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걸음
밤새 폭설이 내렸다.
“은오야, 우산 갖고 가. 혹시 몰라. 이따 또 올지.”
조만간 내 계부가 될 효영이 아저씨가 문을 나서는 내게 말했다.
“학교까지 얼마나 걸려?”
“한 시간이요.”
“한 시간?! 아, 이사 와서 그렇게 됐구나. 자기야, 은오 집에서 학교까지 너무 먼 거 아니냐?”
“지가 됐다잖아. 말 안 들어, 쟤.”
“은오야, 기다려. 태워 줄게.” 아저씨가 잠바를 급하게 주섬주섬 여미며 말했다.
“아아, 괜찮아요, 괜찮아요.” 난 황급히 문을 닫고 도망쳤다.
역에서 나와 학교로 향했다. 항상 대로변으로 가다가 그날은 아파트 단지를 질러가는 길을 택했다. 그리로 등교하는 애들은 별로 없었다. 놀이터를 지날 때 놀라 눈살을 찌푸렸다. 한산한 놀이터 벤치에 남자애가 피를 흘리며 누워 날 쳐다보고 있었다.
“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학교 교복이었다. 조심스레 다가갔다. 한쪽 눈이 부었고 교복에 밟힌 흔적이 있었다. 날 향해 입을 뻐끔댔다.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놀라 뒷걸음질 쳤다. 박서환이었다.
“김은오.”
무시하고 뒤돌아 가려는데 박서환이 말했다.
“미안해. 도와주면 안 되냐, 한 번만.”
이어 또 말했다.
“집에 가게 좀 도와주면 안 될까?”
“119 불러야…”
내 말에 손을 저었다.
“하지마. 제발. 절대.”
“집이 어딘데?”
여름방학 때 나한테 못된 짓을 한 게 생각나 존댓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 옆에 103동 204호.”
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무시하고 뒤돌아 갔다. 열 걸음 갔을 때 멈추고 돌아왔다. 노리폰을 켜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고 백칠십 후반은 되어보이는 박서환을 부축해 일으켰다.
“아아아.”
다리를 다쳤는지 제대로 걷지 못했다. 난 낑낑거리며 박서환의 한 팔을 내 어깨에 두르고 걸어갔다.
“여기?”
단지 안을 휘저으며 물을 때마다 박서환은 힘 없이 고개를 저었다. 12월에 땀이 한여름인듯 흘렀다.
“아, 진짜……어! 여기지? 여기 맞지, 103동?”
마침내 찾아내자 박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열려져있는 204호 안으로 들어가 박서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흐어!”
난 현관에 주저앉아 헉헉거리며 떡볶이 코트를 벗어던졌다. 집이 좁았다. 들어가자마자 있는 싱크대 너머 작은 방 하나가 전부였다. 박서환은 소리 없이 울고있었다.
“미안해. 너한테 찝적댔던 거 미안.”
“괜찮아.”
박서환은 잠시 울기만 하다가 말했다.
“아, 아빠가…그 새끼가 이래 놨어.”
불쌍했다. 알고보면 착한 애라고 생각했다. 박서환이 크게 울며 말했다.
“제발 죽었으면 좋겠어. 그 새끼 제발 죽었으면 좋겠어.”
박서환이 우는 소리만 집 안에 들렸다. 내가 말했다.
“괜찮아. 우리 아빠는 죽었어. 나 초등학교 육학년 때 사고로.”
울컥 눈물이 올라와 눈을 닦았다. 훌쩍거리며 나도 울었다. 어쩌면 사랑 받고 자라 해맑은 정유성보다 박서환 같은 애가 나와 맞다고 느꼈다. 일어나 코트를 입고 신발을 신었다. 문을 나서는데 박서환이 말했다.
“죽고싶어, 오늘.”
2교시 수업 중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모두 돌아봤다. 정유성과 눈이 마주쳤다.
죽고싶어, 오늘. 하루종일 그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병원에도 안 가겠다면 박서환은 그 상태로 계속 있을 터였다. 왜 병원에 안 가겠다고 했을까?
죽으려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19를 부르지 않은 걸 후회했다. 하교할 때 문자가 왔다.
김은오 오늘 너무 고마웠어
박서환이었다. 지그재그형 계단을 내려가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다가 멈춰 섰다. 또 문자가 와서 보니 안녕이라고 쓰여있었다. 섬짓했다. 계단참에서 발걸음을 왔다갔다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정유성과 눈이 마주쳤다. 우린 대충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정유성이 꺾어 돌아 등을 보이고 계단을 내려갔다.
“정유성.”
내가 부르자 우뚝 멈췄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너 친구들 중에 박서환이랑 친한 애 있으면 걔한테 좀 가보라고 말해주면 안 돼? 아니, 걔가…”
정유성이 휙 뒤돌아 날 꼬아봤다. 눈을 내리깔고 하찮다는 듯 말했다.
“걱정되면 니가 가보면 되겠네.”
뒤돌아 긴 다리로 몇 걸음만에 사라졌다.
은오야, 오늘 금요일이니까 이따 뭐 맛난 거 먹자, 안녕, 아빠가 말하며 집을 나갔고 난 그 뒷모습을 쳐다봤다.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가 현관 멀리 바쁘게 가고있었고 안아주려면 맨발로 밖에 뛰어나가야 했다. 어차피 이따가 볼 건데 뭐, 생각하고 문을 닫은 날 이렇게 원망할 줄 알았다면, 그 뒷모습이 마지막인줄 알았다면 발바닥에 화상을 입는대도 뛰쳐갔을 것이다.
