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Chasing the Big Break #12
이젠 우리 회사도 더 이상 도리가 없었다.
두 달 치 월급을 줄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더 이상은 혼자 해결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조여 오는 현금잔고는 내 핏줄마저 1초 단위로 조여 오는 듯했다. 대표는 안에선 최고권위자여도 밖에선 회사를 위해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난 우리 회사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에게 모두 연락했다.
그렇게 긴급 주주총회가 시작됐다. 6개의 기관투자자들 모두 우리 회사에 대한 투자의사결정을 내릴 당시에 우리 회사의 전망을 좋게 보았던 회사들이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협의된 금액보다 좀 더 투자할 테니 투자금을 늘려 받으라고까지 했었다. 그러니 이런 위기의 순간 구원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회의실에 모든 기관투자자와 경영진이 모였고 난 비장한 각오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준비한 자료들로 회사의 현금상황을 낱낱이 공개하고 지금은 일시적인 스퀴즈일 뿐 분명 공헌이익을 막대하게 창출하는 비즈니스이므로 순차적으로 턴어라운드 될 것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비용통제로 런웨이를 최대한 늘려서 반드시 흑자기업으로 거듭날 것임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설파했다.
"지금도 저희 매장들은 순차적으로 흑자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투자심의위원회에서 보여드렸던 BM(사업모델)은 이미 완벽하게 검증되었고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30억 정도의 운영자금과 시간뿐입니다. 저희가 비용을 지금보다 30% 삭감하면 앞으로 런웨이는 6개월 더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단 10억이라도 좋으니 추가자금이 유입된다면 확실하게 흑자로 전환되는 모습을 6개월 안에 반드시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12월 창밖의 날씨처럼 싸늘했다.
프레젠테이션을 하느라고 상기된 내 얼굴이 무색할 만큼 투자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며 모두 침묵할 뿐이었다. 다들 알 것이다, 이런 침묵의 순간에는 무거운 시계초침 소리만 크게 들린다는 것을.
"째깍. 째깍. 째깍... 그럼 SI 투자자(전략적 투자자)에게나 한번 물어보시면 어떨까요?"
SI투자자(Strategic Investor)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기업 투자자였다. 폭탄을 그 자리에 없는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내 마음속 깊이 뿜어져 나오는 한숨이 그들에게 들리지 않길 바라며 주먹을 꽉 쥐었다.
투자할 때는 최고의 동반자인 것처럼 하더니 어려울 때는 추락하는 자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는 건가. 그들이 투자했던 시점보다 지금은 모든 지표들이 월등히 좋아졌고 우린 정말로 턴어라운드가 가능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래, 당신들도 결국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종속된 사람들일 뿐이구나.'
회사가 회생할지 안 할지, 그간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매크로 경제의 임팩트 앞에서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추구한다는 본인들의 투자 철학도 우습게 철회할 수밖에 없는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작금의 이례 없던 리스크는 그들도 무서웠을 테니까.
난 화가 났지만 스스로 운영을 못한 나를 질책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흔히 투자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 회사는 사실은 돈을 자기 마음대로 투자하지 못한다. 그들은 GP(General Partner)라고 부르며 돈의 주인이 아니다. 돈의 주인은 LP(Limited Partner)라고 하며 LP는 국민연금, 공제회와 같은 기관, 또는 대형 기업들의 여유자금이 대부분이다.
투자자들은 LP의 돈을 받아서 투자를 하는 것이기에 LP가 정해놓은 투자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중 일부는 투자 건건이 허락을 받기까지 해야 한다.
그러니 오히려 지금처럼 스타트업 회사들이 도움이 절실할 때 대부분의 국내 투자자들은 뒷짐 지고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확신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극히 일부 투자자들만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트폴리오 내의 회사들에게 추가 투자를 집행한다. 항상 어려울 때 진면모가 나오는 법이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성장 속의 빈곤이었다. 우리에게 구원자는 없었다.
링 위에서의 이 혈투는 어떻게든 독고다이로 이겨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