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둘셋 Jul 22. 2024

직원의 기대 vs 상급자의 기대

동료 팀장이 새해 운세를 봤다면서 "나는 내년에 주변의 기대를 잘 살펴서 일하래. 상대는 밥상을 원하는데 나는 꽃을 갖다 주는 일이 없도록 하래."라고 한다.


내가 "그래? 그럼 본부장이 뭘 원하는지만 잘 살피면 되겠네."라고 했더니 동료가 놀란다. 동료는 "아... 나는 팀원들의 기대가 뭘까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한다.


'훌륭한 리더'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아랫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리더'를 떠올린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패키지처럼 따라붙는 자격 요건으로는 소통, 수평적 리더십, 책임지는 자세, 신뢰할 수 있는 성정, 업무적 유능함, 직원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훌륭한 리더'를 꿈꾸는 많은 팀장들은 리더의 덕목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혼돈 속에서 헤매곤 한다. 


내 위에 아무도 없는 CEO가 아닌 이상 우리가 강요받는 '리더'의 덕목이라고 하는 것들은 한 사람이 괜찮은 관리자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대체로 쓸모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팀장이 팀원들의 기대를 살피고 채워주는 데 급급하게 되면 팀장으로서 성장도 불가능할뿐더러 결과적으로는 팀원들의 신뢰도 얻기 힘들다. 팀장은 오히려 자신의 상급자의 기대를 살피고 그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그랬을 때 자신의 성장도 가능하고 팀원들의 신뢰도 따라온다.


*

내가 처음으로 팀장이 됐을 때, 팀원들은 팀장이 해결해줘야 할 최우선 과제로 '아르바이트생의 처우 개선'을 외쳤다. 아르바이트생은 단순 입력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아르바이트생이 자주 바뀌다 보니 그때마다 시스템 활용 교육을 새로 시켜야 하는 팀원들 입장에서는 아르바이트생 교육이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나는 본부장을 찾아가서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하고 아르바이트생의 시급을 올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본부장은 반 농담처럼, 그러나 단호하게 "그 팀은 아르바이트생 없으면 안 돌아가나? 그러면 그 팀 없애야겠네. 기다려라, 조만간 내가 없애줄게."라고 하고는 더 이상 내 얘기를 듣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나는 다른 선임 팀장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팀원들과도 의논해서 해당 업무를 자동화했다. 나의 시야가 팀원들에게만 고정돼 있었다면 '자동화'라는 선택지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

20여 년 전, 인터넷 커뮤니티 팀장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서비스 이용자들이 각종 모임을 만들어 인터넷에서 교류하던 때다. 당시에는 본사나 명동 등의 핫플레이스에 커뮤니티 이용자들을 위한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어서 고객을 붙잡아 두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전략이었다. 


나는 새로 팀장을 맡아서 소비자 조사를 진행했고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한결같이 더 나은 오프라인 공간을 원했다. 소비자들과 수시로 소통하는 팀원들 역시 오프라인 공간의 확장과 업그레이드는 필수적이라는 입장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고 수차례의 보고 끝에 공사를 위한 몇 억 원의 예산을 따냈다. 


그런데 옆 부서의 선임 팀장이 "진짜 공사를 하기로 했다고? 위에서는 지금 있는 공간도 폐쇄하자고 해주길 바랐을 거 같은데."라고 하는 것이다. 소비자와 직접 만나고 팀원들과 수 차례 논의해서 오프라인 공간의 확장을 결정한 내 입장에서는 선임 팀장의 말이 너무나 터무니없게 들려서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공사를 마치기도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에게 의존하던 서비스 체계는 빠르게 무너졌고 호화롭게 꾸민 오프라인 공간은 텅텅 빈 채 방치되다가 2년 후 모두 철거됐다. 


경영진은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에게 의존하는 수익체계가 무너지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그 시기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느닷없을 걸로는 보고 있었는데, 해당 팀장이 소비자 조사 등을 근거로 오프라인 공간 확장을 밀어붙이니까 '1~2년은 더 버티겠지.'라고 믿고 예산 지원을 해줬던 거였다. 


뒤늦게 '아예 폐쇄하는 게 어때?'라고 했던 선임 팀장의 말이 생각났다. 그 선임 팀장의 시야가  나보다 넓었던 거다. 나는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팀원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회사에서나 팀에서나 내 입지가 얼마나 곤궁했을지는 따로 적지 않아도 짐작될 것이다.




관리자로서 의사결정을 할 때 내가 충분히 넓은 시야를 확보한 상태인가를 생각한다. 이를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이 상급자의 요구와 기대 혹은 고려 요소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상급자가 갖고 있는 정보를 공유받고 내가 속한 본부의 큰 방향을 포착할 수 있다. 팀원들의 생각은 무시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앞서의 동료처럼 팀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상급자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에는 소홀한 경우가 많기에 다시금 떠올려 본 경험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원에게 일 시키는 게 어려운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