의 무죄를 입증하는 근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복사. 붙여 넣기. 등록. 붙여 넣기. 등록.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어떤 일이든 감내할 수 있다.

고난 중에 있는 그의 신을 위한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면, 십자가를 지고 몇 번이고 골고다 언덕에 오를 것이다.



오후 한 시가 다 되어갈 무렵, 점심을 먹던 은랑의 휴대폰이 울렸다. 은랑은 거실 탁자에 두고 온 휴대폰을 가지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벨 소리로 설정해 둔 찬양을 흥얼거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언니. 바빠?]


동생 은새였다. 은랑은 단조롭게 대답하며 스피커폰으로 전환해 탁자 위에 내려두었다.


은새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가라앉아 있었다. 은랑은 휴대폰이 구형이라 음질이 좋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은새는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늘였다.


[내가… 그때 말한 거…]


은랑은 숟가락을 탁 소리 나게 식탁에 두었다.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던 은새가 입을 다물었다.


“그 얘긴 더 안 듣는다고 했지.”


건조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을 끊자 은새도 더 말이 없었다.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알아? 다들 얼마나 걱정하는데. 도대체 왜 그랬어?”


대답이 없었다. 은랑은 침묵의 이유를 알지 못해 답답하기만 했다. 며칠 전 대뜸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은새와 언쟁을 벌인 후로 쭉 냉전 상태였다.

휴대폰 너머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다 이내 통화가 끊어졌다. 은랑은 짧은 통화 기록을 흘끔 보다 말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알아서 하라지.

내가 상관할 바 아냐.





은랑은 티브이 리모컨 전원을 눌렀다. 벌써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진명사랑교회에 대한 반응은 식지 않고 뜨거웠다. 은랑은 미간을 좁히며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러나 채널을 돌려도 비슷한 화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어떤 채널에선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숙인 채 인터뷰까지 하고 있었다.


은랑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저렇게까지 할까?

우리가 뭘 어쨌는데?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했지만, 은랑은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무감한 얼굴로 채널 이동 버튼을 누르던 은랑이 손을 멈췄다. 번쩍거리는 플래시 사이로 그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은랑은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긴 고요를 깨고 휴대폰이 울렸다.


은랑은 천천히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기사 봤어?]

“무슨 기사—“


또 무슨 기사가 나온 건지 확인이라도 할 요량으로 은랑은 휴대폰을 귓가에서 뗐다.


“—저는 신이 아닙니다!”


통화 소리가 멀어지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선명히 귓가에 박혔다. 그에 맞춰 터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를 따라 한 박자 늦게 은랑의 고개가 올라갔다.


“결코 메시아라 한 적 없어요, 또, 또… 아, 여신도들도 건들지 않았습니다. 신께 맹세해요.”


휴대폰 너머에서 뭐라 소리치는 것 같은데, 이명처럼 어지러이 섞인 소음 속에서 뚜렷이 들리는 목소리는 단 하나였다.


그의 말이 지칠 줄을 모르고 쏟아진다. 주름진 얼굴 위로 플래시가, 빛이 쏟아진다.


얼굴 위에 눅눅하게 눌어붙은 세월의 흐름이 두려움으로 일그러지고 두 손을 공손하게 앞으로 모은 채 언제나 꼿꼿하던 허리를 몇 번이고 주저함 없이 숙인다. 둥그런 정수리 위로 희끗희끗한 빛이 퍼진다.


“저, 저의 신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한 번도, 예… 부정을 저지른, 흐윽. 없습니다. 전 안 했어요…….”


은랑은 휴대폰에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그의 말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꾸만 비껴갔다. 그녀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는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에게 믿음을 쥐어준 것은 그였다. 부순 것도 그였다. 두터운 성벽 같던 그녀의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발 밑으로 부서졌다……


내가 사랑한 것은 무엇인가.


은랑은 박동이 빨라진 심장을 움켜쥐고 정제되지 않은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신은 형태가 있었다. 위로와 축복의 말을 건네던 다정한 목소리도, 쉴 새 없이 사랑을 퍼붓던 그의 늙은 육체도, 말도……


그래. 사람의 거죽을 입고 이 땅을 정화하러 내려온 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가 결코 부정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 거짓으로 꾸며냈을 리가 없어.


내 기도를 기억한다고 했잖아.

가나안을, 주겠다고. 함께 영생을 누리자고……


느리게 깜빡이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소파를 짚은 손이 경련했다.


그의 안에서 신은 그였기 때문에 주저함 없이 신께 맹세할 수 있는 것이겠지.

어디부터 거짓이고 어디까지 진실일까.

이것도 고난의 일부인가.

아니, 아니…

자신을 부정하는 신이 존재하는지부터.


