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에서 자격 지심 폭발한 팀원, 말대꾸의 최후

그게 바로 나예요, 흑흑.

by 라화랑

'자격지심'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자격지심'에 빠지지 않은 눈으로 쓸 수 있을까. 절여질지언정 다음날 봤을 때에도 부끄럽지는 않은 일기를 쓰고 싶은데. 어제 남을 욕하는 글을 두 바닥이나 넘치게 썼다. 그리고 어젯밤부터 후회했지. '꼭 내일 일어나면 다 지워버리겠노라.'고. 이건 비공식적이지만 공식적인, 내 돈 주고 주말을 반납한 회사 워크숍- 제주도 2박 3일간 생긴 마음의 체기. 나이 많은 동료의 말에서 발견한 자랑, 그 자랑을 흘려 듣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고 마는 나의 어리석음. 그 사람을 그렇게 쏘아볼 게 아니었는데.

애먼 데 화풀이하고 지랄이야, 너는. 여전히 덜 자랐구나.

원망스러운 마음은 결국 나를 향하고- 나의 못됨에 소스라치게 놀란 몸이 소화 불량을 선언한다. 그러고 보니 몸은 참 신비롭다. 마음이 소화를 못하는데, 어찌 소화기관에서 신호가 오냐고. 여행이 끝난지 4일째, 여전히 나는 배가 땡땡 불러 얕은 트름을 자주 한다. 저녁 한 끼쯤 건너뛰어야 하는데 꾸역꾸역 나는 또 음식을 채워넣는다. 그러면서 '내일 점심은 절반만 먹어야지.' 같은 말만 반복할 뿐. 비워야지, 비워내야 하는데, 그만 간직해야 하는데, 토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내 욕심에 대한 이야기.



"우리 제주도로 다같이 여행 갈까?"

회의에서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진짜 그럴 줄은 몰랐다. 한국인의 3대 거짓말 중 하나, [언제 시간 되면 같이 밥 먹어요.]의 변형인 줄로만 알았지. 막내 팀원이 정말 팀장님의 신호를 받아 숙소를 예약하고, 엑셀로 계획을 짜와서 공유할 줄은 몰랐단 말이다. 나는 의아했다. 나만 빼고 다들 화기애애하게 너무 좋다고 박수를 치고 있었으니. 무려 2박 3일의 주말을 통채로 내 돈을 주어가며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하겠다고요? 혹시 나 몰래 그들만의 회식을 자주 했던 건 아닐까? 내가 왕따였고, 그들은 나를 뺀 카카오톡 단체방이 있어 서로 안부를 살갑게 묻는 사적인 사이가 된걸까? 9개월동안 같은 팀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를 하고 있지만- 가끔 쉬면서 안부 인사 정도 가볍게 나누긴 하지만- 주말 2박 3일을 내리 함께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가 된 줄은 몰랐다. 이쯤 되면 나는 심각하게 사회 생활을 돌이켜봐야 한다.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왕따인 걸까? 하고.



어쨌거나 거절할 수 없는 2박 3일의 일정이 다가왔고, 나는 내 돈을 주고서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여행의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마음이 답답한 걸 어찌 알았는지- 첫 날 저녁부터 몸살끼와 체기가 올라왔다. 울렁울렁거리더라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헛구역질을 몇 번 해 댔다. 문을 다시 열었더니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팀원에게 나는 말해야 했다. "잠시 쉬겠다."라고. 걱정어린 시선들을 뒤로 한 채, 나는 그들이 새벽 1시까지 떠드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그러니 자격지심으로 폭발한 날은 둘쨋날 저녁이었다. 점심으로 먹은 제주 생고기가 무척 맛있었고, 저녁으로 먹을 하나로마트 회가 싱싱했다. 건강한 몸을 회복한 나는 렌터카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생각을 고쳐먹었더랬다. '그래도 너무 벽 치고 무조건 싫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왕 온 거 여행온 것 처럼 즐겁게 지내보자.' 애써 긍정적인 눈을 장착한 나에게, 자꾸 들리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건 누군가의 말소리였다. 나이가 나보다 서른 살은 많은 팀원이 있다. 자식들이 나와 동갑이거나 한두 살 차이 나는 분. 거기서 시작됐다.

"우리 애한테 내가 타던 레인지로버를 줬는데, 이 (bmw suv)차를 타 보니 똥차를 줬다고 딸이 질색팔색을..."

"우리 애한테 결혼해서 1억 5천씩 줬어. 자기도 결혼한다며. 자기 부모님도 그 정도 줄 수 있을걸? 물어봐봐."

"우리 애가 글쎄 아파트 청약에 당첨이 된 거야. (그 아파트 15억 짜리잖아요?) 아유, 뭐. 그거 당첨되려고 마음 졸였대."

"돈 많은 사람한테 시집가. 돈이 정말 중요해. 얼른 아파트 사."

"나는 언제 새 아파트에 살아보나. 우리 애가 결혼하기 전에 아파트 리모델링을 하라는거야. 하도 난리쳐서 했더니, 신랑을 데려오더라고. 요새 자식들은 다 그런가봐. 자기네도 그렇지?"


