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란 무엇일까
‘lotus tour Porto’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
서울의 동대문구 만한 크기의 작은 도시 포르투를
옆 동네 마실 왔듯이 종횡무진 쏘다닐 수 있게 해줬던 연나샘과
그녀의 남편 포루투갈인 네네와의 인연으로
우린 또 한 번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신기하게 매일 밤 비가 내린다.
바람과 폭우로 숙소 창문이 흔들릴 정도였는데
날이 밝으니 거짓말처럼 고요한 아침이 되었다.
아침 일찍 숙소 앞으로 네네의 자동차가 도착했다.
오늘은 네네의 부모님 즉 연나샘 시댁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네네님 부모님은 퇴직 후 포르투를 오가며
대대로 내려오는 발베르데(Val verde)지역 올리브 농장을 관리해 오고 계셨다.
부모님도 뵐 겸 올리브 농장이 궁금했다.
연나샘 투어 상품 중 도우루 밸리 와이너리 투어와 올리브 농장 견학 상품 개발을 위해
우린 기꺼이 연나샘의 1호 손님을 자청했다.
유쾌한 네네, 포서방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배려심 깊은 포서방이 틀어주는 우리 가요에 맞춰 떼창을 한다.
들려주는 노래가 이문세의 '광화문연가'라니. . . . .
포서방, 한국 사람이랑 정서가 찰떡이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포서방과 우리들의 대화를 열심히 통역하느라 분주한 연나샘,
행복한 마음을 실은 자동차는 포르투갈 소도시를 향해 달려간다.
첫 번째 방문지인 아름다운 마을 아마란떼(Amarante)에 도착했다.
배 모양의 빵을 비롯한
전통 빵 등등 종류도 다양한 빵들이 줄지어 있는 다리 위 빵집
콘페이탈라 다 폰떼(confeitarla da ponte)에서 카페 콘 레체와 함께 여유를 즐겼다.
빵집 창을 통해 바라보는 밖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폭신폭신한 구름들이 몽글몽글 하늘을 수놓고
강가의 물빛과 어울리는 초록 나뭇잎이 부드럽게 스치며 지나는 바람에 살랑이며 흔들린다.
풍경을 배경으로 도란도란 얘기를 이어가는 사람들 모습마저 평화롭다.
빵집과 마을을 잇는 역사가 스며든 다리 위를 건너 아기자기한 동네를 걸으며
짧지만 강렬한 소도시의 향기에 젖어 든다.
금강산도 식후경~
점심 식사를 위한 장소인 페소 다 헤구아(Peso da Regue)로 향했다.
비는 그쳤지만 습한 바람을 마주하고 빗물이 만들어 놓은 웅덩이를 피하며
느릿한 걸음으로 거대한 구조물인 헤구아 철교를 지나
토라오 레스토랑(Restaurante Torrao)에 도착했다.
도루강에서부터 유람선이 오가는 정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식당은
네네의 추천 맛집이고 뷰 맛집이었다.
도루강 지류인 발세마오강 경치 한 술에 감탄스러운 음식 맛 한 술,
제대로 된 포르투갈에서의 성찬이 되었다.
자동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도우루 밸리의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 언덕이 끝없이 이어졌고,
포도 농장인 ‘콴타’ 표지가 여기저기 보인다.
도루강을 따라 펼쳐진 푸른 포도밭의 향연에 눈이 부시다.
바위투성이의 건조한 언덕에 대규모 포도농장을 일구고 와인을 생산해 낼 때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보태졌을까 생각하니,
여기에도 생생한 삶의 현장이 펼쳐졌겠구나 싶어 사뭇 숙연해진다.
도우루 밸리를 한참을 더 달려 우리의 세 번째 목적지 와이너리 투어 장소인
헤알 꼼파니아 벨라(Real Companhia Velha) 에 도착했다.
260년 이상 포트와인 생산 역사를 품고 있는 가장 오래되고 품격있는 와이너리 중 하나이다.
예전에 이곳 도루강 계곡에서 숙성고가 있는 포르투의 가이아 지구까지,
도루강 긴 줄기를 따라 와인을 옮기던 독특한 모양의 유람선이
비가 내리는 도루강을 유유히 떠내려간다.
드디어 와인 시음 시간이다.
술에 관해 문외한인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기대감에 들떴고,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네 종류의 와인을 시음하고 음미하는 시간에
저널 북을 꺼내들고 테스트 장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소 거친 그림이 됐지만 현장에서의 그림은 그날의 상황과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시음하느라 마신 와인 탓에 복숭아 빛을 띈 친구들의 두 뺨이 사랑스럽다.
시음 후 섬세한 오크풍, 특유의 산화미, 조화미와 원숙미를 지닌
포트와인인 토니(Tawny)와인을 구입했다.
네네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발 바르데(Val Verde) 향해 출발한다.
집성촌으로 이뤄진 네네의 고향은 올리브 나무, 아몬드 나무, 체리가 지역 특산품이다.
올리브나무가 가로수처럼 자라고 있는 길을 지나
네네가 어린 시절 다녔다는 교회를 지난다.
우리를 향해 짓궂은 장난을 곧잘 걸어오는 네네를 보면
개궂졌던 어린 시절이 곳곳에 보이는 듯 하다.
아들 내외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네네 부모님이 베란다에서 환영 인사를 해주신다.
집안으로 안내되어 들어가니
하얀 식탁보가 깔려있는 원탁 식탁에 차려진 음식이 정갈한다.
프루슈트와, 치즈, 올리브, 빵과 직접 만드신 과일잼이 놓여 있고
그 사이로 멋스럽게 식탁을 차지한 올리브나무 가지 하나,
미술을 전공하신 시어머님의 센스가 돋보인다.
마치 영화 세트장에 와 있는 듯
네네 조부모님이 쓰시던 가구 그대로 놓인 방안 분위기가 고풍스럽다.
스탠드 아래 네네 아기 때 신발과 어린 네네의 모습이 담긴 액자가 정감있게 놓여있다.
집안 곳곳을 안내해 주시며 우리의 방문을 너무나 좋아해 주신다
한국인 며느리 연나샘과 뺨 인사를 나누고 살포시 안아주는 따뜻한 분들을 보니
우리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평수를 알 수 없을 정도의 너른 올리브 농장을 보러 자동차를 타고 움직였다.
포도색을 띠는 블랙 올리브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린 올리브가 튼실하게 달려 있다.
햇볕을 골고루 받기 위해 널찍널찍하게 떨어져서 자라고 있는 올리브 나무를 본다.
순간 올리브나무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얘기,
적당한 거리는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
적당히 애정을 잃지 않게 하며
많은 것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얘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포루투에서 두 시간여의 고향을 오가며 살가운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연나샘이 기특하고 대단해 보인다.
어스름하게 해가 지기 시작했다.
네네 부모님이 직접 짠 올리브오일과 과일,
그리고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환대를 가슴에 품고 우리는 다시 포르투를 향해 출발했다.
숙소로 돌아와 준비해 온 매운탕 양념을 듬뿍 덜어 연나샘에게 건넨다.
살다 보면 부모님, 형제 자매 생각에 눈물짓게 되는 날
싱싱한 생선을 넣고 칼칼한 맛을 내는 양념을 듬뿍 넣어 매콤한 맛으로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진정 오늘도 obrig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