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기

내 삶을 아카이빙하기

by 여름비 CLIO

기록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주 고민하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타인이 남긴 기록물을 가지고 공부하는 일을 하다 보니, 기록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국가적 기록에서부터 개인의 사소한 기록까지, 모든 것이 역사 공부의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 기록이나 역사의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에서 제일 기본이자 기초로 꼽는 것은 사료의 객관성과 신뢰성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를 사료라고 하는데, 객관성과 신뢰성을 인정받은 기록이 사료가 될 수 있다. 그 사료가 믿을 만한 것인지,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그것은 사실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역사학 공부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연구를 해야만 그 연구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객관성과 신뢰성이 없는 기록으로 연구한 자료는 더 이상 역사가 아니라 사이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어떤 기록이 좋은 기록일까, 어떻게 남겨야 기록을 잘하는 것일까 자주 고민을 한다.


기록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글로 남기는 방식이 나에게는 가장 쉬운 쉬운 방식이라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자주 고민한다. 내가 쓴 글이 나중에 어떻게 읽힐까를 고민하다 보니 글을 쓰는 것이 쉽지가 않다. SNS에 올린 그저 흘러가는 글이라고 생각하면 될 텐데 ‘내 글도 나중에 역사 연구를 하는 그 누군가의 연구자료가 되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것이 함부로 글을 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물론 내 글이 연구 자료가 될 리도 없지만, 혹여 어쩌다 내 글이 어떤 연구자의 자료 사이에 껴서 그 연구자의 시간을 낭비하게 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카페 알바를 해본 사람이 알바의 마음을 헤아려 아메리카노만 시키는 것과 같달까. 연구 논문 쓸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기존의 연구사를 분석하는 것, 내 주제와 티끌이라도 관련되는 것 같은 모든 자료를 끌어모으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 많은 자료를 모아서 읽는데, 끝날 때까지 뭔가 있을 듯한 느낌을 풍겨서 끝까지 읽었는데 아무것도 없는 자료 혹은 쓰레기 같은 논문을 읽게 되면 전생의 분노까지 치밀어 오른다. ‘아까운 내 시간!!!’ 하면서 말이다. 물론 학자라면 그런 쓰레기 자료라도 논문 머리말에 ‘이 자료는 쓰레기였노라’ 하며 쓰겠지만. 학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내 필요와 상관없는 글, 못 쓴 글을 읽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사실 내가 그렇다. 그러니 내 기록을 읽을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 것이다. 내 글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낭비한 시간에 대해 분노하여 쓰레기라고 욕하는 것에 대한 속상함과 슬픔이 먼저 염려되어 기록 남기는 것을 저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남기고 싶고,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좋은 글을 찾아 읽고, 전보다 더 좋은 글을 쓰려고 애를 쓰고, 전에 썼던 글도 다시 고쳐 쓰고 한다. 아마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다 그렇지 않을까. 그저 감정의 배설로만 사용한 글은 좋은 글이 아니다. 그런 글은 일기장에만 쓰면 될 일이다. 타인이 싼 똥을 길에서 보면 불쾌하지 않나. 똥은 의학적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남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제되었지만 읽기 쉬운 문장을 쓰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전달되는 글을 쓰고 싶다. 난해하지 않고 명료한 글. 그리고 감정적이지 않아도 감정이 전달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렇지만 그렇게 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많은 글을 읽어봐야 좋은 글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무조건 많이 읽기. 그런데 좋은 글은 정말 소수다. 글을 읽다 보면 앞에 이야기했던, 전생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로 글 읽기가 쉽지 않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내가 글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다. 그럼 좋은 글은 왜 쓰려고 하는 것일까?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기록된 것만이 기억된다. 기록되지 않은 것은 그냥 흩어질 뿐이고, 한 순간의 유희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남기고, 또 잘 기억하기 위해서 잘 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잘 쓰고 싶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 잘 쓰냐고. 다시 답답해진다. 그런데 한 전시와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서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다.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하는 ‘힐마 아프 클린트 : 적절한 소환’이라는 전시다. 스웨덴 출신의 화가인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의 전시였는데, 힐마는 추상미술의 시작을 다시 쓰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나는 미술에는 문외한이라서 그의 그림을 분석하거나 평가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그의 그림이 어떤 점에서 좋은지, 다른 작가들의 그림과 어떠한 차별성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 또 어떠한 벅찬 감동이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림 옆에 붙어있는 설명이 있어야만 짐작이 가능한 정도였다. 나에게 미술은 늘 어려운 장르다. 그럼에도 이 전시가 좋았던 건 맨 마지막에 전시되어 있었던 ‘청색 화첩’ 때문이었다. 힐마는 파란색 화첩에 자신이 평생 그려왔던 그림들을 다시 그려놓고 자신의 사유와 기억을 복기해서 적어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드로잉 하면서 새로운 변형을 하여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었다고 했다. 그 섹션을 보면서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기록이란 창작의 바탕이 되는구나. 이것이 기록의 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한 일을 점검하기 위해서 기록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사유를 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을 나의 글쓰기에 어떤 방법으로 접목을 시키면 좋을까. 전시를 보고 나서도 내내 생각을 했다.


