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산부인과
" 여보 어제 전화해보니 임신수치 다른 병원에서 확인해서 팩스로 자료만 보내면 안가도 된다고 하네."
회사 복직 후 다녔던 병원은 항상 대기가 두세시간이 기본이어서 어차피 임신도 아닌데 많은 시간을 병원에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시간 대기를 하다보면 심신이 지치고 에너지가 뺏기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근처 병원에 가 피검사를 하고 식사를 하려고 했으나 우리는 조금 전 언쟁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 내가 한의원에 가는게 왜 여보 눈에는 쓸데없는 짓 같아 보이는데?"
신랑은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 손발이 따듯해야 임신이 잘된다더라. 임신잘되게 하는 한의원이 있다더라.' 이런 모든 말들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고 [사실 새벽두시에 출발해서 유명하다는 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었다 실패한 전적이 있기 때문에 더 그런걸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전 54세에 시험관으로 임신한 어머니의 사연을 보게 됬고 그 한의원에가서 한약을 짖겠다는 나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운동을 하고 시험관에 좀 더 집중하자'고 했다.
"이번달 시험관도 하기 싫었는데 여보가 하고 싶어해서 마지막으로 이식 했던거고 지금 생리도 제대로 안 터져서 지난번처럼 몸상태 안좋아진 걸까봐 얼마나 걱정되는 지 알아? "
일년 전 휴직을 하고 아이를 준비하려는 찰나 몸을 만들고 시험관을 하고 싶다고 했으나 신랑은 난소의 나이가 최대한 젊을 때 빨리 준비하자고 했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팔관 조영술을 한 후 5달 동안 생리를 안하고 몸에 염증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이 있었다. 그 시기에 생리가 적은 양으로 나왔다 안나왔다를 반복적으로 하던 상황이 있었던 터라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 알겠어. 그럼 내가 하자고 해서 이번에 이식했다고 하고 몸도 안 좋아졌다고 하니 나는 앞으로 더이상 이야기 안할테니까 여보가 하고 싶은 대로 다해 ."
아마 한번 더 최선을 다하겠다는 나의 마음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기를 바랬는데 신랑의 반응에 괜히 날이 선것도 있었다.
따르릉. 마침 전화가 왔다.
" 피검사 결과로 전화드렸어요. 임신수치는 13이에요. 낮은 수치에요 "
" 아 네. 그러니까 임신이 아니라는 거죠 ? "
" 아니요. 임신은 맞죠 "
" 네 ?? "
" 그런데 수치는 낮으니까 일단 시술 병원에 한번 문의 해보세요 "
너무나 당황스러운 전화였다. 나의 표정을 보고 남편이 물었다.
" 머래 .. 왜 ?"
" 임신이라네.. ?"
" 임신이라고 ? 임신이라고 ? "
손을 입으로 가리며 갑자기 흐느꼈다.
" 그런데 수치가 좀 낮다고 기존 병원 가보라네. "
너무 방심 했는지 믿기지 않았다.
진료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 임신수치가 13이라고 기존 병원 방문을 해보라고 하더라구요. "
침착하게 의사선생님은 답했다.
" 이틀 뒤 수치를 한번 더 봐야 해요 "
아.. 그럼 임신 확정은 아니구나? 그럴줄 알았지. 나한테 임신이 찾아올리 없다.
" 이틀 뒤에 다른병원에서 확인하고 어차피 수치가 낮으면 병원 방문 안해도 되는 거죠? "
당연히 낮은 임신수치로 기대를 하지 않았고 또 방문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워낙 실패를 많이 했기 때문에 기대감이 전혀 없었다.
" 그렇긴 한데 그래도 와서 한번 보시는게... 잘될거라고 생각하고 진행하셔야죠 "
" 아 그럼.. 방문 하도록 할게요 "
전혀 기대감이 없었지만 방문하여 검사를 진행했고 두번째 검사는 88로 더블링이 잘 된 상태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혀 믿기지 않았다. 에이 이번만 잘된거지.. 굳이.. 기대하지 말자..
" 우리가 과연 임신일까 ?"
