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
글쓰기가 나를 깨우기 시작한 지 약 20일째인데 오늘은 깨워도 너무 일찍 깨웠다. 새벽 네 시 이십 분이라니? 새도 잠자는 시간에 눈을 뜨다니 이건 글쓰기가 나랑 한 번 해보자고 덤비는 느낌이다. 이 시간에 깨워도 일어나서 쓸래? 쓰고 있습니다 글쓰기님. 저는 당신을 이길 생각이 없고, 질 생각도 없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 없이 그냥 오래 같이 가면 안 되겠습니까?
차소리도 들리지 않고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다. 마치 옷장 속에 들어가면 다른 나라가 나오는 소설처럼 이것 참 묘한 느낌이다. 이상해서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한 문장 쓰고 멈추고, 또 한 문장 쓰고 멈추고. 잠이 덜 깼군. 하지만 쓰기로 한 것이니 쓴다. 남편이 보통 이 시간 즈음 일어나서 내 속으로만 '나이 들어서 그런가? 할아버지가 되고 있는 징조인가?' 했었다. 이제 나도 그 반열에 들어섰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그저께 남편은 프랑스로 출장을 갔다. 어제 파리에 도착했고, 오늘 남아메리카에 있는 프랑스령 기아나로 간다고 했다. 기니피그가 생각나는 이름이다. 거진 한 달간 아빠가 다른 나라로 간다고 하니 애들은 너무나 서운해했고 특히 큰 애는 펑펑 울었다. 자기 전에 울고, 일어나서 울면서 밀려오는 감정을 쏟아냈다. 이렇게까지 운 적은 없었는데 자기편이 잠시 사라지는 느낌인가 보다. 나는 이것저것 챙기기 담당이고 돌아서면 글 쓴다고 앉아 있지만 남편은 애들 까르륵 넘어가게 잘 놀아준다. 같이 놀 사람이 사라지니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일 수밖에 없다.
"엄마, 우리가 빨래도 널어줄게!" 아빠가 엄마랑 동생 잘 지키고 있으라고 했다더니 집안일도 당부하고 갔나 보다. 널어져 있는 다 마른 빨래가 먼저 눈에 보여서 "걷어주기도 해야지?" 했더니 아들은 빨래를 걷어 앉아서 개며 조용히 말했다 "고맙다고 할 줄 알았더니만..." 내가 아무튼 이렇다. 해야 할 일이 먼저 보이는 것이 문제다. 바로 옆에 앉아서 "고마워, 고마워! 정말 고마워! 빨래도 도와주고 이런 아들이 어디 있어? 고마워!" 옆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딸이 레이저를 쏘고 있다. 더 쏘기 전에 빨리 말해야 한다. "이런 딸도 없지 그치? 고마워! 엄마 도와줘서 고마워!" 하고 안아줬다. 레이저 종료, 씽긋 웃는 얼굴이 참 예쁘다. 휴우.
미국에 대해 가진 로망과 환상만큼이나 강하게 갖고 있었던 건 프랑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었다. 고등학교 때 프랑스어 선생님께 빠졌고, 그분의 완벽주의, 실수 없는 주관식 채점, 신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일을 철저히 잘하시는 분이었고, 다른 선생님들보다 빠르게 하는 성격이 한몫한 것인데 어린 나이에 그런 어른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1점 부족해서 서울대 떨어져. 실수하지 마." 여전히 그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서울대는 아무나 가는 줄 알았지. 근데 아니더구만.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 없어서 근처에도 못 갔다. 1점이 아니라 몇십 점 부족해서 우리 할머니의 "손녀 서울대 수석 입학" 꿈은 처참히 무너졌다. 고3 3월 모의고사를 보고 나서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수석 입학이 안될 줄 아시고 미리 가셨는지도 모르겠다.
칼텍 덕분에 만난 여러 나라 사람들 중에 역시나 프랑스 사람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었고, 내 레이더망에 바로 걸렸다. 집 구해주신 분, 독일 남자랑 결혼한 프랑스 엄마, 그 엄마의 친정 부모님, 남편 따라 미국 와서 이혼한 프랑스 엄마, 그리고 칼텍 우먼스 클럽에 있던 프랑스 배우는 모임까지 미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프랑스어 배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까지 하기엔 너무 힘들었고, 프랑스 사람들을 종종 만나고, 아는 프랑스어를 몇 마디씩 해보는 것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얼굴색이 다르고 먹는 것이 달라도 아이 키우는 엄마로 퉁 칠 수 있을 만큼 엄마들의 삶은 너무나 비슷했다. 국적 상관없이 육아라는 주제 하나면 순식간에 성토대회가 열렸다. 한창 유행이었고 지금도 팔리는 프랑스 육아 책처럼 키울까 싶어 물어보니 "대체 그게 뭐야? 잠 못 자서 죽겠는데! 유모차 밖에 세워두고 아기 재우는 게 프랑스 육아인가? 난 잘 모르겠네." 하며 박장대소하던 프랑스 엄마 덕에 많이 웃었었다.
남편은 추석 때 애들 데리고 파리로 올 거냐고 물었었다. 나는 다 됐다고 했다. 프랑스도 이제 궁금하지 않고, 바게트 크롸상은 우리나라에도 많으니 안 가도 된다고 했다. 사실 비행기도 여행도 생각만 해도 지친다. 대신 먹방러들이 가진 펜트리처럼 우리 집도 먹을 것으로 꽉꽉 채워두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 그 유명한 C로 시작하는 걸 사 오시던지." 했더니 "당신이 좋아하는 C로 시작하는 다른 게 있잖아. Cash." 13년 살더니 눈치가 빨라졌다. 봉투에 포스트잇 가득 채운 편지를 붙여서 주고 갔다. 편지보다 봉투가 얼마나 도톰한가 스캔하고 있는 내 눈이 좀 민망했지만 내 눈알이 굴러가는 것까지 보고 있지는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