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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이수 Feb 28. 2024

흉 시리즈(1)

이수기(2)


이수'기(記)' :: 이수의 일기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서 가장 부러워했던 건 남녀를 불문하고 희고 고운 얼굴이었다. 생채기 한 번 난 적 없을 것처럼 매끄럽게 빚어진 얼굴을 보면, 누가 뭐라고 한 적 없는데도 괜히 어딘가로 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 별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점쟁이었는데, 얼굴에 유독 점이 많은 탓이었다. 이름이나 외모로 별명을 짓는 직관적인 사고의 나이대였던 만큼, 누군가는 내 얼굴에 있는 점을 이어 보면 별자리가 만들어지는 거 아니냐고 장난치던 기억도 난다. 뺨은 물론이고 눈썹 속부터 눈꼬리 아래, 귓불 등 내 얼굴 구석구석에는 까만 점이 볼펜으로 찍은 마냥 있었다. 어른들은 얼굴에 점이 많으면 인생에 구멍이 많은 팔자라 돈이 술술 나간다는 등의 이야기를 조언이랍시고 했고, 미신은 어디까지나 미신이지만 겸사겸사 점을 빼면 얼굴도 한결 깨끗해지고 좋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사실, 점이 많긴 했어도 그게 내 삶에서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점이야 마음만 먹으면 비교적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제거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점이 많다고 말하는 이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대개 그 뒤에 이어졌다. 점을 빼는 게 어때? 보다는 점이라도 빼면 어때? 이왕이면 돈을 더 모아서 흉터도 지우면 좋지 않을까? 그래도 여자 얼굴은 깨끗해야지. 여자는 피부야 피부.


사람들은 참 쉽게 말한다고 생각했다.



제 흉에 대해 잘 아시나요?

.

.

.


내 얼굴에 새겨진 흉의 역사는 생애동안 유구하게 지속돼 왔다. 다들 유년기 시절부터 넘어지고 다치며 몸에 흉터 하나쯤은 가지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얼굴에 새겨진 흉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아마 잘 모를 것이다. 코 옆에 팔자주름처럼 굵직하게 그어진 흉이라거나 붉은 기가 맴도는 여드름 흉처럼 얼굴에 적나라하게 남아, 괜한 피해의식으로 마주하는 사람들마다 그들이 내 얼굴에 대해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유추하게 되는 그런 삶에 대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기억할 수 있는 날들이 비교적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시절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그 시절의 나는 이미 스스로 예쁘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어린애가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떠올려 보면 칠판 앞에서 당당하게 인기 순위를 매기던 남자아이들의 모습, 무슨 무슨 날에 받게 되는 빼빼로·초콜릿·사탕 등 선물의 양 그런 것들은 어린 나이에도 내가 다른 친구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 알 수 있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체득시켜 주곤 했다. 비록 나는 인기 순위에 든 적도 없었고, 반 친구들 모두에게 돌리는 의미의 초콜릿 등을 받는 게 전부였지만 그런 일들이 삶에 크게 영향을 주는 나이는 아니었다. 친구들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는 게 더 중요했고, 나는 그 정도 역할에 만족할 줄 아는 어리지만 머리가 돌아가는 애였다. 그 시절의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렀을지는 이제 와서 추측도 할 수 없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친구들은 본격적으로 외모에 신경 쓰기 시작했고 나 역시 엄마가 입으라고 건네주는 옷들을 싫다고 반항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나의 흉을 흉보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나의 흉은 팔자주름이 잡히는 부근에 터를 잡아, 얼핏 보면 주름처럼 보였다. 웃을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주름이 아니라, 웃지 않아도 어느 때나 얼굴에 새겨져 사라지지 않는 말 그대로 흉터였다. 정작 나는 흉이라고 크게 인식하지 못했던 흉터가 다른 이들에게 눈에 띄며 내 인생에서 점점 더 존재감을 키워갔다.


쟤는 왜 벌써 할머니 주름이 있어? 우리 할머니도 저런 주름 있는데!


악의가 없었다고 믿고 싶은 말들은 더욱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직관적인 느낌이 다소 걸러진 채 지속적으로 내 마음에 꽂히곤 했다.


누나 근데 얼굴에 그거 주름이야? 왜 주름이 한쪽만 있어? -쓰다 보니 여전히 직관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갓난아기들의 사고는 모름지기 눈 깜짝할 새 벌어진다고 했던가. 나 또한 갓 걸음마를 뗐던 시절, 하필 뾰족한 볼펜을 들고 걸음마를 하다 넘어지며 볼펜이 얼굴을 그었다. 삼촌이 맨발로 나를 업고 병원에 달려갔다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와 희미하게 바래진 사진 속 얼굴에 덕지덕지 하얀 거즈를 붙이고 있는 내 모습만 남았을 뿐, 나에겐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의 사건이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었다. 가족들은 나를 위로한다고, 하마터면 눈까지 다칠 뻔했는데 이만하면 다행이야,라고 이야기해주곤 했지만 움푹 파인 흉을 수도 없이 만지며 인생에 주름이 졌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2su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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