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걸음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3년 4월, 복도를 걸어가는데 다른 반 교실 안이 시끌벅적했다. 다른 반 애들까지 왁자하게 몰려 구경을 하고 있었다. 천천히 지나가며 안을 보니 정유성이 이지수에게 뭘 건네고 있었다.
“저게 뭐야?” “선물이래.”
누가 묻자 누가 대답했다.
“오늘 뭔 날이야?”
내가 옆에 있는 1학년에게 물었다.
“저 언니 생일이래요.”
정유성 생일은 그 전날이었다. 꼭 둘이 운명 같았다.
“뽀뽀해! 뽀뽀해!”
애들이 손뼉 치며 소리쳤다. 정유성이 씩 웃더니 이지수를 끌어안았다.
“아, 개부럽다.”
“야, 쟤보다 니가 더 예쁘다. 존나 이해가 안되네.”
3학년 언니들이 서로 말했다. 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음이란 댐에 물이 가득 찬 것 같았다.
점심시간, 혼자 교실에 앉아 아빠에게 문자를 하고있었다.
“야.”
정유성이 앞문으로 들어왔다.
이지수는 분명 왜 점심시간에 김은오랑 단둘이 밥을 먹냐고 따졌겠지. 정유성은 뭐라고 했을까?
불쌍해서 도와주는 거야.
울컥 목구멍에 뭔가 치밀었다. 정유성은 날 찰나로 재미있어한 정도였지 내가 저를 좋아한 것처럼은 아니었다. 내게 했던 모든 고백과 다정함도 다른 여자애들에게 똑같이 해온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았던 열여덟 살, 스무 살 입시 문제로 반항하다 실패했을 때보다, 스물네 살 독일에 억지로 가야했을 때보다, 스물여섯 살 보이스피싱으로 오백만 원을 사기당했을 때보다 육중한 돌덩이가 가슴에 내려앉았다.
난 고개를 들고 정유성을 똑바로 쳐다봤다.
“야, 너 왜 자꾸 나랑 밥 먹으러 오냐?”
정유성이 냉담하고 의미 없는 눈길로 날 쳐다봤다.
“너 친구 없잖아.”
“친구 없는 애들 나 말고도 많은데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아무 말 없다가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싫다면 싫다고 진작 말을 하던가.”
울분에 찬 내 목소리가 크게 터져나왔다.
“말했잖아! 싫다고! 너무 싫다고! 싫어 죽겠다고! 근데 너가 멋대로 끌고 갔잖아!”
말했잖아, 좋다고. 너무 좋다고. 좋아 죽겠다고. 근데 너가 멋대로 헤어지자고 했잖아.
정유성이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더니 잠깐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차갑게 정색한 얼굴을 들고 돌변한 태도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야, 내가 호구같냐?”
“뭐?”
“아직도 내가 니 호구따까리로 보이냐고. 내가 니 좋으면 끼고 싫으면 빼고 신발 밑창이야?!”
목에 핏대를 올리고 소리질렀다. 한참 후에 내가 말했다.
“나가.”
정유성이 나가며 교실 문을 부서져라 쾅 닫았다.
점심시간, 식판을 들고 창가 4인 테이블에 다가갔다. 경아가 빠르게 걸어와 내가 앉으려던 의자에 털썩 앉았다. 다른 데로 가려고 돌아서는데 발이 걸렸다. 요란하게 넘어지며 식판을 엎자 빨간 육개장 국물이 교복에 쏟아졌다.
“헉, 야! 미안.”
꼴사납게 쓰러진 채 올려다보자 박정훈이 한쪽 발을 내밀고 미안한 표정을 부자연스럽게 짓고 있었다.
“야, 너 왜 그래.”
교복 카라에 분홍색 껌이 붙은 윤소라가 자리에 앉아 웃음을 터뜨렸다. 박정훈은 식판을 경아 앞에 내려놓고 앉다 말고 내게 다가왔다.
“괜찮아? 힘내.”
박정훈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다정하게 날 토닥였다. 난 반쯤 일어나 식판을 잡으려 했다. 박정훈이 먼저 잡고 식판에 남아있는 음식물을 내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 윤소라가 웃었다.
