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걸음
업힌 채 거리를 가고있었다. 높고 넓고 따뜻했다. 아빠 냄새가 나서 얼굴을 비비며 목을 끌어안았다.
“깼냐?”
“아빠! 아빠가 어떻게 알고 왔어?”
“….”
“걔가 전화했어?”
“….”
“걔 있잖아! 걔. 내가 저번에 얘기해줬잖아. 내가 좋아하는 애라고.”
“아, 누구.”
“세상에서 걔가 제일 좋아. 엄마보다 좋아. 아빠보다 좋은지는 또 꿈 나와주면 말해줄게.”
“….”
“아빠. 보고싶어. 너무 보고싶어. 진짜 너무 보고싶어.”
난 흐느껴 울었다. 울음을 그치고 잠깐 있다가 말했다.
“걔 엄청 착해. 너무 좋은 애야.”
“걔 좋아?”
말없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지나치는 거리를 봤다. 초저녁이었다. 목을 더 꼭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너무 좋아. 내 첫사랑이야.”
아빠는 어린이날이면 작동에 있는 놀이공원에 날 데려갔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빠의 장례식장에 온 그 사람에게 이제 거기 데려가 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얼마 후 그 사람이 엄마와 함께 날 데리고 작동으로 갔다. 엄마가 말했다.
“은오야, 이제 엄마가 바빠서 이렇게 다니는 건 마지막이야. 응? 중학교 가서 친구들이랑 가.”
그 생각을 하고있는데 정유성이 말했다.
“헉. 야, 나 지갑 놓고 왔어.”
양천구청역 2번 출구로 향하는 다리를 걷고 있었다. 다시 돌아서 반대로 걸어갔다. 십 분 더 걸어가 정유성은 낡은 빌라 앞에 섰다.
“나 여기서 기다릴까?”
“아니. 들어와.”
긴 다리로 휘적휘적 지하로 들어가는 정유성을 따라갔다. 들어가자마자 조그만 부엌이었고 오른쪽에 난 작은 복도 끝에 방이 하나 있었다. 부엌에서 좌식 탁자를 놓고 예쁜 남자애가 라면을 먹고 있었다. 까맣고 기골장대한 정유성과 다르게 마르고 희었다.
“야, 인사해.”
정유성 말에 남자애가 정유성을 잠깐 보고 내게 고개를 까닥였다. 난 웃었다.
정유성을 따라 방에 들어갔다. 창살 달린 손바닥만한 창문 하나가 벽에 있었다. 천장 가장자리를 따라 곰팡이가 시커멓게 피어있었다. 오단서랍장들 위로 옷이 담긴 박스가 천장까지 쌓여있었다. 바닥 장판에도 곰팡이가 피었고 문지방은 벗겨져 있었다.
“왔어?”
여자어른이 벽에 기대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난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누구야?”
“내 여친. 아, 어디있지, 지갑? 이모, 내 지갑 못 봤어?”
정유성 이모는 뭔가에 홀린 사람 같아 보였다.
“야, 씨. 큰일났다. 지갑 안 보여.”
“어떡해? 잘 생각해봐.”
“야! 내 지갑 못 봤냐?”
난 이모 눈치를 자꾸 살폈다. 눈동자에 초점이 풀린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 하고 부엌에서 무심한 단답이 돌아왔다. 정유성은 부엌 옆에 있는 작은 베란다로 달려가 세탁기를 뒤졌다.
“여보세요? 엄마, 내 지갑 못 봤어?……아씨, 지금 애들 다 기다리고 있는데. 알았어.”
“그냥 내가 내줄게. 가자.”
남아도는게 용돈이었다.
“찾았다!”
정유성이 세탁기 속에서 머리를 처들고 지갑을 들어보였다.
“바지 주머니 안에 딸려갔었어.”
그때 현관으로 가다가 우뚝 서고 방 안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기괴한 울음소리가 났다. 정유성도 동생도 굳은 표정으로 방 안을 쳐다봤다. 정유성이 빠르게 안으로 달려갔다.
이모가 팔다리를 사방으로 허우적대며 바닥에 누워있었다. 전신을 부르르 떨며 꼭 귀신 울음 같은 소리를 냈다. 입에서 하얀 거품이 뿜어나왔다. 난 충격적인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손으로 입을 막고 얼음이 되어 문지방에 서 있었다. 동생이 달려와 내 뒤에 섰다.
“여보세요? 아빠, 이모 또 경련해.”
동생이 전화에 대고 말했다. 내가 돌아보자 뒤돌아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데…형이 여자친구 데려와가지고 같이 보고있어.”
“뭐래?”
다시 돌아온 동생에게 정유성이 물었다.
“그냥 가만히 냅두고 형 놀러 가래. 아빠 지금 온대. 아아, 베개만 좀 받쳐주래.”
