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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서 Aug 19. 2023

안녕, 프랑크푸르트 (첫 번째 이야기)

나비의 날개짓

독일에서 함께 살던 아내가 한국으로 떠났다. 언제 돌아오겠다는 기약 없이, 그렇다고 헤어지자는 말도 남기기 않은 채 그녀는 그렇게 귀국해 버렸다. 작년 이맘때 즈음에, 그녀는 갑자기 자기가 한국에 들어가면 어떻겠느냐고 말을 꺼냈다. 내가 이유를 묻자, 그녀는 한국에 가서 당장 취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프랑크푸르트 인근에 위치한 국내 대기업 기획팀에서 근무하던 중이었고, 동시에 경영학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던 나름 잘 나가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박사논문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데다가 처음 장만한 신혼집으로 이사를 앞둔 상황에서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언성을 높였다. 다만 본인이 정 원하면 잘 알아서 결정하라는 말과 함께 우리 대화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그 이후로 몇 주 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내심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그녀가 한국에 갈 결정을 하리라곤 크게 생각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않을 거라 나는 굳게 믿고 싶었다. 당시 우리는 주위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부부사이가 좋은 편이었고, 각자의 회사에서도 나름 인정을 받으며 이곳 프랑크푸르트 생활에 점차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얼마 전 양가 부모님께 이곳에 정착할 거라며 손을 벌려 힘들게 신혼집까지 계약하고 이사를 앞두기도 했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공사현장으로 달려가 새집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함께 바라보며 이사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고 항공권 구매까지 마쳤다고 나에게 통보했다. 처음엔 그녀 혼자서 귀국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었다. 혹시나 그녀에게 남자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까지 해보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그녀가 나와의 관계를 지속할 의향이 있었다면, 적어도 ‘먼저 가 자리를 잡아놓을 테니 뒤따라오라’는 말 한마디쯤은 남겼어야 했다. 


나는 이 사태의 원인을 내게서 찾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가장 크게 걸렸던 건, 언제부턴가 아내와의 섹스가 즐겁지 않았고 의무방어전을 치른 날들이 점점 더 많아진 것이었다. 가끔은 이러한 내 감정을 그녀에게 들킬까 봐 노심초사한 적도 있었다. 다만 우리는 연애기간을 포함해 십 년 가까이 만났던 만큼, 그녀가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간 것으로 내심 기대해 보았다. 아무튼 나는 그녀가 이곳을 떠날만한 납득 가능한 사유를 내게서도 찾지 못했다.


그동안 쿨한 척했던 나는 이제는 절박한 심정으로 당장에 꼭 한국에 가야 하느냐며 그녀를 붙잡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이 그리 쉽냐며, 나중에 이곳에서의 여유로운 생활이 그립지 않겠느냐며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려 안간힘을 써보았다.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거나, 연말보너스를 타 그녀가 평소 갖고 싶었던 값비싼 시계도 선물해 줬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결심이 바뀌지 않자, 급기야 나는 우리 명의로 받은 집대출 이자는 누가 갚느냐며 따져 묻기까지 했다. 그러자 그녀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우면 집을 세주고 조그마한 방을 얻어서 살거나, 방 한 칸만 세주고 그 집에 들어가서 살라고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처음으로 장만한 신혼집에 남과 같이 들어가 살라고??....


결국 그녀는 십여 년 간의 독일생활을 뒤로한 채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그 어떤 기약도 없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알 길이 없이 서로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녀를 공항에 데려주던 날, 그녀의 표정은 꽤나 밝아 보였다. 그런 그녀가 나는 너무도 미웠다. 그녀가 공항에서 잘 지내라며 내게 포옹을 하려들 때 나는 그것을 대놓고 거부해 버렸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잘 가라는 말 한마디 없이 그곳을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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