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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업가 정담 Nov 06. 2024

그건 모두 다 내 인생이었다

Chapter 2. Against All Odds

우리는 2023년의 끝을 처절하게 움켜잡고 있었다. 


연료게이지가 바닥난 지는 이미 두 달이 넘었다. 창업자들이 갹출하여 긴급자금을 투입했고 주요 인력들의 연봉은 삭감됐다. 그 과정에서 40% 정도의 인원이 이탈했으며 우리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한 명만 나가도 업무가 마비될 수 있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거시경제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미국 경기는 회복되었다지만 여전히 국내 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여전히 돈쓰기를 꺼려했고 눈치 보는 쫄보들같이 AI 같은 유행업종에만 자금을 넣었다. 괜히 실패했다 욕먹느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들이 빤히 보였다. 


회사의 계좌에는 12월 30일까지 쓸 수 있는 자금이 남아 있었다. 12월 31일에는 80개 사이트의 임대료 등 대규모 현금유출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걸 막으려면 내가 받던 1년 치 급여를 한 번에 헌납해도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운영자금은 물 한 방울 없는 사하라사막처럼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고 우리는 거친 바람에 휩쓸려 아스러질 모래성 같은 상황이었다. 




나는 시계 제로인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보고 앞으로 나가고 있었을까? 


오아시스일지 신기루일지 모를 환영을 좇으며 마지막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매일 같이 이어지는 새로운 투자자들과의 허무한 미팅, 그들로부터의 자료 요청, 계속되는 접대와 피칭... 마치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몸도 축나고 있었다. 1시간 넘게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공격적인 질문들을 방어하고 나면 그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이어지는 후속 요청들도 자료 작성을 도와줄 인력이 없어 대표인 내가 새벽까지 모든 자료들을 직접 만들곤 했다. 



기약 없는 투자뿐 아니라 온갖 정부지원금과 대출 프로그램에도 신청서를 넣었다. 그야말로 어디든 누구든 상관없었고 회사를 살리기 위한 돈만 준다면 지푸라기든 뭐든 부여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바이러스가 나를 덮쳤다. 더 이상 감기와 코로나를 구분하지 않던 시기였지만 범상치 않은 폐통증과 기침가래로 미루어봤을 때 검사를 안 해도 코로나였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바이러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주일 넘게 나를 괴롭혔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간은 약봉지가 책상 위에 없었던 날이 더 적을 정도였지만 투자자들, 정부기관들 요구에 일일이 대응해야 하는 이 시기에 병까지 얻으니 체중이 급격히 감소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중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원했던 보증프로그램에서 우리 회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므로 서류 접수를 하란 내용이었다. 최종적으로 보증 프로그램에 선정되면 총 50억 원의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본 프로그램은 이미 두 차례 미끄러진 경험이 있다. 사업성과 혁신성을 평가하여 전국에서 10개사 남짓만 선정되는 매우 어려운 확률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버틸 수 있는 자금도 2주밖에 안 남은 지금 난 후회를 남기고 싶진 않았다. 사력을 다해 제안서를 만들었고, 혼을 담는다는 게 이런 표현일까 싶을 정도로 남은 모든 걸 쏟아부었다.


서류가 통과되더라도 수차례의 미팅과 실사를 거쳐야 하고 심사위원 발표까지 해야 했지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내가 하는 미팅이, 말 한마디가, 자료 하나가, 내가 만든 마지막 나의 사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비록 여기서 실패하더라도 삼십 대 중반에서 시작한 내 인생의 한 챕터를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지난 시간들이 정말로 실패로 기록되더라도, 그건 모두 다 내 인생이었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마지막 관문인 심사위원 발표까지 왔다. 난 차례에 맞춰 발표장 문 앞에 섰다.

짧은 심호흡을 뱉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긴장이 되지 않았다.   


지난 7년간 난 모두 몇 번의 발표를 했을까. 


우리의 사업모델은 유행을 타지 않는 얌전한(?) 사업이었다. 그 탓에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처음 보는 남들 앞에서 족히 백번이 넘는 사업설명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른 건 모르겠지만 발표만큼은 자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단 15분. 총 5명의 심사위원과 8명의 실무자들 앞에서 난 나와 우리 회사의 모든 것을 후회 없이 펼쳐 보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우리는 한국에 없던 산업을 만들었고, 개척자로서 리스크를 지고 항상 최전방에서 섰으며, 자금난이 왔지만 나의 생각과 사업모델은 지금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선사했고 분명히 어느 시점에 변곡점을 만나면 훨씬 빠른 속도로 서비스가 대중화되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니 이제 후회는 없다. 난 심사위원들 앞에 섰다. 


긴장하고 떨었던 여느 때와 달리 편안한 마음이었다. 마지막 발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3초간 심사위원석을 말없이 바라봤고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저희는 한순간도 스스로 회사를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0년 후 주거의 모습은 저희가 만든 산업으로 인해 많이 바뀌어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15분 간의 발표, 그리고 30분 간의 길었던 질의응답. 


이후 3시간 뒤 나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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