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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기준? 그냥 서로 받아들여주는 건 아닐까?

나만의 기준에서 바라본 것뿐이었다. 그들도 결코 틀린 게 아니다!

by 관돌

현재는 아니지만, 한 때 중독 분야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렇다고 전문가라고 불릴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가진 건 아닌 듯싶다.


그런데 갑자기 왜 뜬금없이 '중독' 이야기를 꺼내는 건지 궁금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며칠 전, 어느 알코올 중독자 분의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가 떠올랐기에 글을 남겨보기로 했다.


그런데 웃긴 건 이 이야기는 '중독'이 주된 소재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밝힌다.

아마도 주된 내용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관계에 대한 변화라고 해야 될까?


나에겐 나를 포함해 네 명의 친구 무리가 있다. 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다 보니 최소 20년 이상은 알고 지내왔다.

그만큼 각자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니 이젠 잘 알고 '있다'는 표현보단 '알고 있었다'라는 과거형이 더 어울리지 싶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 명의 친구들은 여전히 고향에서 지낸다.

때때로 술자리도 자주 갖는 편이다. 그래서 어릴 때처럼 사사로운 일로 다투거나 삐지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술잔을 기울이는 걸 보면 여전히 우정을 빙자한 애증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를 빼곤 모두 남편이자, 아빠... 즉,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

부부 모임을 한 번씩 하면, 편하게 얘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서로 눈치도 봐야 된다.

그래서 예전처럼 깊은 속내를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부분도 가끔씩 있다.


이건 어쩌면 당연한 변화이기에 서운하거나 아쉬운 점은 전혀 없다.

나 역시 지금은 모르겠지만, 만약 결혼을 한다거나 상황의 변화가 생긴다면 분명 그들과 같은 상황이 될지도 모르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각자 위치나 상황에 따라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 생각만이 맞다고 고집하는 건 절대 옳은 생각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서로 직업도 다르고, 지내 온 경험이 다르기에 누군가의 생각이 맞고 그름은 쉽게 판단하기 어려워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마치 정치 얘기를 하면 답이 안 나온 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가급적 모임에서 정치 얘기를 일절 피하는 것과 같이 어느 순간부터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냥 혼자 되뇌면서 감추려고 한다.

괜히 얘기를 꺼내면 서로 간의 오해가 생길 수도 있기에...


그리고 이제 서로 시간 맞추기도 힘들어, 기껏해야 일 년에 다섯 번 내외로 만날 수 있어 기분이 상할 얘기를 굳이 꺼낼 필요도 없다는 생각에 그냥 웃고 떠들며 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색다른 경험을 한 것 같다.

이 또한, 누군가의 잘못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다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받아들이는 자체가 솔직히 쉽지 않았다.


우선 상황을 얘기하자면...

주말 아침, 카톡에 지인 중 누군가 '유고(有故)하셨습니다.'라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유고?... 무슨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말인가?'

보통 '작고(作故)하다.'라는 말을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궁금해졌다.

고인의 연세도 실제 얼마 되지 않았기에 어떤 사고가 있다는 것으로 예상도 되었다.


당시 타지에 있어 얼른 차편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집으로 내려가 옷을 갈아입고 한 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이미 그들은 모여 있었다.

내가 온다는 소식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솔직히 피곤했지만, 안 가볼 수 없는 자리이기에 천천히 이동을 했다.


도착을 해서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첫날이고,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가족과 그들만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빈소에 가서 인사를 드린 후, 자리에 같이 합석했다.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사고가 있었던 걸까? 솔직히 물어보기도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내 상식에서는 많이 당황스러운 답변이었다.


"또 브리핑해 줘야 되나? 벌써 세 번째다."

같은 시간에 오지 못하고 각자 따로 오다 보니 아마 같은 질문을 꽤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에 한 번 놀랐고, 단어 선택에 뜨끔했다.

어쨌든 심각하게 태클을 걸만한 상황은 아니다 보니, 어떤 상황인지 들어보았다.


사망 원인은 술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이 아닌 중독이었다.

꽤 오랜 기간 술을 드셨고, 입원 치료도 받아 왔지만 쉽게 치유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씁쓸했지만 한 편으로는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서로에 대해 꽤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속사정까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런데 잠시 후,

또 한 번 귀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을 경험했다.


고인을 응급실로 옮긴 후 치료를 받다가, '사전연명치료'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연명치료 거부를 위해서는 친족의 서명이 필요하였는데, 자세한 사항은 개인적인 일이다 보니 세부적인 상황은 생략할 예정이다.


어쨌든 내 귀를 의심한 부분은 누군가 한 명이 '사전연명치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듯했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야! 그거 입에 씌운 호흡기는 죽어야 떼는 거가?"

"죽어도 계속 치료하는 거 아니가?"


"죽어도...", '죽어도..."


이상하게 내 귀엔 그들의 대화 내용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죽어도... 죽고 나면...'이라는 단어 밖에 맴돌지 않았다.


'지금 여긴 분명 장례식장인데...'

'굳이?'

'왜 이걸 여기서 밝히려고 하는 거지? 이게 맞나?'

'궁금하면 그냥 인터넷 찾아보면 되지 않나?'


"야! 그 얘기는 여기서 계속할 얘기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상세히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돌아가시면'도 아니다. '죽으면...' 이란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해졌다. 더 이상 표정관리도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너무 과민한 반응인가? 이들은 전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데...'

'분명 의도적인 단어 표현도 아닐 건데... 그냥 일상 대화 같은데... 왜 이리 민감하지?'

'막말로 내 장례식장도 아닌데... 왜???'

"그들 또한, 전혀 나쁜 의도로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내 기분만 불쾌하지?'


그냥 혼자 생각만 하고 삭혀버렸다.

내 기분을 솔직히 드러내기도 싫고, 그럴 필요도 전혀 없는 상황이기에...


그리고 내일 회사 일로 인해 다시 돌아가야 했기에 먼저 돌아간다고 얘기를 했다. 인사를 나누고 다시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 오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나만 이렇게 떨어져 지내다 보니 너무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스스로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나의 솔직한 마음은...

분명 때와 장소라는 게 있는 건데...

아무리 친구이지만, 웃고 떠드는 것도 격식과 예의라는 게 있는 건데...


그 상황에서는 내 기준에 부합되는 건 결단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는 말 그대로 나만의 기준일 뿐...

결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단순한 상대적인 것 일 뿐이다.


분명, 각자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해 봤다.

바쁜 시간 찾아와 준 이들을 위해 상주로서 그들의 분위기를 맞췄을 수도 있었고...

상주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웃음으로 대체하려 했을 수도 있었겠지?


다만, 그러한 이유 속으로 내가 '풍덩'하고 쉽게 빠져들지 못할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 경험과 해결방식이 다르기에 그냥 받아들여야 될지도 모른다.

옳고 그름을 누구 한 사람의 잣대로 절대 판단할 수 없으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작은 것 하나에도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며 웃고 떠든 시간들이 더 많았었는데...


지금은 분명 같은 상황을 바라보아도,

누군가는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어느 누구보다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이젠 많이 다르다.

아니 이 역시도 과거형의 '달라졌다'는 표현이 더 맞는 듯하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달라졌는지 모르니 말이다.


정답이 없는 서로 다름...

분명 받아들여야 되지만 참 쉽지만은 않은 현실인 것 같다.


가끔은 되지도 않은 일로 심각하게 싸우거나 삐지기도 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화해하며 웃고 떠들던

그 어린 시절...


결코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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