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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이수 Sep 21. 2024

퇴직금은 들어왔나요?

이수기(5)


이수'기(記)' :: 이수의 일기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며 퇴직금 계좌를 확인했다. 오늘은 이번 주 마지막 평일인데 여전히 퇴직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통상 월급이 나온 시점 기준으로 차주에 지급이 된다는데, 월급은 지난 주에 들어왔고 이후 제법 긴 연휴가 이어졌다. 당장 돈이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여전히 회사와 정리되지 않은 게 존재한다는 느낌이 마음을 텁텁하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사무실 자리도 뺐고 마음으로도 안녕을 고한만큼 이제는 서류상으로도 명료한 마침표가 필요했다.


퇴사는 단시간에 이뤄졌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직처를 구한 것 역시 아니었다. 곧 재직 만 4년을 앞두고 있었고 어쩌면 진급도 예정된 순이었다. 그랬다. 누군가는 대신 아쉽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또 다른 이는 못내 미련해 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스스로 내심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늦은 나이에 가까스로 얻게 된 기회였고 이곳에서 어떻게 4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애매한 나이에 얻게 된 석사학위-심지어 문과 계열-와 일 년 안되는 물 경력으로는 취업 시장 속 원대한 포부를 이루기는커녕 밥 벌이를 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질문이 당시 갓 서른이 된 내 인생을 흔들고 있었다. 물론 밥벌이는 어디서든 무슨 일로든 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인과 이혼한 사장이 혼자 지내는 오피스텔을 오전에는 ‘출판 회사’ 사무실로 둔갑해, 침실 외 남은 작은 방 하나에 직원 5명을 밀어 넣고 일을 시키는 곳이라든지-심지어 생각보다 판매 부수가 잘 나가는 교육 잡지를 발행하던 곳이었다-. 그곳에 모인 직원들은 대표를 제외하고 총 5명 정도였는데 대다수가 경력 단절된 기혼 여성들이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던 중 이곳으로 흘러 들어왔던 여성들. 그런 배경이 있다보니 모두 그 오피스텔이 위치한 동네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었고 자녀에게 위급 상황이 생기면 바로 달려갈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적 조건을 배려해주듯 언급하며 대표는 그들의 월급을 습관처럼 지급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신발장에서부터 진동하는 김치 쩐내와 눅눅한 바닥 장판, 전등을 갈 생각이 없는 건지 늘 어두침침했던 내부. 물경력을 쌓았던 회사가 망하다시피 하며 의도치 않게 퇴사를 당하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며 잠시 아르바이트 수단으로 몸을 담았던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내 삶은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없을 거라는 좌절감이 당시 나를 좀먹고 있었다. 이곳이 나라는 인간의 현주소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서른 살의 가을 그리고 초겨울을 그곳에서 보냈다.


인생은 끈질기게 하나를 물고 가면 어떻게든 살 구멍이 생기는 걸까. 어떤 직무로든 글쓰기를 놓지 않으려 했던 노력을 누군가 가상하게 봐주었는지 나는 그 오피스텔에서 생각보다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왜 여기서 일하냐며 빨리 나가라고 빌어주던 언니들의 마음이 통한 걸까. 마지막 퇴근하던 날 복도 엘리베이터 앞까지 모두 나와 내 재취직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다신 여기 오지말라고 인사해주던 모습들이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복도조차도 한낮에도 어두컴컴했던 그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한껏 기뻤지만 남은 이들의 안부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남자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구두를 오랜만에 꺼냈던 그해 겨울, 김치 냄새따윈 나지 않는 밝고 깔끔한 사무실로 민트색 출입증을 들고 출근했다. 내 자리가 그곳에 있었다.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힘들게 얻어낸 내 자리가. 내 자리를 갖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정규직으로 고용돼 4대 보험을 보장받는 삶은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던 내 자존감을 조금씩 끌어올려 줬다. 너 그래도 쓸모가 전혀 없진 않다고. 쓸모를 다하기 위해 몰아 부친 4년이란 시간의 결과가 결국 퇴사로 결론났지만 말이다.


보통의 날이었다. 다른 때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예정된 업무들을 처리하고 적당한 피로를 느끼던 하루. 분명 그런 하루였는데 업무를 하던 오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다 갑자기 마음 속에서 무언가 팽하고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딴딴하게 이어져 있던 줄을 가위로 자르자 모든 게 우르르 무너져 버린 세트장처럼. 아마도 이 나이에 걸맞은 직장인으로서의 책임감, 의무감과 비슷한 것이겠지. 이직처는 구하고 퇴사해야지. 몇 년이나 됐다고 벌써 힘들다고 해.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무슨 자신감으로 그만둬. 다들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고 각자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런 류의 채찍질하는 말은 스스로 백 마디도 더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말들로 몰아 부치기에는 몇 년에 걸쳐 쌓아온 모든 게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터져버린 후 나에게 무엇이 남을지 생각해보면 결코 좋은 것들이 남지 않을 거란 확신이 분명히 들었다. 예전이었다면 이렇게 포기하는 나를 두고 스스로 갖은 평가를 하며 동굴로 빠졌을 터였다. 나는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일이 편하고 쉬운 사람이었으니까. 다행인지 이제는 적당한 자기합리화가 인생에 윤활유가 되고 그런 윤활유가 삶을 너그럽게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게 됐다. 전보다 좀 더 잘 버티게 된 만큼 앞으로 버틸 수 있는 역치가 손톱만큼이라도 계속 높아지겠지. 삶에 숨 쉴 구멍이 필요해서 만들었고, 그 구멍이 구덩이가 되지 않도록 할게. 어차피 갚아 나가야 하는 대출금을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나약해질 수 없으니까!


그렇게 백수가 된 후 남편을 홀로 두고 제주로 떠나왔는데 비가 제법 내리는 중이다. 제주답게 거센 바람이 몰아쳐 더욱 어지러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데 숙소로 이동을 도와주신 택시 기사님 말로는 이정도면 배드민턴 치기 좋다고 웃으셨다. 내가 묵게 된 동네는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외진 곳으로 드넓게 펼쳐진 밭과 곳곳에 옹기종기 위치해 있는 주택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풍경 위로 몰아치는 비바람을 꼬박 몇 시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고, 서울에서 가져온 책을 하염없이 읽다가, 지금 이 글을 마치고 있다. 이곳에서는 당장 무엇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큰 해방감을 안겨준다. 서울에서 보내는 백수 생활은 다음 선택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비록 지금 숙소 밖으로 나가면 걸어 다니는 인간 제습기가 될 터라 조용히 실내에 머물고 있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리. 오늘로 정말 퇴사했다는 느낌이 든다. 


참, 퇴직금도 들어왔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2su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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