그 방법을 찾은 건 유튜브 콘텐츠였다. 유튜브를 거의 잘 보지 않는데, 친구가 공유를 해서 보게 되었다. 대한민국 1회 기록학자라고 하는 김익한 교수가 나오는 영상인데, 이 분이 제시하는 기록하기 방식을 보면서 무릎을 탁! 하고 쳤다. 그 콘텐츠 내용을 내가 이해한 대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초에 1년짜리 다이어리를 사서 연간 계획을 잡아서 다이어리를 쓰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1개월짜리 다이어리를 쓰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월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주간, 일간으로 나눠서 루틴화 시키라는 것. 여기까지는 다른 자기계발서에서 제시하는 내용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 하나는 매일 순간순간 짬이 날 때마다 했던 일을 한 줄로 기록을 하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런 일정이 있다고 해보자. 오전에 회의를 하고, 거래처 미팅을 하고, 친구와 만나 밥을 먹었다. 오후에는 신제품 개발과 관련한 자료를 수집하고, 외근 갔다가 다시 복귀한 뒤 퇴근했고, 퇴근 뒤에는 부모님 댁에 들러서 부모님의 일처리를 해드리고 집에 왔다. 이렇게 바쁜 일정이면 집에 와서 드는 생각이 ‘와.. 너무 피곤해. 빨리 잤으면. 내일 출근 안 했으면..’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일기를 쓰려고 하더라도 오늘 힘들었던 일만 기억나고 순간순간의 좋았던 기억은 잘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김익한 교수는 하나의 과업이 끝날 때마다 짧은 문장을 써두라고 한다. 오전에 회의를 마치고서 짧은 문장을 쓴다면 ‘오늘 내가 준비 잘해서 회의시간이 즐거웠다’ 혹은 ‘자료 하나 빼먹어서 좀 아쉬웠네. 다음엔 잘해야지’라고 쓸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친구와의 점심 약속도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숨통이 틔네. 자주 보면 좋겠다’ 혹은 친구의 안부에 대해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피드백을 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나중에 모아서 정리를 하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단편적이라고 생각했던 내 삶이 꽤나 알찬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조선시대 사초(史草)*를 쓰는 방식이 아니겠나.


나는 역사를 공부했으면서도 왜 이런 방식으로 기록할 생각을 못했을까(참고로 김익한 교수는 학부에서는 역사를 전공했다). 내 삶을 아카이빙을 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재도 많아야 한다. 그 소재가 왜 특별한 경험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나의 일상 어느 것에도 소재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아카이빙해 두는 것이 바로 글쓰기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왜 이제야 깨달았나. 그래서 이번 가을부터는 내 삶을 아카이빙 해보기로 했다. 김익한 교수가 제시한 기록의 방식을 나에게 맞게 변형해서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첫술에 배 부를 수 없듯, 아마 처음엔 헤매겠지만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또 나에게 맞는 방법도 찾을 거라 생각한다. 내 삶을 아카이빙하기. 오늘부터 시작!



*사초(史草): 조선시대에 사관(史官)이 기록하여 둔 사기(史記)의 초고로, 실록의 원고가 되었다. 그리고 사초는 실록 편찬 작업이 끝나면 세초(洗草)라고 해서 물에 씻어서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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