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벌새를 매일 관찰하면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다투는 장면입니다. 몸 길이 약 9cm, 참새보다도 작은 새들이 왜 이렇게 싸우는 걸까요?
<Hummingbirds>(Orenstein, 2014)에 따르면, 꿀이 있는 꽃이 있는 곳은 추후 아기새를 키우기에 적절하기 때문에 자기 영역으로 확보한다고 합니다. 특히 수컷이 영역 확보에 적극적인데 다른 벌새가 오면 침입자로 생각하고 쫓아냅니다. 다른 수컷은 물론이고 암컷이 와도 쉽게 자기 영역을 허락하지 않지만 보통 영역에 자주 오는 암컷과 번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9월 12일, 벌새 피더(feeder)의 손잡이에 앉아 있는 벌새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 후로 매일 와서 자주 손잡이에 앉아 있습니다. 벌새는 나무 가지 꼭대기, 전선 등에 앉아서 자기 영역을 지킨다고 합니다(Orenstein, 2014).
제가 설치한 벌새 피더의 가장 높은 곳인 손잡이에 앉아 "여긴 내 영역이야!"라고 외치는 셈입니다.
매일 보다 보니 이 벌새의 이름이 궁금해졌습니다. 주황빛 배, 녹색 등, 꽃잎처럼 펼쳐지는 꼬리 모양이 특징인 앨런스 벌새(Allen's Hummingbird)였습니다. 찰스 앨런(Charles Andrew Allen)이 1879년 캘리포니아에서 발견한 새여서 이름에 발견한 사람 성이 들어가 있습니다. 목 주변에 자줏빛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른이 되고 있는 수컷입니다.
혼자 있을 땐 잘 먹지도 않고 누가 오나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새가 가까이에 오면 쏜살같이 달려듭니다. 배 고파서 온 새는 어떻게든 먹어보려고 피해서 앉아보지만 금세 공격 당하기 일쑤입니다.
https://youtube.com/shorts/TcCjZ-uDmww?feature=shared
아래 사진의 오른쪽이 터줏대감입니다. 쫓아내도 다시 와서 먹고 있는 새를 아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왼쪽에 앉은 손님은 한 모금이라도 먹고 가려고 피더에 입을 댑니다.
자기 영역에 들어온 것도 불편한데 밥을 먹다니요?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로 날아올라서 위협하고 쫓아냈습니다. 나눠 먹으면 좋을 텐데 그런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지켜보는 저로서는 그저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Noah Strycker의 탐조 경험을 엮은 책 <The Thing with Feathers> (2015)에서 작가는 벌새 피더를 여러 개 설치해도 싸움이 줄어들지 않아 결국엔 피더를 없앴다고 해요.
칠레에 사는 녹색등화관벌새(Green-backed Fire crowns)는 온도가 낮아지면 영역 다툼을 덜 한다고 합니다. 체온 유지만으로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싸우기까지 하면 자칫 자기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Orenstein, 2014).
40도를 육박하던 이곳 캘리포니아 날씨가 이제는 최저 15도, 최고 28도 정도로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겨울이 오면 벌새들의 다툼이 줄어들고 서로 나눠 먹기 시작할까요?
참고문헌
1. Orenstein. R.(2014). Hummingbirds. New York: Firefly Books.
2. Strycker, N.(2015). The Thing with Feathers. New York : Riverhead Books.
이 글은 2024년 9월29일 오마이뉴스 기사로 채택되었습니다. https://omn.kr/2ac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