은랑은 천천히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눌러 껐다. 까만 화면에 멍청한 얼굴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허벅지가 화끈거려서 시선을 내리자 날카로운 손톱자국을 따라 선혈이 비쳤다.


“…..”


차라리, 의무가 된 믿음에 대해 한 번쯤이라도 회의를 가졌다면. 정말 실체가 있는지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돌이켜 생각할 수 있었다면, 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은랑은 그를 맹목적으로 믿었다. 단 한 번의 의심도 없었다.


끝까지 외면한 결과가 이것인가.

고작, 이것을 위해.


은랑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섬찟한 감각이 가슴을 관통했다.


실체가….. 없다.

허상을 사랑했다.


그 사실을, 지금에 와서야 알았다.


“아…. 은새. 아, 어떡해… 은새…”


그러나 장막이 걷히고 드러나는 진실에 아파할 시간 따윈 없었다. 은랑은 머리카락을 쥐며 신음하다 창백하게 식은 얼굴로 곧장 몸을 일으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구겨신은 신발이 계단 위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뒤늦게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은랑은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신발은 아무렇게나 벗어둔 상태였다.


뺨에 얼룩진 눈물 자국을 따라 눈물이 흘렀다. 충혈된 눈동자가 따끔거렸다. 살짝 고개를 틀어 무릎 위에 얹은 팔에 뺨을 기대자 방바닥에 짙게 자국진 은새의 그림자가 보였다. 끼익 소리를 내며 부산스럽게도 휘청였다.


창문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은새의 곧은 등 위에 빛이 내려앉았다. 창문 모양을 따라 각이 진 햇볕 위로 하얀 먼지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 작은 공간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주 느릿하게.


은랑은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금세 힘을 풀었다.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우습게도 눈과 귀를 가리던 장막은 하나 남은 가족을 잃고 나서야 천천히 걷혔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사정없이 밀려들어오고, 그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깊숙이 끌고 들어갔다.



은새는 작은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했다. 10평 남짓, 좁은 월세집임에도 그녀의 집은 늘 시끌벅적했다.

사흘이 지나면, 은새가 유망주라며 특히 예뻐해 자주 소식을 접했던 아이의 콩쿠르 날이었다. 몇 주 전부터 맞춤 꽃다발을 주문하며 들떠있던 은새가 떠오르자 가슴이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빠르게 수축되었다.


은랑은 몸을 일으켜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인 은새의 휴대폰을 집었다. 잠금 화면을 풀 방법을 고민하는데, 화면이 전환되며 잠금이 풀렸다.


은새와 그녀는 쌍둥이라 해도 믿을 만큼 얼굴이 닮아, 어릴 때부터 줄곧 얼굴 인식으로 장난을 치곤 했다. 자주 있었던 일이었지만, 배경 화면 너머로 비친 은랑의 얼굴은 어두웠다.


은랑은 머뭇거리며 메시지에 들어갔다. 스크롤을 내리며 은새가 입 아프게 자랑하던 그 아이의 이름을 찾았다.


[이하진(피아노)]


지난 문자를 눈으로 훑고, 자신은 이 애의 가족인데,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며 구구절절한 문자를 남겼다. 멍하니 정신을 놓은 채였다.


문득 정신을 차린 것은 잠시 뒤.


—선생님 어디 아파요? 아프지 마세요. ㅠㅠ


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빠르게 날아온 아이의 티 없이 맑은 답장을 보자 속에 꽉 막혀 있던 울음이 줄줄 흘렀다.


동생이 죽었다.


그 사실을 실감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은랑은 은새의 휴대폰을 쥔 채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하진의 집에 방문한 것은 비단 동생의 소식을 전해주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콩쿠르 전 날, 맞춤 제작했던 꽃다발이 문 앞으로 배송됐다.


은랑은 은새를 대신해 하진에게 꽃다발을 전해주었다.


은랑은 닫히는 문 사이로 마지막까지 열심히 손을 흔드는 하진에게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하진은 은방울꽃을 좋아해서, 꽃다발에는 은방울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은방울꽃을 왜 좋아하냐고 묻자, 작고 귀여운 것이 꼭 제 동생을 닮아서 좋다고 했다.


은랑은 발걸음을 돌리며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은새의 휴대폰을 켰다. 갤러리에 들어가, 익숙한 얼굴의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을 눌렀다.


진명사랑교회 교주 이서형을 둘러싼 미투 운동 관련 기사에서 봤던 여자였다.


은랑은 밝은 빛 아래에서 환하게 웃는 은새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다 휴대폰의 전원을 껐다. 까만 화면 위로 생기 없는 얼굴의 여자가 비쳤다. 은랑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은새도 화면 속에서 마주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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