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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Paloma Mar 12. 2024

Muse, Museum

조식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느지막이 길을 나섰다. 세인트 제임스 공원을 따라 걸으며,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 그리고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하는 봄꽃을 구경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동시에 봄기운이 느껴지는 2월의 아침이었다.


우리는 런던에 있는 수많은 박물관 중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로 했다. 두 곳만 선택했다고 해도, 전시품의 규모가 워낙 방대해 어차피 하루에 다 관람할 수는 없었다. 또한, 하루 온종일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무리가 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방문해서 오전까지 재빨리 둘러보고 빠지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오후에는 시내를 설렁설렁 걸어 다니며 간식도 사 먹고 상점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우선, 미술관과 박물관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매일 오전 10:00 첫 시간으로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예약하지 않아도 입장은 할 수 있으나 예약여부에 따라 입구에서 분류되고 조금 더 빠른 입장이 가능하다. 플래시를 비춰가며 가방 검사를 꼼꼼하게 하기 때문에 되도록 짐은 간소하게 챙기는 것이 좋다.


대영박물관의 출입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니 거대한 유리천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레이트 코트(The Great Court)'라 불리는 중앙의 홀은 밀레니엄을 기념해 증축된 구조물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했다. 으스스한 고문화재가 가득한 박물관을 본격적으로 탐방하기 전에, 자연광으로 환한 이 공간을 지나면서 우리의 기대는 증폭되었다. 이집트와의 오랜 식민 역사로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집트의 유물은 10만 점이나 된다. 가장 인기가 많은 소장품은 로제타스톤(The Rosetta Stone)', '미라(Human Mummy)', 람세스 석상(Colossal granite image of king Ramesess II)… 등인데 그 덕에 이집트 전시관은 언제나 관람객으로 혼잡했다. 헝겊으로 온몸을 칭칭 감고 누워있는 망자는 죽은 지 수천 년이 지난 후 낯선 나라에서 자신이 유리관에 넣어져 전시되는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아니면, 그들의 믿음대로 환생을 했을까?  


어떤 날은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The Parthenon Sculptures)'을 자세히 살펴보기도 했다. ‘엘긴의 마블(Elgin's Marble)’이라 불리는 이 조각상들은 신전의 페디먼트와 제단에서 뜯어온 대리석상이다. 전시장의 안내문에는 아테네가 오스만튀르크의 지배하에 있던 19세기 초, 외교관으로 파견되었던 '엘긴 경(The Lord Elgin)'이 오스만제국과 협정을 맺어 조각을 가져왔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 말은 진실일까? 그리스의 입장에서는 귀중한 문화재를 멀고 먼 영국으로 보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현재 아크로폴리스에 우뚝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도리아식의 심플한 기둥과 삼각 지붕만 남아 몹시 쓸쓸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모습은 아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 전시된 정교한 조각작품들이 신전의 내외부를 장식해 화려하면서도 웅장함을 과시하던 건물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리스는 조각상들을 돌려달라고 영국과 국제기구에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은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로 돌려보낼 의사는 없어 보인다. 박물관을 무료로 운영하는 방침도 이런 책임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롭기 위해서일 것이다.

https://www.britishmuseum.org/


런던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곳을 하나만 추천하라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내셔널 갤러리라고 대답한다. 파리의 '루브르'나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이 왕이나 귀족의 소장품에서 시작되었다면, 내셔널 갤러리는 영국국민의 기금을 모아 건립되었다. 1824년에 개관해 다른 미술관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소장품 하나하나가 다 수준 높은 명작이다. 더구나 많은 작품들이 개인의 기증으로 미술관에 오게 된 스토리도 흥미롭다.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는 영국인이 가장 사랑해 20파운드 지폐에 얼굴까지 인쇄된 화가이다. 그는 '클로드(Claude Lorrain)'의 그림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의 그림을 따라 하면서 차츰 자신의 화풍을 완성하게 된다. 터너는 죽기 전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내셔널 갤러리에 기증하면서 클로드의 것과 함께 전시해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내셔널 갤러리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클로드와 터너의 그림을 함께 찾는다. 또한,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이 그린 '밀라노 공작부인(Christina of Denmark, Duchess of Milan)'은 그림의 소장자가 너무 높은 금액을 불러 미술관측이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귀족이 그림 구입에 사용하라고 거금을 기부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 외에 꼭 보아야 하는 마스터피스는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암굴의 성모(The Virgin of the Rocks)', '고흐(Vincent van Gogh)'의 '해바라기(Sunflower)',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삼손과 델릴라(Samson and Delilah)' 등이다. 미술관은 그림에 관한 모든 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있는데,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서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다.

The National Gallery, London 

The National Gallery - YouTube


나는 작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의 '내셔널 갤러리 전'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아직도 아시아 투어 중이었다. 아마도 작품이 해외로 길을 나서면 여러 나라를 돌며 전시를 하고 돌아오는 것인가 짐작되었다. 그래서 아쉽게도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의 '도마뱀에 물린 소년(Boy bitten by a Lizard)'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을 남긴 그림은 '  에이크(Jan van Eyck)'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Portrait of Giovanni Arnolfini and his Wife)'이었다.  그림에 대해 처음 알게  것은 고등학교 때다. 당시 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월간지를 종종 읽곤 했는데, 책에 등장하는 이국적인 지명이나 서양식 이름을 읽으며 막연하게 외국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때 읽었던 기억으로,  그림은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 혹은, 약혼식을 그린 으로 추정된다. 여러 전시실을 지나 마침내 찾아낸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유명세에 비해 그림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깜짝 놀랐다. 가로 세로 60x80 나무판에 그려진 작은 그림안에서도 사물의 디테일은 몹시 정교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흥분한 나는 남편을 붙들고 내가 알고 있는 스토리를 두서없이 쏟아내었다. 중앙의 샹들리에, 부부의 의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경제사정, 볼록거울에 비춰진 이 날의 증인들... 등등. 한참을 소곤거리고 있는데, 아까부터  근처에서 한국인 아이 하나가 귀를 쫑긋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 조금 창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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