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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이수 Sep 24. 2024

여행지에서는 편지를 씁니다

이수기(6)



이수'기(記)' :: 이수의 일기



“요즘 애들은 참 신기하다.” 퇴사를 결정하고 홀로 제주에 가겠다고 말하자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집에 혼자 있을 남편이 걱정되지 않냐는 의미였는데.. 글쎄. 남편 걱정보다는 분명 기혼자로서의 어떤 부채감이 따르긴 했다. 남편도 나도 혼자서 뭐든 잘 해내는 사람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우리가 부부가 된 이상 하나의 공동체로서 늘 함께 움직여야 된다는 공식이 내게도 은연중에 자리 잡은 것 같았다. 남편에게도 내가 누리는 이 시간을 똑같이 누릴 수 있도록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나이가 지긋한 우리 엄마뿐 아니어도 주변에서도 신기하다는 반응이 제법 있었다. 둘이 같이 여행을 가지 않는 것에 대한 물음표가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별로 알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면 꼭 함께 둘이 해야 하는 이유는 또 뭐람? 정신없이 돌아가는 직장인의 삶에서 쉽게 찾아오지 않는 시간이 내게 왔고, 그 시간을 통해 내 세상을 더 확장할 수 있다면 당연히 잡아야 하지 않을까? 부부라면 응당 함께 해야 탈이 없다는 말은 딱히 와닿지 않고, 다른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결코 내가 의견을 보탤 일이 아니다. 우리가 가정에 소홀하지 않다는 전제 하에 우리에게 가끔은 온전히 혼자라서 충만해질 수 있는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의견을 서로 존중한다는 게 중요할 뿐.


사실 나는 남편뿐 아니라 친정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굳이 따지면 혼자 하는 여행을 더 선호하고.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시절부터 함께 했던 몇몇의 여행-짧았던-을 포함해 사실상 다른 사람과의 여행은 내 인생에서 많지 않았다. 보통 현실을 벗어나고자 여행을 간다는데 나는 현실이 제발 별 일 없이 굴러가기를 바라며 20대를 보냈다. 쉬지 않고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이어 갔다. 어느 때엔 일본 라면집에서 이랏샤이마세!를 외쳤고, 다른 때엔 3층 카페에서 트레이를 들고 계단을 뛰어다니느라 바빴으며, 또 언젠가엔 샌드위치 가게에서 빵 굽기 유무·토핑·소스 등을 물어보고 있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양식집에서 유니폼을 입고 일할 땐 괜히 으쓱하기도 했다. 나는 일하면서 지나온 모든 곳들을 여행지처럼 생각하며 보냈다. 가게마다 각기 다른 인테리어와 특유의 분위기, 동료 직원들과 매일 바뀌는 손님들 그리고 매일 새롭게 적립되는 경험들까지 이 모든 것들을 기반으로 하는 가게 한 곳 한 곳마다 모두 다른 세계처럼 보였으니까. 단순히 노동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일종의 정신 승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가지 않아도 이렇게 다채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고 내세우듯. 사실은 필수로 나가는 고정비용을 이번 달에도 무사히 납부하길 바라고 있었으면서. 지난달에 추가 근무를 했으니 얼마 정도 더 들어오겠구나 일일이 계산하고 있었으면서. 방학이면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해 단기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적어도 부모님께 여행 비용 손 벌리고 싶지 않다고. 애써 웃고 있었지만 그럴 때면 마음 한 편이 구겨지는 것 같았다.


무엇이든 경험치가 쌓였을 때 몸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들이 있다. 여행도 그렇고. 간혹 친구들과 여행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디를 가면 좋은지 교통편은 무엇이 편할지 등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나는 일단 멈칫하는 사람이었다. 관련 지식이나 경험치가 현저히 낮았으니까. 친구들이 하는 말에 동조도 하고, 적당한 리액션을 하면서 아는 척을 했다. 사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래서 얼마 내야 하는데? 비용이 가장 중요했으면서 말이다. 친구들이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내 기저에는 부담감이 깔려 있었다. 그 돈이면 다음 달 통신비를 낼 수 있을 텐데와 같은 생각 따위도.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여행을 빠지거나 다음으로 기약하거나 했다. 아마 아르바이트를 빼기 어렵다는 이유를 가장 많이 대지 않았을까. 나는 정말 괜찮으니 너희라도 다녀오라며. 다 같이 시간 조율하기도 어렵잖냐고 말을 붙이면서. 누군가는 눈치챘을까?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내가 빠져서 아쉽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보다 빠듯한 내 잔고를 지키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애초에 아르바이트를 빼면 다음 달 내 생활비에 지장이 가는데 여행이 대수야. 여행을 가지 않으면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낄 일도 없을 텐데 왜 자꾸 이런 문제로 피로해야 하는지,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에 날을 세우며 냉소적인 마음으로 제법 오래 지내왔다. 그런 시절이었다. 어떻게든 여행 외 다른 경험으로 정신 승리를 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경험을 대체할 수 있다면 반쪽 짜리도 안 되는 경험이어도 만족해하며 추억이라고 위로하던 시절. 가성비 최고는 역시 동아리 엠티였다. 단 돈 2만 원으로 다수의 인원과 특정 시절에 대한 공통된 유대감을 쌓는 데 최적이었고 청춘이니 낭만이니 하는 것들을 적당한 온도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마저도 정말 아르바이트를 빼기 어려워 참석율이 높진 않았지만.


온전히 혼자 연박으로 여행을 떠난 건 스물세 살 때였다. 당시 나는 교내에서 방학에만 운영하는 평일 사무 아르바이트에 뽑혀 다른 때보다 비교적 너그러운 잔고를 갖췄었다. 왜 부산이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교직원 여름휴가 시즌에 맞춰 내게도 잠깐의 휴가가 생겼고 부산으로 향했다. 나를 예뻐했던 부서 팀장님께서 여행 잘 다녀오라며 하얀 도트 무늬의 노란 머플러-하고 다니기는 어려웠다-를 선물해 주셨었는데 이에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는 컨셉에 굉장히 설렜던 기억이 난다. 기차를 타고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드넓게 펼쳐진 산과 들이 이어졌다. 단순히 기차에서 바깥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차올라 여행지에 내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는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써야 하는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보다도 더 좋은 점이 있다면, 오로지 내 예산에 맞춰 식사든 숙소든 편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친구 누구도 내게 어떤 선택을 강요한 적은 당연히 없었지만,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무리하고 나면 내 마음이 탈이 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돈이 그랬다. 잘못한 사람도 잘못된 상황도 없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늘 초라했다. 상황이 다른 멀티버스가 존재한다면 그곳의 나는 이곳의 나와 달랐을까? 적어도 돈 걱정에 쉽게 체념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 돈 몇 만 원으로도 훌쩍 떠나는 용기와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기를.


여유롭지 못했던 시절의 어린 내가 여행을 대하는 기본값을 이렇게 설정한 만큼 직장인이 된 후에도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습관처럼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비용부터 떠올린다. 혼자 온전히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편하고.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들과 여행을 떠났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자 삶의 온도가 조금은 높여졌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감정과 경험이 이들과 함께 할 때 생겨난다는 사실도 이제는 알고 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멋진 풍경을 함께 눈에 담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에 돌아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니까. 그래서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편지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이왕이면 여행지의 모습이 담긴 엽서에. 내가 떠나온 곳에 남아 나의 행복한 여행을 기원해 주는 사람들에게 내 행복한 마음과 이곳의 멋진 모습이 온전히 전달되기를 바라며 말이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2su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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