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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업가 정담 Aug 17. 2024

자유를 향한 긴급유턴

Chapter1. Chasing the Big Break #10

어느 날 곰곰히 생각해보니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내가 분명 10년이라는 직장생활 끝에 기업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던 것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 나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직 구성원은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있고 주어진 역할이 있다. 일을 더 하겠다고 해도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서 다른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그닥 환영받지 못한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잘 짜여진 조직구조 안에서 복잡한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라면 좋은 성과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닿을 수 없는 영역도 분명 존재하는 법이다.




유튜브 어떤 채널에서 어떤 분이 요즘 유행어처럼 번지는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내용으로 책도 내셨길래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 분이 정의하는 경제적 자유란 기존 생활을 유지시켜 주면서도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일컬었다. 


돈을 갑자기 많이 벌기는 어려우므로 생활비를 벌 정도의 수단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 아껴쓰면서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풍요를 즐기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제주도에서 바람도 좀 쐬면서...


그 분에게 미안했지만 운전하면서 유튜브를 듣던 나는 나도 모르게 헛헛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2011년 서른 살 즈음 요즘 말로 경제적 자유라고 불리는 개념을 나름대로 머리 속에 정립해 놓고 있었기 때문인데, 당시 나의 개념은 이랬다.


진정한 경제적 자유란,



내가 무언가 하고 싶을 때 무엇이든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내일 바로 출발하는 몰디브행 비행기표를 끊을 수 있어야 한다. 휴가차 들른 피렌체가 너무 마음에 들면 한달살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에 몰입하다가도 쉬고 싶으면 아무 생각 말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쉴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있어 자유란 이렇게 멋진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건 나 스스로 부와 그에 어울리는 시스템을 가져야 가능한 것이었고 다른 사람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아주아주 많은 돈을 준다해도 그들은 나에게 자유 시간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사를 만들었고 나만의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었다고 당차게 생각했다, 똑똑한 척은 실컷 하면서.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자본(투자)이라는 족쇄에 슬그머니 다시 발목이 채워져 있는게 아닌가. 어쩌면 이건 첫 투자를 받을 때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내가 아닌 주변 환경 - 금리, 세계경제, 투자심리 등 - 에 취약한 상태로 전락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나의 투자금이 끊긴다. 자유를 얻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샌가 다시 거시경제와 자본의 굴레에 종속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투자 의존적으로 회사를 운영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했다. 내가 스스로 나에게 족쇄를 채웠구나. 모든 돈에는 값이 있는데 내가 남의 돈을 쓰면서 마치 공짜인 것처럼 생각했구나. 언제든 손을 벌리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했구나.




130억원의 누적투자를 받았으나 성장을 위해 모두 태워 없앴으므로 회사의 현금이 메말라갔다. 


긴급회의를 소집해 경영진들과 회사의 방향 전환에 대해 논의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매출성장도 지표 개선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생존 그 자체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게 아닌 돈돈 '돈'을 벌어야했다.


이 때부터 우리는 스스로의 목표를 성장과 확장에서 흑자전환으로 대대적인 유턴을 선언하고 필사즉생의 각오로 임하게된다. 구조조정, 복지감축, 연봉삭감, 사업부 조정 등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극단의 조치들을 모두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실행의 무게는 살면서 행했던 어떤 실행들보다도 더 무거웠다. 정리해고를 당하는 사람은 필시 많이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정리해고를 해야하는 사람도 수십명의 괴로움과 눈물을 마주해야 하는 다른 각도의 괴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 모두가 괴로웠다. 하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다가올 조직의 동요와 사기 저하보다 기업의 본질을 되찾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이것이 맞는 방향이라는 건 서른 살 때도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는데 정작 사업을 하면서는 잊고 있었다. 스스로 이윤추구가 아닌 스타트업의 허울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모든 건 내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최근에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책상 위 약봉지 속 알약이 점점 늘어난다. 아직 스트레스성 탈모가 오진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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