" 임신이야 여보. 지금 임신 한거야. "
나는 계속 믿기지 않아 신랑에게 재차 물었다.
" 에이 그래도 기대 하지마. "
" 웅 안되더라도 우리 여기 까지 온거에 감사하자. "
안좋은 상황이 와도 감사하자는 말로 서로를 격려했고 말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설레하는 서로를 바라보는게 너무 좋았다.
이틀뒤 검사는 피검사만 하면 되고 휴가가 얼마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침일찍 가서 제일 처음으로 검사 를 했다. 결과는 듣지 못한 채 돌아와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 병원이에요. 피검사 수치는 168로 더블링 잘 되었어요. "
내심 더 많이 오르길 기대했지만 조금 못 미친다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했다.
" 좋은 건가요? 두배는 아니지 않아요 ? "
" 수치는 계속 오르고 있고 또 원장님이 토요일 오시면 초음파 보자고 하시니 그때 오셔서 한번 더 상담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168로 수치가 잘 올라 있었고 낮은 수치긴 했지만 계속 오르는 중이었다.
" 믿을 수 없어.. 말도 안돼. "
얼마나 당황스럽고 믿기지 않는지 일주일 내내 인터넷을 검색하며 임신수치만 계속 서치했다. 임신수치가 낮더라도 더블링만 잘되면 된다는 말과 수치가 낮다면 늦은 착상일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세지가 많아서 기대감이 오르기 시작했다. 신랑과 나의 이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11월 1일 병원 방문을 했을 때 대기 시간이 얼마나 지옥같던지... 엉덩이가 들썩들썩 하는걸 간신히 참았다.
진료실에 들어갔고 천천히 초음파화면을 바라봤다. 침을 꿀꺽삼켰고 너무 조마조마했다.
" 아빠. 이리 와보세요 "
선생님은 남편을 불렀다. 신랑은 아빠라는 말을 처음들어 그런지 본인한테 이야기 하는지 모르는것 같았다.
" 여보! 아빠! 이리와보래"
" 아기집이 생겼네요. 중간에 난황이에요. 아이가 빨리 크는 것 같아요 "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 흑흑흑... 아기집이에요 ?"
" 네 아기집이에요. 임신입니다. "
" 흑흑흑... 임신이에요.. 흑흑흑"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휴지를 건네주는 간호사분이 너무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선생님은 다음 주에 심장 소리를 듣자고 했다.
진료실을 나오고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동안 서서 남편을 꼭 안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 임신이라니... '
그 때의 감격은 말로 표현할수가 없었다. 10번의 난자 체취와 4번의 시험관 실패... 체취 할때마다 몇개의 난자가 나왔을까 배아는 몇개가 만들어졌을까. [ 남들보다 난자 수가 항상 적었다. ]매순간순간 실패와 실망의 감정에 휩싸였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근무하는 직장 후배가 같이 임신을 준비했는데 그 친구는 임신을 해 육아휴직을 들어갔다. 그때 얼마나 비참하던지. 나보다 8살이나 어렸고 임신을 할때는 나이가 깡패라지만... 참 비참했다 ... 그리고 여자로서의 수치심... 항상 나를 따라왔던 감정... 나는 임신이 꼭 하고 싶었다. 요즘은 딩크족이고 결혼은 선택이라는 말들도 있지만 내가 선택한건 가정이었고 또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남들은 건강한 아이 잘만 낳던데..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안되는 걸까... 항상 남몰래 삼키던 감정이었다. 우리가 아이를 준비하면서 항상 했던 말이 있다.
" 우리가 삼년만 더 빨리 만났다면 ... "
시간을 돌릴수도 없고 아이를 준비하면서 후회만 가득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좀처럼 싸우지 않는 우리도 아이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종종 높아졌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다 보상 받는것 같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또 당당해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이 말했다.
" 아빠라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데 아빠라고 하더라. "
기분이 생소하면서 좋았나보다. 남편의 그 기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우리는 너무 행복한 시작을 그리고 있었다.
"내 인생의 1막은 싱글일때고 2막은 결혼 3막은 엄마야.. 이제 3막 시작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