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Against All Odds
"저는 장차 CEO가 될 거에요!"
대학생 시절 경영 베스트셀러 중에 GE의 잭웰치 회장이 쓴 <끝없는 도전과 용기>를 읽고 감명받아 나도 CEO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 너는 꿈이 뭐니 라고 물어봤을 때 CEO! 라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질문을 한 사람은 어이없게 웃으면서 CEO는 직책인데 직책이 너의 꿈이야? 라고 했다. 그제서야 나도 뭔가 개념을 바보같이 잡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풀이하자면 나는 '아 사장되고 싶다' 이렇게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나 회사를 설립했던 당시에도 경영자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사업초기 다른 많은 스타트업 창업가(founder)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영업, 마케팅, 인사, 재무 등을 모두 수행하는 올라운더로 일하고 있었다. 당장 제로베이스에서 모든 걸 세워 올려야 하는데 '경영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고루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영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렴풋이 감을 잡았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초로 구조조정을 단행한 시점이었다. 이때 재무팀에 일임했던 수익비용 구조 같은 것들을 직접 뜯어보면서 어떻게 하면 흑자전환이 가능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었다.
스타트업이라는 허울에서 벗어나 이윤창출이라는 기업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 경영(management)의 시작이었다면, 운영 8년차에 접어들자 창업가(founder)와 경영자(management), 그리고 기업가(entrepreneur)가 같은 듯 하면서도 뭔가 다르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어느 시점에는 창업가가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운영을 하는 케이스들이 많이 있다. 구글의 창업자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지만 현재 경영자(CEO)는 선다 피차이(Sundar Pichai)이다. 카카오는 김범수 의장이 창업했지만 현재 CEO는 정신아 대표다.
창업가가 물러나는 이유는 더 이상 하드캐리할 체력이나 역량이 없기 때문일수도 있고, 아니면 회사의 규모가 커져서 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더 적합한 사람에게 역할을 넘겨주는 과정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7년간의 운영을 통해 이제 사업이 안정적인 매출구조를 갖게 되었다. 조직도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잘 구축해 놓았다. 그래서 다른 선례들처럼 회사에 쏟는 나의 시간을 최소화시키고 다른 사업으로의 확장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이것이 창업가가 경영자가 되고, 경영자가 기업가로 변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역량과 자원이 많아졌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은 틀렸다.
보도셰퍼는 <부의 레버리지>에서 기업가는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경영자와 기업가의 개념을 완전히 구분하고 있다. 직접 창업을 했다면 창업가(founder)의 타이틀은 중복으로 쓸 수 있지만 기업가는 기본적으로 경영을 하지 않는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기업가를 뜻하는 Entrepreneur는 중세 프랑스어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Entreprendr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Entreprise는 비즈니스를 뜻한다.
비즈니스에서 시작은 무엇인가. 바로 사업이 운영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는 사람 아닌가. 즉 기업가는 회사에 필요한 자원 - 인적자원, 자본, 기술 - 을 조달하여, 사업의 방향을 결정한 후 시스템 - 조직구조, 의사결정 구조, 보고체계 - 을 구축하고 지속적인 수익이 발생하는지를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본질이다.
반면 경영자는 기업가가 만들어놓은 시스템 안에서 각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수시로 점검하는 역할이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고 계획했던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고 있는지, 목표달성을 위해 각 부서에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진은 Management라는 말을 쓴다.
쉽게 말하면 기업가는 판을 짜는 사람이고, 경영자는 짜여진 판 위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이다.
기업가는 체계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Founder인 경우가 많으며, 직접 경영까지 할 수도 있겠지만, 뛰어난 경영자를 자신이 설계한 시스템의 일부로 고용해도 된다. 그래서 CEO라는 말은 중요한 직책이라는 뜻의 Officer가 붙지만 Officer인 동시에 피고용인(Employee)인 것이다.
대신 기업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 외에도 경영자가 하지 못하는 영역을 해야하는데 그것은 기업의 새로운 비전이나 수익원을 창출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영역은 쉽게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기업가인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절반쯤은 경영자였고, 절반쯤은 영업, 마케팅, 재무, 인사 일을 모두 수행하는 피고용인이었다. 올라운더는 모든 영역을 잘 해서 올라운더가 아니다. 모든 영역이 잘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지 못해서 할 수 없이 본인이 직접 올라운드더로 뛰고 있는 것이다.
사업초기를 떠올려보면 열심히 일해도 시간은 항상 모자랐고 새로운 비전을 고민할 에너지도 갖기 힘들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팀 페리스가 <나는 4시간만 일한다>고 책을 썼는데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에 4시간이 아니다, 일주일에 4시간이다.
지금부터 나는 경영을 하지 않겠다.
경영의 역할은 책임자들에게 맡기고 나는 비즈니스 구조를 만들고 시스템화시키며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나는 경영자가 아니라 기업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