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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업가 정담 Aug 18. 2024

나 여기 잠깐만 주저앉아 있어도 될까

Chapter1. Chasing the Big Break #13

회사 현금이 고갈 직전이어서 개인적으로 은행 대출을 쥐어짜 회사에 가수금으로 입금했다. 


구조조정 후 남은 직원들은 본인들이 몸담은 회사의 운명도 알지 못한 채 여전히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아직 우리의 상황을 그들에게 전부 공유할 수 없었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살다보면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처음엔 주변을 비난하다가도 이내 뭐가 잘못된 거지 하고 다시 생각해본다. 


사실 상대방보다 나에게 문제가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나에게 문제가 없었다면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을 나의 감정과 치기로 문제를 더 엉망으로 만든다는 것. 


나는 나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지만 때로는 나 스스로도 나를 어찌하지 못할 때가 많다. 마인드 컨트롤, 평정심, '나 지금 정신차려야해' 라는 생각을 아무리 되뇌어봐도 두근두근 심장박동이 멈추질 않는다. 


특히 한밤 중에 회사가 문을 닫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쿵광거리면 잠을 들 수가 없다. 언제 이 두근거림이 멈출지 모른채 컴컴한 새벽 적막 속에 눈만 껌뻑 껌뻑하는 일이 잦아졌다. 




거듭된 위기 상황 속에서 내게 뭔가 결핍이 생긴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나 스스로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일도 건강하지 못하게 대처하고 마는 것 아닐까. 


이럴 땐 이성적으로라도 최대한 말수를 줄이고 표현을 하지 않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어느 정도는 평상시처럼 보일 수 있고 본전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대표의 포커페이스는 매우 중요하다. 모든 직원들은 대표 얼굴을 바라보게 되어 있으니까. 사실은 포커페이스가 아니라 평정심을 유지해야하는데 그 정도 내공이 안 되면 드러내지라도 말아야지. 적어도 혼자 속으로 삼키기라도 할 수 있어야지. 


한 움큼씩 집어먹던 약에 의존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한밤 중에 쿵쾅거리는 심장은 더 이상 약발이 듣질 않는다. 과다복용으로 심장이 아닌 간마저 괴롭힐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밖에 없지 않나.




회사의 상황과 나의 운명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냥 잠깐 눈을 감기로 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지도를 확인하는 것도, 또 내가 지나온 길은 어디인지 표식을 남겨놓는 것도 이제 의미 없어 보였다. 


그냥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다보면 돌뿌리에 걸리든 목적지에 다다르든 언젠가 멈춰설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난 원래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지만 이때는 정말 바람빠진 풍선처럼 기력이 없었다. 얼굴은 퀭했고 몸무게는 점점 줄어갔다.



난 원래 어려운 일을 겪거나 일을 실패한다고 좌절하는 스타일이 절대 아니다. 내 모티베이션의 근원은 언제나 나 스스로에 대한 검증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시키지 않은 일들을 개척해서 칭찬받길 원했고, 일찌감치 투잡으로 돈도 벌고 성취감도 맛봤다. 


그런데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보란듯이 내 깜냥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내 에고가 정면으로 부정 당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회사의 위기는 드러난 결과물이고 꺾인 것은 내 정신이었다. 난 이런 상황에 정말 취약하다. 나의 에너지샘의 물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검디 검은 터널 안에서 그냥 눈을 감았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보려고 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나와 내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지 못했고 앞날에 대해서 완벽한 해결책을 들고 있지 못했다. 


기운이 다 빠져서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잠깐 주저앉아 있자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먼저 보낸 직원들과 남은 직원들 모두에게 용서를 빌었다. 


이건 회사를 만들기로 결심했던 때에 예상했던 일이 전혀 아니었다. 

내 시간이 공허한 암흑 속에서 잠깐 멈춘 것 같았다. 아니 내가 멈추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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