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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소나무 Jul 03. 2024

농촌으로, 다시 도시로

어쩔 수 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왔던 길 되돌아가는 건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길을 잘못 들어섰거나 길이 막혀 더 이상 가지 못하면 어쩌겠는가. 되돌아갈 수밖에.      


   나는 서울에서 살다 2010년 4월에 지리산에 왔다. 서울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던 아내는 그 이듬해에 왔다. 공립학교라 전근 신청이 가능했다.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닌데 운이 좋아 집 근처 학교로 옮겼다. 

    

   오래된 마을 한 편에 직접 살림집을 지었다. 거기서 반려견 한 쌍(골든레트리버, ‘가로’와 ‘세로’)과 꼴딱꼴딱 살았다. 몇 년 동안은 아내가 출근하면 거실에 앉아 종일 책을 봤다. 호기심 따라 보는 것이니 지루하지 않았다. 주로 동양 고전과 불교 서적을 많이 봤다. 농사도 조금 짓기는 했지만 형식적이었다. 소출이 형편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이 동네 출신 동갑내기가 이장을 할 때, 마을 총무로 적극 도왔다. 국민권익위원회와 도로공사에 민원을 넣어 마을 우회도로를 만들었다. 어르신들 모시고 관광버스를 빌려 청와대 관람도 했다. 청년회도 새로 만들었다. 마을 야유회 준비 차 마을 회관에서 돼지도 잡았다. 그 과정에서 돼지 피를 뒤집어쓰기도 했는데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이 모든 일을 이장 이름으로 하고, 나는 뒤에서 일만 했다.    

  

   이장이 인근 3개 면 동갑내기가 모이는 ‘갑 계’에 추천해 나갔다. 회원 상호 간 경조사 챙기고 일 년에 두어 차례 얼굴 보는 모임이다. 낯선 곳에서 그나마 아는 사람 몇 있다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모임 자체는 변죽 맞는 사람이 없어서 별 재미는 없다.      


   지리산에 내려와 4년쯤 지났을 때, 식품제조업을 시작했다. “농촌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많은데, 아무런 준비 없이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주류인 정규 고등학교가 필요하다.”라는 아내 말에서 시작됐다. 돈 벌어서 학교 만들자고 시작한 일이다.     


    돈 벌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업은 마치 블랙홀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자원을 빨아들였다. 특히 아내가 명예퇴직하면서 받은 퇴직금까지 몽땅 털어 넣을 때는 마음이 씁쓸했다.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30년 이상 근속하고 받은 돈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기약 없이 쏟아붓는데 괜찮을 사람은 없다. 돈 문제에 초연하게 살아온 날들이 처음으로 후회됐다.

      

   사업은 희망 고문하듯 됐다 안 됐다 했다. 루이뷔통사가 운영하는 프랑스 파리의 봉막쉐 백화점 입점, 인천공항 면세점 입점, 학교 급식 공급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드나. 사업이 어느 정도 규모도 있고 뭔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하지만 실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느 한 곳에라도 물건이 지속해서 많은 양이 나간다면 모를까 찔끔찔끔 나간다면 허울이 아무리 좋아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요즘은 일주일에 이틀은 과천 경마공원 내에서 열리는 직거래 장터(‘바로마켓’)에 참여하고 있다. 월요일 오후에 지리산을 출발해 과천에다 물건 내려놓고 돈암동 어머니 계신 곳으로 간다. 화요일과 수요일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목요일 새벽에 지리산으로 내려온다. 목, 금, 토는 지리산에 있는 공장에서 아내와 함께 다음 주에 팔 물건을 만든다. 일주일에 반은 서울에서 지내는 셈이다.   

   

   우리가 서울에 자주 올라오니 올해 구순인 어머니가 편안해하신다. 딸 지우도 좋아한다. 아내도 좋아한다. 나도 시골에만 있는 것보다 생활에 변화가 있어서 좋다. 모든 이가 다 좋다 하는데 내가 지리산에만 머물 일이 뭐 있겠나. 당분간은 서울과 지리산을 오가며 생활하려 한다. 반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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