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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이야기 Aug 23. 2023

3화 첫 직장 퇴사, 줌바 강사 할까?

무계획 퇴사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나의 첫 직장 이야기

나의 첫 직장은 해외 브랜드 라이선스를 관리하는 에이전시였다. 일을 좋아하는 나는 퇴사 직전까지도 일을 재미있게 했다. 클라이언트인 북유럽 국가 시간에 맞추다 보면 항상 야근을 해야겠지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매일 야근을 헀다. 인정 받고 싶은 마음에 개인적으로 마트나 드럭스토어에서 물건을 살 때도 제조사 및 판매사를 확인하면서 시장조사를 하기도 했다. 작은 회사이다 보니 내가 맛볼 수 있는 성과도 빨랐다. 대표 혼자 일하는 1인회사부터 대기업까지 계약을 따낼 때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번아웃이라는 것이 왔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계약을 따내지 못 하면 인정 받지 못하고, 계약을 따내도 그에 걸맞는 성과금이 주어지지 않으니 동기부여는 점점 떨어졌다. 대리급들은 맨날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가고, 당시 사장님과 10년 넘게 일한 부장님 빼고는 고작 4년차인 내가 이 회사에서 제일 오래 다닌 사람이라는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커리어적으로 존경했던 사장님, 부장님도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적인 단점이 하나 둘 눈에 보이면서 더 이상 존경스럽지 않았고 그들을 보면서 ‘나의 10년 뒤 20년 뒤 미래가 저것이라면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아.’라는 회의적인 마음을 품게 된다. 몇 개월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겨우겨우 다니다가 마침내 퇴사를 결정했다. 2018-19년 그 때만해도 지금처럼 자기개발, 퇴사 후 창업 등을 소재로 한 유투브가 많지는 않았다.


어떤 시장 조사도 없었던 나는 ‘그만두고 줌바 수업을 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의 인생.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어떤 것이 마음에 고민이 되었을까? 나의 커리어? 이 때까지 쌓아온 경험들?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나는 어디서라도 빛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새롭게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실제로 회사에서 A-Z 유통까지 경험하면서 경험의 폭을 많이 넓혀놓은 상태였다. 신기하게도 내 마음 속에 걸리는 것은 ‘부모님’이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대기업 생산직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고,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방에서 꿈 많은 나를 키우시기에 평범하고 보수적인 나의 부모님은 내가 많이 버거우셨을 것 같다. 굳이 우겨서 서울까지 대학을 가고, 대학 가서도 꼬박 월세 용돈, 그리고 미국 유학까지. 나를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 대기업 입사라는 교과서적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고 대학 졸업 후 바로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일을 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남들이 아는 캐릭터를 가지고 일하니 우리 딸 이런 일 한다! 라고 말씀하실 때 효도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사라진다면 부모님께서 싫어하지 않으실까?’ 부모님께 받은 것이 많다는 이유로 어쩌면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이렇게 살아도 부모님이 보시기에 괜찮을까?’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실제로 나의 부모님은 보수적이시긴 하지만, 전혀 엄격하시지도 않으시다. 13살 예술 중 진학을 반대한 것 외에는 내 삶에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예술 중 진학 반대는 신의 한 수다.)


엄마가 서울에 잠시 놀러 온 날 나는 ‘퇴사 통보’를 했다. 엄마의 반응은 생각보다 쿨했다. ‘그래 니 인생 니가 사는 거지.’ ‘아 맞다! 내 인생이다.’ 30살이 되던 해 그렇게 나는 4년간 잘 다녀왔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 프리랜서의 길에 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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