심지어 제일 어린 팀원을 한 명씩 붙잡고 주식 투자를 해라, 아파트를 빨리 사라 같은 말을 진지하게 30분씩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분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분들도 진심으로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나 빼고 다들 이 여행을 좋다고 끄덕인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나는 저렇게 돈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돈 이야기를 널리 퍼트리는 사람이 거북하다. 말을 끊을 수도 없이, 제일 나이도 경력도 많다. 나는 점차 저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아지는데- 내 휴일을 불쾌한 말들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은데- 남들은 다들 가만히 끄덕이며 웃고 있었다. 이 자리가 불편한 사람은 나 혼자 뿐인가 보다.


인정해야 했다. 나는 이들과 결이 다른 사람이라고. 그리하여 그들의 눈에는 어리석은 시골 사람일 뿐이라고. 인생의 진리를 '돈'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말들에 나는 진저리가 쳐졌다. 내가 나이가 들어 서른 살 어린 팀원이 내게 말을 건넨다면, 나는 아파트와 주식 투자, 내 아들딸의 결혼과 증여와 청약 이야기 대신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네 삶에서 가치 있는 기준이 무엇이니? 궁금해.]

[내 삶은 이런 점에서 힘들었어. 너는 이런 점은 피해보았으면 해.]

[요새 사람들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니?]


같은 것들. 글을 쓰다 보니 불쾌한 지점을 하나 더 찾았네. 나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 '나이 든 사람'과 '나이 어린 사람'의 조언의 장 말고, '대화'의 장 말이다. 서로가 궁금하고, 서로의 의견을 대등하게 낼 줄 알며, 그 의견에 서로 끄덕일 줄 아는 존중의 교류. 인생 선배로서 할 줄 아는 말은 삼키고, 그들이 궁금하다고 묻는 것에 단지 내 의견일 뿐이라며 짧게 대답할 줄 아는 사람을 꿈꾼다. 하지만 내 2박 3일에 들이닥친 건 인생 선배의 '돈'의 서사와 푸념이었고, 나는 그걸 '자랑'으로 해석했다.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속이 더부끼고 토악질이 나왔다. 더 최악인 건- 그들의 말을 계속해서 듣다보니 잠시 흔들렸다는 거다. '내가 결혼할 사람을 고를 때 돈을 하나도 보지 않고 고른 건 아닐까.' 같은 생각이 나도 몰래 슬며시 얹어졌다. 깜짝 놀라 머리를 털어냈다. 하지만 '돈'과 '미래'가 결합하면 '불안'이라는 감정이 얹혀진다. 그리고는 머릿속에서 쉽사리 빠져나가는 길을 찾지 못한다. 불안은 힘이 세고 뜨겁고 무거우니까. 내가 애써 그동안 건강하게 하나씩 올려 쌓아둔 가치관들을 와르르 무너트리는 힘을 갖고 있으니까. 나는 무너진 내 가치관의 벽을 다시 쌓아내려면 얼마나 많은 의심 덩어리들을 다시 치워내야 할까. 불건강한 모래들을 얼마나 쓸어내야 할까. 짜증이 솟구쳐올랐다. 저 사람의 말 폭탄 때문에.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고 다물지를 않아. 계속해서 자기 얘기만 집어넣어. 제 말이 진리인 것마냥 설파까지 해. 심장이 뜨끈뜨끈해졌다. 나는 그만 직장에서 만난 공적인 사이라는 것을 잊고 용암을 토해냈다. 따박따박 말대꾸를 시작한 것이다.


"아닌데요."

"저희 집은 돈 하나도 없는데요."

"결혼한다고 부모님 집 인테리어 바꾸라는 말 안 하는데요."

"저희는 청약할 돈 같은 거 없는데요."


아차, 싶었지만 알코올에 적셔진 용암덩어리들은 이미 내뱉어진 뒤였다. 이놈의 술이 문제지, 하고 핑계를 대기에 나는 취기가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 안타까운 몸뚱이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는 입을 합 다물었다. 나는 다음 날 또다시 체해 김밥이니 제주 유기농 주스니 모두 먹질 못했다. 그러다 김포로 가는 제주 공항 안에서 삭 소화가 되어 국수를 그릇째로 들이켰다. 드디어, 조용하고 안온한, 내 집으로 갈 수 있어. 드디어, 저 돈 얘기에서 해방될 수 있어. 푸념 혹은 조언의 말투이지만 내게는 자랑으로 와닿은 말들을 묵음 처리할 수 있어. 비행기 안에서도 잠이 푹 들었다. 숙소에서보다 더 편안하게.


