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 Chasing the Big Break #11
우린 10명을 내보내고 다시 7명의 직원들과 이별을 했다.
누군가는 이미 마음을 정했을 터였고 누군가는 등떠밀려 나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최대한 설명을 하려 했고 원망의 눈초리도 달게 받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한다면 우리 회사만이 아니라 다른 회사들에서도 권고사직이 행해지고 있어 도드라지진 않았다는 정도다.
이제 우린 50명 규모에서 30명 이하로 사람이 줄었다. 100평짜리 사무실은 빈 자리와 꺼진 모니터가 유독 많이 보였고, 여느 때와 달리 회의실 예약도 여유로워졌다.
시끌시끌했던 풍경은 어느 새 고요 속에 울리는 키보드 소리와 속삭이는 대화 소리로 바뀌었다. 텅 빈 공간 속 의도하지 않은 침묵이 서글펐다. 중도해지하면 위약금을 내라는 악독한 임대인만 아니었다면 사무실이라도 더 작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었다.
최소 인원으로 사람을 줄여도 벌어들이는 돈 대비 나가는 금액이 컸기 때문에 감봉조치도 해야했다. 나를 포함한 경영진 3명과 이하 팀장급 3명이 정말 고맙게도 감봉에 참여해줬다.
이건 정말 고맙다라고 밖엔 말할 수 없다. 그들 입장에서 무슨 이유로 자신의 급여를 깎으면서까지 이 회사에 남아있겠는가. 다들 이 회사를 나가도 좋은 직장에 다시 취업할 수 있는 인재들로 이미 물밑에서 많은 오퍼를 받고 있는 정예 멤버들이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감정적이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는데 이번만큼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감정이 앞섰다.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다. 나 또한 문서로서 그들에게 보상을 약속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지만 이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잔인한 상황에서도 슬그머니 피어났던 깨달음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누가 회사와 같은 길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자연스럽게 구분이 되었다는 것이다. 감봉에 대한 제안은 이들 말고 여러 다른 이들에게도 했었다. 제안을 거부한 사람들도 모두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테니 탓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 누구를 믿고 중책을 맡길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절로 명확하게 답이 나와 버렸다. 마치 포커판에서 올인한 후 각자의 패를 보여준 것과 같았다. 감봉을 자발적으로 수용했던 이들은 모두 지금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다.
또 한가지는 50명의 사람들이 30명 이하로 줄었는데도 일이 돌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의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서 애초에 이만큼의 인원이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역할을 만들고 팀을 쪼개고 숫자와 상관없는 인력들을 계속 충원하며 방만하게 운영해 왔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인당 매출액을 비롯한 생산성 개념을 주지하게 되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배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걸 잔인하다고 해야할까, 대견하다고 해야할까.
조직에 사람이 늘면 부수적으로 늘어나는 것들이 있다. 4대보험 같은 정량적인 비용 외에도 팀원을 관리해야하는 중간관리자가 늘어나야하고 지원 기능을 하는 지원부서 인원도 늘어나야 한다.
관리코스트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도 늘어난다. 아무리 공유 업무 툴과 공통의 룰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조직과 조직 간의 접점이 늘어날수록 접점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총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왜 처음부터 이렇게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가 밀려왔다.
처음부터 운영을 잘 했더라면 등떠밀어 사람들을 내보내는 일도 없었을텐데. 꼭 이런 값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야 깨달음이 왔다는 게 야속하기도 했지만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율이라는 고귀한 기준 뒤에 숨은 채 내부 운영에 더 신경쓰지 못한 내 책임이었다. 우린 처음부터 좀 더 정량적인 성과지표를 도입했어야 했다.
런웨이(현재 현금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가 당장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치열한 상황에서도 이런 걸 깨닫고 깨달음의 기쁨을 느끼고 있는 내 자신이 약간 변태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때 마음 한켠에서는 왜인지 알 수 없는 희망도 느껴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도 가까운 미래의 모습조차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깨달음이 있다면 이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이 행동이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막연한 감이 확신으로 변한다면 이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고민과 경험을 하는 다른 이들에게 내가 힌트를 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