“이모, 나 갈게. 사랑해.”
정유성은 발작하는 이모에게 베개를 받쳐주고 얼굴을 마주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우린 집을 나왔다.
“깜짝 놀랐지?”
“어어, 약간. 어디 아프신거야?”
“나도 잘 모르는데 뇌염하고 간질이라고 엄마아빠가 그랬어.”
“이모랑 같이 살아?” “응.”
저 손톱 같은 집에 다섯 명이 살 수도 있는거구나, 육십 평짜리 아파트에서 혼자 살다시피 했던 난 신기했다.
“너네 부모님은 무슨 일 하셔?”
“폐기물 수거해서 재활용 하는 거. 그때 아빠 차 봤잖아.”
“아아.”
“나 진짜 믿는 애들 빼고 우리 집에 한 번도 친구 데려온 적 없다.”
다시 열차 선로 위 육교를 걸어가면서 더운데도 손을 꼭 맞잡았다. 정유성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한뼘통화를 눌렀다.
“야, 니네 진짜 뭐냐고! 개늦었다고, 우라질. 지갑으로 쌈 싸 먹을 놈들아!”
“다 왔어, 다 왔어. 지금 2번 출구 앞에 육교 뛰어가고 있어.”
우린 손을 잡은채 오래된 나무바닥을 뛰어갔다. 다리 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이 축구를 하고있었다. 열차가 선로를 따라 다리 밑으로 빠져나갔다.
“야, 저건 너무 무서울거 같은데.”
밤에 놀이기구를 기다리며 내가 말했다.
“다른 거 다 탔으면 저것도 백퍼 탈 수 있어. 정 그러면 눈 감고 타.”
놀이기구가 붕붕 하늘을 날 때 눈을 질끈 감았다.
“백삼십! 눈 떠 봐! 한 번만 떠 봐!”
외침에 눈을 떴다. 그 순간 넓은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밤하늘 위에서 정유성을 돌아봤다. 활짝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뇌리에 박혀 여름밤에 시원한 바람이 불면 문득문득 떠올랐다. 짙푸른 호수 위 공중에서 날며 날 보던 하얀 웃음이 수능을 볼 때, 졸업을 할 때,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 생각이 났다. 놀이기구가 잠깐 공중에 붕 뜨고 돌아가듯 정유성이 그랬다.
개학 후 어느 쉬는 시간에 과학실로 향하는데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교실 안에서 우람한 남자애가 벌건 얼굴로 씩씩대고 있었다.
“가만 안 놔둔다.”
친구로 보이는 비슷한 애들이 함께 심각하게 서 있었다. 장미 자리가 비어있었다.
“왜 저러는 거야?”
내가 옆에 있던 애한테 물었다.
“전성혁이랑 엄지은이랑 사귀잖아. 김장미가 엄지은한테 전성혁이 바람 피웠다고 거짓말했대.”
씩씩대는 애가 전성혁이었다. 같은 교실에 있는 애들은 피곤한 표정으로 최대한 무시하고 있었다. 구경하고 있는 애들도 조금 수근거릴뿐 조용했다.
다음날 3교시 쉬는 시간에 그 반으로 갔다. 장미는 자리에서 엎드려 자고 있었다. 어깨를 두드리자 고개를 들었다.
“뭐냐.”
“장미야.”
“왜.”
“전성혁이 뭐래?”
도로 엎드렸다가 잠시 후 말했다.
“뜨쟤.”
“어디서?”
“매점 뒤에서.”
“언제?”
“점심에.”
“같이 가자.”
“뭐?”
장미가 고개를 들고 픽 웃었다.
“같이 가자. 나랑.”
“니가 뭐 어쩌게?”
“같이 싸워줄게.”
“뭐?”
장미가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엎드렸다.
“나 이따가 밥 안 먹고 종 치자마자 올게, 기다려.”
아무 말 없었다. 난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꾹 쥐었다.
4교시 전에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는데 정유성이 내 사물함 문을 닫으며 가만히 날 쳐다봤다.
“왜?”
얼굴을 내 코 앞에 들이대고 숨결을 끼치며 나긋하게 협박조로 말했다.
“매점 뒤에 싸움판 가지마라.”
정유성 옆에 입이 얼마나 많은지 가끔 잊었다.
“안 가. 거길 왜 가.”
똑같이 숨결을 끼치며 나긋하게 협박조로 대답하자 눈을 내리깔고 날 빤히 쳐다봤다.
“아니, 안되겠어. 너 오늘 나랑 먹어. 점심.” 말하고 자기 자리로 갔다.
난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는 순간 튀어올라 교실을 빠르게 뛰어나갔다.
“장미야! 가자!”
뒷문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장미는 꿈벅꿈벅 일어나 여유롭게 걸어갔다. 2층 복도를 통해 매점으로 가서 밖으로 나왔다. 전성혁과 그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