“야, 야. 애 울겠다.”
이현수가 밥을 우물거리며 웃으면서 날 쳐다봤다. 경아는 가만히 밥만 먹었다.
화장실에 가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교실로 들어왔다. 교실 앞에 내 책가방이 뒤집어져 있었다. 안에 있던 내용물이 전부 쏟아져 있었다. 통 안의 샤프들이 다 토해져 나와 있고 샤프심은 부러져 있었다. 꿈에 한껏 부풀어 쓰고있던 소설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위로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영어 교과서, 수학 연습장, 학원 교재 두 개, 생리대가 발자국이 찍힌채 광고하듯 너절하게 펼쳐져 있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캄캄한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가방을 대충 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목이 깔깔하고 머리가 아팠다. 거대한 시계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이십 분쯤 후 벌떡 일어나 집을 나갔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있고 싶었다. 저녁 공기에 한기를 느끼며 한참 걸었다. 배가 고파 컵라면을 샀다. 탁자에 앉아 먹으려는데 반 애들이 모여 앉아 떠들고 있었다. 라면이 든 봉지를 들고 후다닥 편의점을 나갔다.
피시방 앞에서 멈춰 섰다. 지하로 내려가 입구로 들어가자 왁자한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구석진 곳에 앉아 코를 찌르는 담배 냄새를 맡으며 컵라면을 부숴 먹었다. 몸을 오그리고 의자에 파묻혔다. 쓰레기가 든 봉지를 손목에 끼우고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초등학교 육학년,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일주일 뒤 심하게 체했었다. 집에서 혼자 앓고 있는 날 그 사람이 업고 병원에 데려갔다. 그때로 돌아간 꿈을 꿨다. 아팠던 기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빠 보고싶어.”
등에 업힌 채 내가 말했다.
“은오야, 다 왔어. 좀만 참아. 많이 아프지?”
“목말라요.”
난 체한 게 아니었다. 병원 침대에 누웠을 때 내가 말했다.
“엄마 올 때까지 가지 마요.”
“당연하지.”
“저기요, 괜찮으세요? 저기요.”
눈을 떴다. 아르바이트생이 날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땀이 비오듯 흐르고 머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온 몸에 열이 펄펄 났다.
“119 불러드릴까요?”
고개를 젓고 일어났다. 한 걸음 떼기가 지옥 같았다. 출구를 향해 걸어가다가 멈췄다. 비닐봉지가 묵직했다. 열어보니 포장된 죽 세트와 약 봉지와 보리차 한 병이 있었다. 약 봉지에서 감기약이 나왔다. 만 원짜리 한 장도 있었다.
그 돈으로 탄 택시 안에서 보리차 한 병을 다 비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봉지 안에 있던 죽을 한 톨도 안 남기고 먹은 다음 약을 먹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개운하게 눈을 떴다.
조회가 끝나자마자 정유성이 앞문에서 나타났다.
“백삼십.”
불러놓고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다가 물었다.
“수학책 있어?”
난 수학책을 가져와 건네고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화학 시간, 화학실에 도착했을 때 내 면전에 대고 귀청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깜짝 놀라 멈춰 섰다. 문고리를 돌려 열자 방유나를 중심으로 애들이 웃고 있었다.
오후에 컴퓨터실 문 앞에 왔을때 또 문이 2층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게 내 코 한 뼘 앞에서 쾅 닫혔다. 멈춰 서서 숨을 내쉬며 화를 삼켰다. 싸워봤자 강도만 심해질테니까. 천천히 문고리에 손을 뻗는데 뒤에서 저벅저벅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날 지나 순식간에 문을 열어젖혔다.
방유나를 중심으로 애들이 킥킥대고 있었다.
“헉, 야. 너였냐?”
“엥?”
문 앞에 서있던 애들이 당황했다.
“야, 미안. 진짜 미안. 넌 줄 몰랐어.”
뒤를 돌아보니 컴퓨터실 맞은편이 정유성 반이었다. 정유성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방유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안으로 걸어갔다.
