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그렇게 눈을 뜨기가 싫었다. 30분 글쓰기 네 번째에 벌써 슬럼프가 오다니! 이은경 작가가 글쓰다 슬럼프가 오면 실력이 점프하는 시기라고 했는데 내 경우 그건 아닌 거 같다. 글을 뭐 얼마나 썼다고! 고작 세 개, 세 개 써서 실력이 점프했으면 내 글은 여러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고 이미 억만장자가 되었을텐데 그건 아니다. 확실히 아니다.
작심삼일 이랬지. 그러니 오늘 하기 싫은 날이 맞다. 괜찮아. 다들 그래. 오죽하면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옛날 옛적부터 나왔겠어. 선비들도 그랬을 테고, 왕도 그랬을 테지. 그러니 일반 백성인 내가 삼 일 쓰던 글을 그만 쓰고 싶어서 눈을 기어이 뜨지 않고 이불을 발로 올려서 내 몸을 쏙 숨기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 일이야. 그러니 마음속에 들어오려고 하는 나를 혼내려고 하는 돌덩이와 '너 왜 벌써 지쳐?' 하는 닥달하는 말은 차단하자. 영구차단.
차단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너 나 차단했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목소리 톤도 올리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말하는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아는 언니다. 아는 형님처럼 든든한데 그렇다고 나보다 등치가 훨씬 크거나 키가 크지 않다. 언니나 나나 키도 몸무게도 비슷할 거 같다. 생긴 건 음. 내가 좀 더 예쁘다고 치자. 오늘 이 글을 쓴 다음에 언니한테 보낼 건데 분명히 전화가 올 거다. "니가 더 이쁘다고? 야! 아니거든? 나거든?" 여섯 살이 많아도 미모로는 단연코 언니라고 할 테지. 하지만 안다. 그렇게 말해놓고 자기도 민망해서 웃음이 빵 터지고 그러다 딴 이야기로 넘어갈 것을.
아무튼 언니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오래도록 연락을 안 하면 대번에 문자가 와 있다. 차단했냐고. 아니면 전화가 온다. 첫 마디는 "차단했어?"그러나 전화기 속 정색한 목소리에서 이미 보인다. 웃음을 참느라 입가 한쪽이 씰룩씰룩하고 있는 모습. 처음에는 차단이라는 말에 정말 깜짝 놀랐었다. 쉽게 하는 행동이 아니고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는 게 절대 아닌데, 나랑 언니 사이에 차단이라는 말을 쓰다니 뭐가 잘못됐나 싶었다. 여섯 살이나 많은 언니에게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나한테 뭐 서운한 게 있나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내가 더 예쁜 것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하나, 내가 더 어려서 미안하다 해야 하나, 이건 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냥 내가 가진 건데 언니 기분 풀어주려면 그래도 이런 민망한 말을 해야 하나 했다. 난 예의 있는 사람이고, 마음이 매우 선하고 착한 사람이니 내가 굳이 미안하지 않아도 언니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어떤 말이라도 해야 했다. 차단이라는 말에 말문이 막혔지만 그렇게 막힌 채로 가만히 있으면 언니가 또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른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왜 그래, 차단이라니, 내가 연락을 못했네." 하면서 웃었을 것이다. 언니의 반응은 기억한다. "됐어!" 길게 빼지도 않는다. 아주 호박 썰 듯 딱딱 끊어지는 말. 나무 도마에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처럼 됐. 어. 발음도 또박또박하다.
언니를 알게 된 지도 6년이 되었나 보다. 이제는 나도 만만치 않다. 이제는 언니가 무슨 소리를 해도 다 받아친다. 진짜 머리를 한쪽에 내려두고 하는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언니는 둘 중 하나다. 빵 터져서 웃느라 말을 못 하다가 "너 때문에 배 아프잖아!" 소리를 버럭 지르거나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다가 목소리에 힘을 확 빼고 "잠이나 자." 하거나.
요즘은 나한테 전화해서 맨날 첫 마디가 "잤어?" 한다. 내 목소리는 원래 이렇게 저음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자다 깬 목소리라고 한다. 언니한테 전화할 일이 생겼다.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내가 언니를 약 올릴 차례니까. 여보세요도 아니고 항상 "응" 또는 "어" 또는 "왜"로 전화를 받는 언니. 엇, 언니 목소리가 좀 잠겼어야 내가 놀리는데 너무 청량하고 맑고 높다. 잠자다 받은 게 아니네. 오늘이 기회였는데 내일 또 전화할까, 언니 잘 시간에 전화할까 머리를 굴리다가 내 입이 먼저 해냈다.
“잤지? 어? 자다가 좀 전에 일어나서 물 한 모금 딱 마시고 있는데 내가 전화한 거지? 맞지? 목소리가 물에 촉촉히 젖어서 너무 예쁘잖아? 내가 다 알아. 잠 좀 그만 자라고! 좀 일찍 일어나 지금 몇 신데 잠을 아직 자!" 언니를 약 올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말을 계속했다. 언니가 여기서 아니라고 하며 내 말을 끊으면 나는 지는 거다. 길게 길게, 되는대로 아무 말 대잔치를 쏟아냈다. 그래도 언니가 이기고 말았다. 다 듣더니 마지막에 "아니라고. 나 방금 밥 먹었다고."
밥 먹은 걸 가지고 언니를 타박할 순 없다. 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내가 신나게 아무 말 대잔치를 계속할 수 있으니까. 오늘 정말 글을 쓰기 싫었는데 언니 이야기 쓰다가 30분이 지나버렸다. 지금 전화해 볼까? 애들 밥 챙기느라 바쁜데 왜 전화했냐고 버럭버럭할 것이 분명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