계단참 창문 앞에 덩그러니 선 내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창문으로 노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보고싶었다. 모든 걸 빼앗겨도 아빠가 살아 돌아온다면 상관없었다. 모의고사 성적도, 기말고사 성적도, 1등급도, 내신도, 생기부도, 수능도, 논술도, 장미도, 심지어 정유성도.
결국 그 집으로 다시 갔다. 문을 두드리자 반응이 없었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저기요? 저기요!”
문고리를 돌리니 문이 열렸다. 급히 들어갔다. 박서환은 아까 그 자리에 없었다.
“박서환?”
열린 방문에 대고 조심스레 불렀다. 열고 들어갔다. 방이 좁아 침대와 책상으로 꽉 차있었다. 박서환이 아까와는 달리 머리에 붕대를 감고 깨끗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난 경직했다. 침대에 붙은 책상 위 컴퓨터에 벗은 남녀가 뒤엉켜있는 모습과 소리가 적나라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으, 야, 너 뭐해…?”
박서환이 일어나 앉았다. 윗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음이 되었다.
“너 뭐야?”
뒷걸음질 치는 내 손목을 잡았다. 아침엔 분명 사지를 못 쓰더니 이상했다.
“왜 이래?”
“가지마. 죽어버릴거야.”
“뭐?”
난 손을 흔들어 빼내려 했다. 박서환이 일어나더니 방문을 닫았다. 소름이 돋았다.
“너 지금 뭐 해?”
난 고래고래 소리쳤다.
“솔직히 너도 원하잖아.”
“아니!”
나가려는 날 잡고 밀자 침대에 넘어졌다. 공포가 치고 올라왔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방문이 부서져라 큰 소리로 두들겼다.
“김은오!”
박서환이 우뚝 멈췄다. 문이 벌컥 열렸다. 정유성이 숨을 헉헉거리며 나와 박서환을 번갈아 봤다. 다가와 날 잡고 방을 나갔다. 긴 다리로 빠르게 집을 나가며 발로 현관문을 건물이 떠들썩하도록 쾅 닫았다.
정유성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정신없이 숨을 가쁘게 쉬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손을 떼고 날 머쓱하게 보다가 눈빛을 바꿔 노려보곤 걸어갔다. 난 천천히 따라갔다. 앞서 가던 정유성이 멈추더니 날 향해 빠르게 걸어와 말했다.
“야, 이 또라이 새끼야. 너 살지마. 죽어.”
난 당황했지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눈을 똑바로 떴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이 안 돼?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와!”
아파트 주민들에게 다 들릴 것 같았다.
“그럴 상황이었어. 나도 몰랐다고.”
정유성이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너 쟤한테 마음 흔들렸냐? 로맨스라도 한 편 펼쳐질 줄 알았어?”
“뭐? 아니.”
“근데 왜 와? 쟤랑 한번 잘해보고 싶으니까 멍청하게 기어왔겠지.”
목구멍이 꽉 막혔다.
“아니라고. 쟤 불쌍해서 왔어. 나 아니면 죽을 것 같았…”
“남자가 그렇게 궁하냐? 이리저리 찔러보고 다 안 되니 하다하다 이젠 박서환이야?”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정유성은 주먹을 부르르 떨고만 있는 날 내리깔아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래!”
난 고개를 처들며 소리질렀다.
“그래. 마음 흔들렸다. 쟤도 부모 때문에 속 썩는다잖아. 너가 알아? 오늘 아침에 내 입에 닭갈비 넣어준 아빠 이름이 사망자 명단에 써 있는 기분을 알아? 놀러가면 아빠가 차로 데리러오고 지갑 잃어버리면 엄마가 일하다가도 걱정해주는 너가 그 기분을 알아?! 남한테 상처주는데 아무 가책 못 느끼는 너보다…차라리 뒤집어보면 나랑 똑같은…저런 박서환이 나아.”
눈물을 펑펑 흘리며 악을 쓰고 소리쳤다. 한참 말이 없었다.
“좋으면 사귀어. 걔 옆에 도로 가서 누워.”
태연하게 말하는 정유성을 올려다보는 내 눈에서 마지막 눈물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난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천천히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이 나쁜 새끼야.”
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영하 14.5도. 겨울바람이 패딩 속을 사정없이 비집고 들어왔다. 박자 못 맞춘 느림보처럼 늦장 부린 눈 한 송이가 정유성 이마에 살그머니 내려앉았다.
“쟤가 너 좋아서 부른 줄 아냐? 쟨 니가 좋은게 아니고 그냥 여자가 좋은 거야. 그것도 만만한 여자.”
그렇겠지, 너처럼.
“너야말로 여기 왜 왔냐? 니가 무슨 상관인데?”
정유성 눈빛이 흔들렸다. 난 이어 말했다.
“멍청아, 나 너 안 좋아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진심인적 없었어. 착각하지마.”
다시는 니 어장관리에 안 놀아나.
정유성 눈이 내 눈을 똑바로 한참 쳐다봤다.
“너 지금 내가 너라고 못 패고 설설 기니까 눈에 뵈는게 없지?”
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정유성 턱에 핏줄이 섰다.
“나도 마찬가지야.”
말하는 정유성 입으로 입김이 하얗게 나와 퍼져 올라갔다. 정유성이 뒤돌아 걸어갔다. 난 공허한 길에 혼자 우두커니 서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아빠에게 문자를 했다.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싫어.
눈시울이 먹먹해지더니 신발코에 뚝뚝 물방울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