“방유나.”
“어?”
교실 뒤에서 걷는 둘을 모두 조용히 쳐다봤다.
“재밌냐?”
웃으며 묻자 방유나도 웃었다.
“어어?”
“재밌냐고.”
정유성이 얼굴빛을 돌변해 발 가까이 있던 의자를 차며 싸늘하게 말했다.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물함에 부딪혔다.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방유나가 움찔하더니 말했다.
“아, 야, 왜 그래. 미안해. 몰랐다고.”
정유성이 장난이라는 듯 눈웃음쳐 소리 내 웃으며 방유나를 툭 치고 밖으로 나가다가 날 무심하게 흘깃 스쳐봤다.
체육시간, 종이 치자 호루라기를 불며 선생님이 가라고 손짓했다. 몰려갈 때 소희 주머니에서 머리끈이 떨어졌다.
“소희야.”
소희가 돌아봤다.
“이거 떨어뜨렸어.”
소희가 멈칫하고 머리끈과 날 번갈아 봤다. 유진이 소희에게 귓속말을 했다.
“어? 아…어…아, 더러워. 너 가져.”
애들이 깔깔 웃으며 돌아서 갔다. 난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소희가 뒤를 돌아 날 보더니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는 은벽한 1층 복도를 배회했다. 구석진 끝까지 가자 뜬금없는 문이 있었다. 존재를 아무도 모를 것 같은 화장실이었다. 제일 안에 있는 칸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안도의 한숨이 길게 터져 나왔다. 쪼그리고 앉아 종이 치길 기다렸다.
“맞다니까? 내가 봤다고.”
여자애들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에이, 설마.”
“맞다니까! 입에서 거품 뿜고 길바닥에 누워서 난리 치는 여자랑 같이 있었다니까. 막 주변 사람들이119 부르겠다고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걔가 그러는거 봤어.”
“그러고보니까 저번에 진이가 그랬는데 정유성 걔 엄청 비싼 호텔 프런트에 여자랑 같이 있는 거 봤대.”
“걔네 집 돈 완전 많다고 누가 그러던데. 그래서 그런 비싼 데 막 들어가고 그런대.”
총 셋 쯤 되는 것 같았다.
“아니, 아무튼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이거라고. 그 누워서 발작하던 여자, 애인 같았어.”
삼 초쯤 조용하다가 에에이-, 두 명이 동시에 말했다.
“아니, 맞다니까? 내가 그 여자 발작 하기 전부터 뒤에서 같은 길 걸어가고 있었단 말이야. 정유성이 그 여자한테 뭐랬는 줄 알아?”
“뭐라고?”
조용하고 은밀했다.
“사랑한다고 그랬어. 내가 들었어.”
“엄마일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엄마 아니면 애인이라고. 근데 엄마라기엔 너무 젊었어. 야, 그리고 예뻤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화장실에서 나와 도서관에 가 내 아지트에 틀어박혔다. 정신을 놓고 한 시간 내내 돌처럼 앉아있었다.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쳐도 꼼짝하지 않았다.
독서 수업이 있는 반이 도서관에 들어왔다. 책을 고르는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시야 끄트머리에 신발이 나타나더니 내 바람을 무시하고 내 앞으로 다가와 책꽂이에 기대섰다.
“수업 안 들어가고 뭐하냐?”
정유성이었다.
“수학책 책상 위에 갖다 놨어.”
난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 가지고 놀았어? 왜 나였어? 조금이라도 감정 있으니까 나였던거야?
머릿속에 써둔 묻고 싶은 말을 뱉지 않았다. 애들이 책을 찾아 자리로 하나둘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작년에 기억나? 동아리 신청 기간에.”
정유성이 건드리기 싫은 좋았던 과거를 꺼냈다.
“우리 아직 별로 안 친했었을 때.”
정유성이 다짜고짜 헤드락을 걸고 동아리를 같이 들자고 하던 기억이 났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
“그때 너가 만 원 내에서 나 원하는 거 하나 들어주기로 했었는데.”
그날 이후 정유성은 다시는 날 아는 척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