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Arenal), 브렌트포드(Brentford FC), 첼시(Chelsea),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 토트넘 홋스퍼(Tottenham Hotspur), 풀럼(Fulham), 웨스트햄 유나이티드(West Ham Utd)
런던을 연고로 하는 프리미어 리그 클럽은 7개나 된다. 우리는 그중 토트넘, 첼시, 아스날 경기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토트넘은 손흥민선수의 팀이니 당연히 가야하고, 첼시는 유서 깊은 명문구단이며, 아스날은 현재 리버풀과 함께 리그 1위를 겨루는 막강한 팀이기 때문이었다.
런던에 도착한 이후 내내 흐리고 비가 추적추적 하다가 어쩐 일인지 화창한 아침이 밝았다. 지하철 빅토리아 라인을 타고 세븐시스터즈(seven sisters) 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경기장 앞에 내렸다. 토트넘은 서울로 치자면 도봉구 정도의 위치에 있는 동네였다. 전체적으로 평범하면서 낮은 주택가 사이로 새 경기장이 번쩍번쩍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왔다! 마침내 왔다!
Tottenham Experience라는 간판이 붙은 입구로 들어갔다. 예약 바우처를 팔목밴드로 교환하고, 모바일 기기와 헤드셋을 하나씩 받았다. 실내는 'The White Stripe'의 ‘Seven Nations Army’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심장을 두드리는 드럼 소리와 함께 대형화면에 선수들의 경기 모습이 재빠르게 지나갔다. 드라마틱한 음성으로 충성도를 고취시키는 내레이션이 더해졌다. 이 순간 나도 spurs의 일원이 된 기분이 들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펍이 자리하고 있는 로비를 지나 VIP룸을 거쳐 관중석으로 들어서니 6만 2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토트넘 경기장은 단순한 축구경기장이 아니고, 비시즌에는 미식축구 경기를 개최하기도 하고, 팝스타의 콘서트장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때문에, 놀랍게도 운동장 바닥의 높낮이가 조절되며, 관중석에서 외치는 소리의 울림까지 세심하게 고려해 설계되었다고 했다. 아래층으로 이동해 선수들의 라커룸, 프레스룸, 감독 전용공간등도 볼 수 있었다. 물론 라커룸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자리는 7번이었다. 우리가 런던 중심에서 먼 이곳까지 하루를 투자해 굳이 찾아온 이유도 다 손흥민 선수 때문이 아니겠나. 선수 대기실을 지나 마침내 경기장 입구를 통과했다. 주말마다 중계방송에서 선수들의 입장장면에 비치는 바로 그 앵글의 장소였다. 막 깎은 신선한 풀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벅차 올라 나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사진은 자유롭게 찍어도 되지만 잔디를 건드리는 행동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구단직원들도 잔디구장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틀에 한 번씩 잔디를 깎고 할로겐조명을 계속 쬐여주는 등, 바닥을 관리하는 데만 엄청난 예산을 쓴다고 했으니 그들이 선수의 컨디션과 경기장 환경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잠시 감독자리에 앉아 관중석에 가득한 사람들과 잔디에서 뛰는 선수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경기티켓을 사서 다시 와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거대한 닭 조형물이 서 있는 꼭대기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토트넘 스카이워크'도 해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이 프로그램은 겨울 동안에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느 관광포인트와 다를 바 없이 이곳 또한 출구는 기념품샵으로 연결되었다. 영국은 물가가 워낙 높기 때문에 쇼핑은 자제하자고 여행 전부터 결심을 했었다. 하지만, 경기장을 나서는 우리의 두 손에는 손흥민 선수의 저지 두 벌, 로고컵, 열쇠고리, 응원스카프, 모자, 토트넘구장 주소 사인보드(응?)... 등이 들려있었다. 심지어 구매금액이 높다고 계산대 직원이 작은 선물까지 덤으로 주었다. 그동안 미술관에서도 비싸고 무겁다며 도록도 한 권 안 사고 버텨오다가 이곳에서 마침내 고삐가 풀려버린 것이었다. 너무 절제를 하면 현명한 소비를 할 동력을 잃어버린다는 교훈을 얻고, 우리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그제야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있었다.
Stadium Tours at Tottenham Hotspur Stadium | Tottenham Hotspur Stadium
스탬퍼드 브리지(Stamford Bridge)라 불리는 첼시 FC의 축구장은 런던의 남서부에 위치한다.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전통적인 부촌을 지나게 되었는데, 유명한 가구매장과 예쁜 부티크 가게가 아기자기하게 모여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첼시 FC는 비록 올해는 리그의 중위권에 머물고 있지만, 챔피언스, 프리미어, 유로파, FA 등 총 9개의 메이저 리그 우승컵을 소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명문 팀이다. 그러다 보니 이름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는 레전드들이 구단을 거쳐갔고, 그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이곳에서는 모바일기기 없이 가이드 두 명과 함께 이동하는 투어가 진행되었다. 투어 참가자들의 국적을 묻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한국인 방문객이 많았다. 주로 이삼십 대 청년들이었는데, 첼시의 서포터스로 활동하며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런던에 왔다고 했다. 처음부터 첼시의 팬이었다며 한국인 선수가 뛰고 있다고 해서 팬이 되는 그런 경우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투에서 허세도 좀 느껴졌지만, 그것도 다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나 싶었다. 가이드는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 자동적으로 손흥민 선수의 얘기를 꺼냈다. 훌륭한 선수이지만, 훌륭하지 않은 팀에서 뛰고 있다며, 토트넘 선수들은 우승컵을 받아본 적이 없어 첼시가 가진 이 많은 우승컵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은근한 디스도 첨가했다.
Stadium Tours & Museum | Official Site | Chelsea Football Club (chelseafc.com)
아스날의 홈경기장은 에미리트 스타디움(Emirate Stadium)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가까운 지하철 역은 할로웨이 로드(Holloway Rd)지만, 버스로 이동한 우리는 반대편 톨링턴 로드로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모퉁이를 돌아 경기장을 가다가 "톨링턴 암스(Tollington Arms)"라는 이름의 펍이 눈에 띄었다. 아스날 팀의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는 외관이 예사롭지 않아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맥주 주문을 받으러 온 여사장은 어제도 한국에서 온 아스날 서포터스들이 다녀갔다며 반가워했다. 알고 보니 이곳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팬들로 만원을 이루는 팬들사이에 꽤 유명한 펍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발견하는 뜻밖의 스폿에서 즐거움은 두 배가 된다. 사장과 한참을 떠들다 보니 어느새 나도 아스날의 팬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녀는 경기가 있는 날은 훨씬 재미있다며 꼭 오라는 당부를 했다. 당연히 현재 리그 1위이니 경기는 얼마나 신나겠나? 나 또한 나중에 이곳은 다시 와 보고싶다 생각하며 경기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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