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14시간의 비행 끝에 '히스로(Heathrow)' 공항에 도착했다. 평소 같으면 13시간이 걸려 가던 여정이 어찌 된 영문인지 1시간이 더 추가되었다. 전쟁 때문에 경로를 우회하는 것인지 알 길은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최대한 빠르게 입국심사대를 향해 걸었다. 일반적으로 신속하게 입국절차가 마쳐지는 자국 여권 소지자와 달리, 다른 나라 여권 소지자의 줄은 늘 길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웬걸? 자동출입국심사장치에 여권만 스캔하면 그것으로 입국심사는 끝이었다.
“왜 왔냐?”
“어디에서 묵을 거냐?”
“며칠이나 있을 거냐?
따위의 질문은 주고받을 기회도 없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부터 긴장했던 나는 괜히 머쓱했다.
히스로 공항은 런던의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택시는 가장 편리한 옵션이나 거리에 따라 100~150파운드의 요금을 예상해야 한다. '히스로 익스프레스(Heathrow Express)'는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고속전철로 공항의 제2터미널에서 패딩턴역까지 딱 20분이면 도착한다. 하지만 편도 25파운드의 높은 요금이 단점이다. 우리나라의 시외버스에 해당하는 '코치(Coach)'는 공항에서 빅토리아 역까지 운행한다.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하면 악명 높은 런던의 교통체증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지하철 피카딜리 라인이다. 이 옵션은 가장 저렴하지만, 승객이 많아서 늘 혼잡하고 런던 시내까지 5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이동시간을 예상해야 한다.
런던 여행을 계획했다면,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하는 것은 대중교통 시스템이다,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혹은 ‘튜브(Tube)’라 불리는 지하철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우리나라처럼 1호선, 2호선… 이렇게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피카딜리(Piccadilly)’, ‘빅토리아(Victoria)’, ‘서클(Circle)’, ‘디스트릭트(District)’… 처럼 각각의 노선 이름을 알아야 한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중반에 처음 만들어져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으니 대부분의 지하철역은 낡고 불편하다. 규모가 큰 환승역을 제외하고는 에스컬레이터나 리프트 따위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안전스크린도 화장실도 없다. 심지어 피카딜리나 빅토리아 라인의 객차는 협궤열차처럼 폭이 좁다. 또한 하나의 노선을 방향이 다른 여러 라인이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객차에 표시된 도착지를 반드시 확인하고 탑승해야 한다. 승강장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모두 교통패스를 태그 해서 거리에 따라 요금이 차감된다. 만약 출구에서 태그를 하지 않고 그냥 역을 빠져나오면 가장 먼 거리의 요금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개인적으로 지하철보다는 '더블데커(Double Decker)'라 불리는 이층 버스를 타는 쪽을 선호한다. 버스는 승차 시 한 번만 카드를 태그 하면 되고, 내릴 때는 우리나라처럼 하차벨을 눌러야 한다. 지하철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답답하지 않고 요금 또한 훨씬 저렴하다. 오며 가며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동네의 지리가 익숙해지는 것은 덤이다.
Keeping London moving - Transport for London (tfl.gov.uk)
우리는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사우스 켄싱턴역까지 이동한 다음, 센트럴 라인으로 갈아타고 시내의 호텔로 이동하기로 했다. 남편은 짐도 무거운데, 택시를 타면 안 되냐고 물었다. “응, 안돼!” 남편과 나는 하나씩 나눠가진 '트래블로그'와 '트래블월렛' 카드를 두근두근하며 개찰구의 센서에 가져다 대보았다. 빨간색 불이 초록으로 바뀌면서 문이 활짝 열렸다. ‘야호! 된다! 된다!’ 트래블 체크카드가 이상 없이 기능하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환전해 둔 300파운드의 현금이 지갑 속에 있었지만, 쓸 일이 없겠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