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Chasing the Big Break #14
우리가 버틸 수 있는 마지막 한달이 왔다. 이제 정말로 마지막 순간을 향해 가는 것 같다.
자동화 운영 시스템, 국내 부동의 1위, 막대한 공헌이익이라는 타이틀을 손에 쥐고도 운영자금 융통이 안 되어 회사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돈을 버는 것보다 회사를 만드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훌륭한 조직 시스템이 이제 막 움직이고 있음에도, 우리는 스스로 몸에 메스를 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마지막은 산소가 나오지 않는 산소호흡기 따위 떼어 버리고 오히려 산소를 쓰지 않는 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다른 스타트업들과 다르게 처음부터 수익모델을 중시했던 우리는 고정비만 컨트롤하면 흑자 전환이 가능한 구조였다.
대표적인 고정비는 인건비였고 산소를 쓰지 않는 홀쭉한 몸이 된다는 것은 대부분의 인력들을 내보낸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계획했던 인력뿐만 아니라 회사의 명운을 감지하고 동반 이탈할 것은 너무도 자명했다.
그런 대수술 후에 다시 회사를 궤도에 올려놓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뛰어난 인재들은 갈 곳이 많기 때문에 아쉬울 게 없는 법이다. 그리고 다시 좋은 인력들을 유치하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원망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부터 시중 유동성이라는 큰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미리 만들어놓지 못한 나의 불찰이었다.
우린 유행하는 AI 회사들보다 현금흐름이 보이고 흑자전환의 가시성이 높았다. 하지만 투자자들과 기관들은 미국이 금리를 인상함과 동시에 유동성이라는 산소통을 잠궈버렸다. 리스크를 과감히 테이크하는 모험자본은 이 땅에서 사라졌다.
투자업계의 생리는 이렇다. 투자를 검토하는 사람은 최소한 요즘 가장 핫한 업종에 투자하면 실패하더라도 다같이 실패할테니 중간은 갈 수 있다. 굳이 혼자서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가 없게 된다. 괜히 남들과 다르게 나섰다가 잘 되는 이득보다 실패했을 때 손실이 크다.
국내 대부분의 투자가 함께 투자하는 클럽딜인 것을 감안해도 그렇다. 확신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눈치게임이 더 중요한 판이다. 심사역들의 성과가 인정되는 것도 자금을 엑싯하는 5~6년 후의 일이니 그 전에 이직을 하는게 빠르다. 즉,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을 중시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 투자자들이 미팅 자리에서 꼭 물어보는 신기한 질문이 있다.
"또 어디 투자자가 검토하고 있나요?"
처음에 이걸 왜 그렇게들 물어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투자가 확정되지도 않았으니 대외비 사항인데 왜 남의 사정을 물어보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리스크 관리가 최우선이어서 혼자의 뜻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겁이 났던 것이다.
심지어 다른 곳이 결정할 때까지 결정을 미루는 경우도 많다. 투자를 확정하여 딜을 주도하는 투자자를 리드투자자 또는 앵커투자자라고 하는데 국내에 진정한 앵커투자자는 정말 열손가락 안에 꼽을 것 같다. 보통은 사업전망보다 앵커투자자가 누군지에 관심이 많다.
내부 심의에서도 이는 중요하게 작용한다. 우리가 엄지척 할만한 레전드 투자자의 이름이 들어가면 내부 심의는 일사천리로 통과되고 반대로 그게 없으면 검토대상에 오르기도 힘들다.
이게 투자 유치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한 이유다. '거기서 투자한다고 결정나면 알려주세요' 라는 얘기를 그간 수도 없이 들었다. 중요한 건 그렇게 집단 지성으로 진행했던 투자들도 항상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진정한 안목과 소신으로 투자하는 기관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여하튼 그런 연유로 우리는 벤처캐피탈의 구원의 손길 따위는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우리는 다시 우리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했다.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기업의 본질인 돈을 버는 것에 다시 집중하고 당장 잃어버리는 것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지금 포기할 회사의 시스템, 좋은 인재들, 미래의 비전, 심지어 반짝이는 사무실까지. 돈을 벌게 되면 어차피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윤추구만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우린 동료들과 헤어질 준비를 해야했고 강남 테헤란로의 반짝이는 사무실을 포기해야했다. 간식 무제한이라는 허울 좋은 문구를 채용공고에서 지웠고 사용하던 유료 소프트웨어는 번거롭더라도 무료 버전으로 모두 바꿨다.
핵심 수익모델을 다시 점검하고 임대료와 운영비 등 변동비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했으며, 탑라인의 매출 성장 속도는 더 높여야 했다. 할 일은 많고 하나같이 어려운 일들이었다.
Back to the Origin, Again.
이제 막다른 길이다. 우리의 현금은 딱 한달치가 남았다.
지금 우리의 비행기는 연료를 모두 소진한채 추락 중이다. 본질로 돌아가자는 우리의 피로 쓴 각오가, 가속도가 붙으면서 추락 중인 이 비행기를 과연 다시 날게 할 수 있을까?
앞에서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나를 바라보는 남은 28명의 직원들의 불안한 눈빛이 느껴진다. 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그들의 얼굴은 항상 날 따라다닌다. 대표님 어떻게 하실 거냐고, 방법은 있냐고, 우리 살 수 있냐고.
이해한다, 괴로운 그 마음. 가족들에게 설명하기도 벅찰테지. 하지만 그들의 삶뿐만 아니라 나의 삶도 이 마지막 한달에 달렸다. 회사원에서 회사를 만들고자 한 지난 7년 간의 노력이 스스로를 검증하는 것으로 끝날지 아니면 빛바랜 실패로 남을지 이제 곧 밝혀질 것이었다.
욕심 많던 소년이 열네 살 때 집안의 몰락을 경험하며 가슴 속에 했던 맹세는, 뭘 하든 항상 쉬운 길없이 고생해야 했던 팔자를 어떻게든 고치고 말겠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길게 이어져왔던 28년 간의 혈투는 이제 마지막 힘겨운 한발을 딛는다.
지금으로부터 한달, 기업가로서의 내 마지막 싸움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