그때부터였다.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으면 과하게 먹는다. 그리고 볼록 튀어나온 배를 보고 한숨을 끌끌 찬다. 그럼 저녁에 덜 먹거나 안 먹어서 몸을 가볍게 비워내야 하는데, 다 알고 있는데, 어거지로 또 집어넣는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나에게 화가 나라고 일부러 돈 이야기를 꺼내질 않았을텐데- 알아서 자격지심에 긁혀 혼자 힘들어했다는 걸 알겠더라. 그게 나를 창피하게 했다. 멋진 사랑이니, 삶의 목표니,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포장은 스스로 얼마나 많이 해댔으면서- 남이 돈 몇 번 얘기한 걸로 태풍이 분 것마냥 흔들려서는. 내 속물적이고 이기적이고 못된 마음을 나에게 들켜서, 수치스러웠다. 내가 나에게 부끄러워 미칠 것 같다. 남 탓을 할 게 아니었네. 내 연약함이 문제였지.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그러니 나에게 돌을 던진 적이 없다. 바람이 불어 돌이 떨어지는 데에 가서는 퍽퍽 맞고 다 너 때문이라고 떽떽거리는 꼴임을, 나는 잘 안다. 긁혀버렸다는 건, 내가 그만큼 부럽고 그만큼 나도 가지고 싶은 데 못 가져서 투정부린다는 뜻이다.


장원영은 120억원짜리 청담동 무슨 빌라를 샀다는 기사가 떴다. 나보다 훨씬 어린 여자애가 예쁘고 재능이 많다는 이유로 내가 평생 벌지도 못할 돈을 턱턱 내면서 공주처럼 살 수 있다니, 부러워 죽겠다. 저 팀원의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님께 각자 1억 5천씩만 받아도 3억이다. 거기에 자신들의 잘난 대기업에서 연봉을 많이 받으니 저축한 돈도 많을테지. 그러니 그들은 내가 평생 염두도 못낼 저 아파트에 청약을 쉽사리 넣는 것일테지. 진짜 부럽다. 정말 한 톨의 미움 없이 부럽기만 하다. 좋겠다. 하지만 내게 저런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건네주는 기자는 밉고, 자기 아들 결혼 얘기를 자꾸 나를 끌어와 질문하는 척하면서 결국 비교하게 만드는 팀원도 정말 싫다.


나는 혹시

미워할 법한 만만한 사람을 찾아 내 자격지심을 토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수치스러운 일이다.



옛날 같았으면 자기 혐오에 쉽사리 빠졌을 주제다. '그러니 네가 더 능력 있게 전문직 시험을 봤어야지. 지금이라도 직장을 그만두고 수험생 생활을 했어야지.', '네가 덜 노력해놓고 무슨 핑계를 대?', '그런 것에 휘둘릴 것이었다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해서 스무 살 차이 나는 남자랑 돈만 보고 결혼을 했어야지.' 같은 생각으로 가득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할 때가 온 건가, 하고 책에 몸을 파묻는다. 욕심을 덜어내야지. 삶을 어떻게 살 건지 다시금 생각해야지. 이것 저것 다 가질 수 없는 인생인 걸 그저 받아들여야지.

퇴근하는 길에 은행나무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집에 가는 길이 즐겁다. 어떤 나무는 햇살이 가득 비치는 대로변에 있다. 노란빛이 선명하니 참 예쁘다. 생생하고, 팽팽하다. 반면 그 맞은편 나무는 햇살이 가려져 색이 덜 노랗다. 떨어져 내려오는 이파리도 시들시들하니, 몰랑몰랑하고 힘이 없다. 나도 그 중 하나의 은행잎이겠거니, 생각한다. 저 건너편 반짝이는 은행잎을 바라보면서 '와, 정말 부럽다. 나도 저 나무에서 태어날 걸.'하며 중얼거리면 어쩌겠나. 이미 태어나 바람을 맞고 있는 걸. 결국 모두 은행나무잎으로 내 발밑에 닿을 뿐인 저들의 운명이 가여울 뿐이니. 내가 햇살을 유달리 많이 받은 은행잎이었는지, 덜 받아 건강치 못한 은행잎이었는지도 나무에 달려 있을 때는 모르는 거니까. 그저 생이 다해 바닥으로 떨어지면 그 때야 내 나무를 온전히 보게 될 테지. 아, 나는 이렇게 살았구나. 하고.


또 다시 다짐한다. 오늘 저녁은 좀 덜 먹어야겠다. 탄수화물을 피하고 샐러드를 먹어야지. 소화를 시켜내야지. 그러려면 뜨끈한 이 마음을 좀 뱉어내야지. 그리고 또 다시 맑은 눈으로 돌아가야지.

그래도 오늘 로또는 사야겠다. 놓칠 수 없는 나의 한조각 욕심을 위하여. 그리고 당분간 sns는 좀 멀리해야겠다. 불건강한 눈으로 누군가와 비교할 나를 내게서 지켜내기 위하여.



덧, 후기.

2박 3일 후 출근하니 그 팀원이 회의에서 날 보며 한 마디 함.

"쟤가 제주도에서 토커였어. 완전 토커."

뭐래, 자기 소개 하네. 흥.

자기 얘기 2박 3일동안 한 게 누군데.

나의 자격지심으로 인한 미움도 현재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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