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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둘셋 Jul 09. 2024

직원에게 일 시키는 게 어려운가요?

팀원일 때는 '팀장은 좋겠어, 우리한테 시키기만 하면 되니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팀장이 되니까 또 그렇지가 않았다. 팀원에게 일을 시키는 게 너무 어색하고 어려웠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언제든 팀원의 입에서 "제가 왜 그걸 해야 하죠?"라든가 "저 지금 너무 바빠서 다른 업무는 못하는데요?"라는 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일을 시켜야 할 때면 늘 긴장이 됐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문득 내가 더 이상 팀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유가 뭘까, 언제부터였을까.



| 마음가짐의 변화, '이 일을 하는 게 너한테 유리할걸?'


예전에는 나를 위해서 혹은 팀을 위해서 네가 이 일을 좀 '해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이 일을 하는 게 너한테 좋으니 '할지 말지 네가 선택해.'라는 접근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방식대로라면 팀원과의 대화는 '어쨌든 내 결정에 따라줘'라는 부탁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내 마음속에 '그래도 안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긴장이 자리하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접고 들어가는 것도 있고, 장담할 수 없는 보상을 던지기도 하면서 팀원에게 끌려가곤 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고부터는 달랐다. '팀원이 나의 제안을 거부해도 내가 손해 볼 것은 없다'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일을 시킬 때 팀원과의 대화가 짧고 담백할 수 있었다. 물론, 실제로 내가 손해 볼 게 없을 리는 없다. 팀원이 제안을 거부하면 나는 대체자를 찾든가 내가 직접 하든가 그도 아니면 미흡한 채로 사업을 끌고 가야 하니 편치는 않다. 하지만 '이 팀원이 이걸 무조건 해줘야 하는데...'라고 생각할 때보다는 '아니면 말고'라고 생각할 때 팀원이나 일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훨씬 여유로운 게 사실이다.



| 마음가짐의 변화는 나의 역량에서 비롯되는 것


그런데, 내가 가진 밑천이 일천하면 생각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정 안 되면 팀원의 업무를 나라도 나서서 하겠다는 생각은 해당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미흡한 채로 사업을 끌고 가겠다는 생각 역시 조직 내에서 나의 입지가 탄탄해야 가능하다. 전문성도 없고 조직에서 신뢰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내 앞가림도 힘겹기 때문에 팀원에게 끌려다니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주변의 팀장들에게 '실력이 없고 자신이 없더라도 일단 마음가짐부터 바꿔라'라는 말을 한다. 역량이 충분해서 팀원에게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배짱이라도 있어야 팀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 팀장이 팀원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여기까지 말하면 주변의 팀장들은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팀원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걸어. 평가권이나 인사권이 전부 나한테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일개 팀장이 인사와 관련해서 결과를 '보장'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팀장은 팀원이 좋은 고과를 받거나 승진을 하는 데 있어서 보다 유리할 만한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챙겨주는' 건 할 수 있다. 


내 경우는 중요하고 상급자 보고가 잦은 업무를 승진 예정자에게 배정하고 옆에 붙어서 같이 챙기고 상급자에게 수시로 팀원의 성과를 언급한다. 내가 상급자와 소통이 편한 경우는 상급자에게 미리 팀원에 대한 격려를 요청하고 팀원 혼자 상급자 보고를 보내기도 하는데, 상급자에게는 내가 신경 쓰는 팀원이니 챙겨 달라는 뜻을 전할 수 있고 팀원에게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렇게 한다고 팀원의 평가나 승진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무엇보다 내게 이런 마음가짐과 실행력이 있어야 팀원에게 일을 시키고 팀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 그래도 팀원이 거부한다면


물론, 팀원들이 항상 나의 제안을 받는 건 아니다. 그럴 때는 나도 두 말 없이 해당 팀원에 대해 신경을 끊는다. 차갑게 군다거나 질책을 하지도, 투명인간 취급을 하지도 않는다. 그냥 팀원이 할 수 있다는 범위 안에서만 일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그로 인해서 내가 감당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게 낫지 팀원 때문에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받는 건 스스로 더 한심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성과평가를 할 때 그 팀원만큼 고마운 직원이 없다. 성과평가는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팀원 누군가는 최하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고민 없이 그에게 최하 등급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실력이 먼저, 그게 안 되면 배짱이라도


'너한테 좋을 것 같아서 하는 얘기인데, 싫으면 말고.'라는 입장을 견지하자면 배짱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배짱은 성격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팀 장악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 '한 명이 빠져도 다른 사람들을 활용할 수 있고 정 안 되면 내가 하면 되지. 아니면 그냥 망쳐버리고!'라는 자신감은 업무를 잘 모르고 팀원에게 끌려다니고 있을 때에는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얘 빠지면 그 일은 누가 하지?, 나도 모르는 분야인데.. 다른 팀원들도 안 한다고 할 거고, 위에다가는 뭐라고 말하지? 얘를 봐주면 다른 직원들도 불만 생기는 거 아닌가?'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 결국은 '살살 달래서 일 시켜야지 어떡해'라는 결정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고충을 토로하는 팀원에게 무턱대고 공감과 위로부터 하고는 '내가 신경 쓰겠다'라고 공언한다. 말이 좋아 '살살 달래고 신경 쓰는 것'이지 실제로는 팀원의 눈치를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팀장으로서 실력을 쌓는 게 먼저다. 하지만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면 배짱이라도 있어야 팀을 운영할 수 있는 것 같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ep793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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