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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im Nov 09. 2023

도넛의 유래

경험해 봐야 아는 것, 추억의 음식 

미국 음식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도넛이다. 뉴욕타임스를 옆구리에 끼고 도넛과 커피를 들고 바쁘게 출근하는 뉴요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거리에서 커피와 도넛을 먹는 경찰들도 생각난다. 도넛은 바쁜 현대인들의 간단한 끼니를 때워주는 미국 서민 음식의 대표자라 할 수 있다. 


도넛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과거 미국에 이민 온 네덜란드계 미국인이 즐겨 먹은 음식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 튀김 요리를 즐겨 먹은 네덜란드인의 음식 중 하나로 간단한 레시피 덕분에 쉽게 자리를 잡은 음식이기도 하다. 밀가루 반죽을 동그랗게 말아 던져 건져낸 뒤, 설탕에 굴리면 끝. 


원래 도넛은 지금의 구멍 난 고리 형태가 아니라 우리나라 찹쌀 도넛 같은 둥근 모양이었다. 지금의 고리모양이 된 것에 대한 설도 여러 가지가 있다. 선원들이 배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동안 바퀴에 두 손을 얹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쉽게 먹기 위해서 뚫었다는 둥 모양이 덜 한 도넛을 아들에게 주다가 고안되었다는 둥. 현재는 안쪽까지 골고루 빠르게 익히기 위해 구멍을 뚫는 모양이 이라고 한다. 


유래가 어찌 되었건 도넛은 간단한 조리법 플러스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 전역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특히 전쟁을 통해 그 인기가 높아진다. 1차, 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군과 미군들을 위해 최전선에서도 트럭에서 직접 도넛을 튀기며 커피와 함께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대공황 시절에는 실업자에게 베푸는 구호식으로 커피와 도넛이 많이 애용되었다고 한다. 고열량식이니 빈민층에게도 열량을 채울 수 있는 고마운 음식이었던 것이다. 이만하면 가성비, 가심비 모두 최고의 음식이었던 셈이다. 


가난한 이들의 주식이 되어주었던 이 도넛이 최근에는 인체에 유해한 음식으로 규정되어 예전만큼 인기가 덜 하다. 던킨도너츠는 공장 노동자 대상의 식사를 판매하기 위해 1950년대에 설립되었는데 2019년 도넛을 빼고 “Just call me 던킨”이라고 광고하며 회사명을 던킨으로 탈바꿈했다. 도넛이 건강상 유해하다는 평가와 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실제로 던킨은 도넛 매출이 점점 줄어드는 대신 커피 매출이 늘어서라고 했다. 예전에는 상당수 미국인들에게 빵 대신 아침 식사로 많이 이용되었으나 요새는 베이글과 같은 매력적인 아침식사 대용이 많아 더더욱 도넛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듯 한 느낌도 든다. 


성인이 되어 미국에 온 나도 이런저런 편견과 이유로 도넛을 먹지 않았다. 딱히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최근 다양한 도넛을 맛보는 기회가 생기면서 도넛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우유, 초당옥수수, 딸기, 흑임자 도넛 등. 다양한 맛의 도넛을 경험한 곳은 바로 한국의 한 도넛 카페. 


인테리어가 예뻐서 찾아간 집이었는데 마침 함께 글 쓰는 멤버들과 미국으로 출국 전 마지막 모임을 여기서 하게 되었다. 종류별로 도넛을 한 아름 시켜놓고 4 등분해서 나눠먹으며 앞으로의 계획, 글 쓰는 이야기, 책 이야기를 한참 했다. 달콤한 도넛과 함께 달콤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너도 나도 맛있으니 아이들을 준다고 포장도 해갔다. 도넛은 쳐다도 보지 않던 나도 '인생 도넛'이라며 한국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도넛을 마음에 새겼다. 

며칠 전 어디선가 달달한 냄새가 나 그때 한국에서 먹었던 도넛 추억이 떠올랐다. 돌아보니 도넛 집이 하나 있었다. 도넛집에 들어갔다. 내가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았던 도넛을 가만히 보니 단조롭게 생각했던 도넛이 참화려했다. 초코시럽, 딸기시럽을 입은 도넛, 형형색색 스프링클을 곁들인 도넛, 알록달록한 만큼 다양한 달콤함이 느껴졌다. 


나도 모처럼 달달한 도넛을 하나 고르려 줄을 섰다. 내 앞에 한 미국인 친구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엄마에게 말하지 마'라고 하며 학교에 데려다 주기 전 도넛을 먹으러 가는 것이 가장 좋아하는 추억이라며 도넛을 고른다. (하기야 우리 교회에서도 한참 도넛을 줄 때 꼬마들이 도넛 먹는 즐거움에 교회를 온다고 할 정도였다) 


아마도 나는 알지 못했지만 도넛은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일상의 추억을 선물했을 테다. 지금도 여전히 돈이 부족한 학생들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와 도넛 하나로 위안을 얻었을 거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자 혹은 장거리 트럭운전수에게 따뜻한 커피와 달달한 크리스피크림 도넛 하나면 밤운전도 거뜬히 할 수 있는 음식이었을 테다. 


불안함을 견뎌냈던 전쟁 속 군인들의 도넛이 어땠을지를 상상해 본다. 어린 시절 추억을 기리며 위안을 얻기도 했을 테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낭만을 생각했을 수도 있다. 무지한 나는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단지 건강에 좋지 않을까 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나에게도 추억이 생겼으니 가끔 속상할 때 도넛 하나로 위안을 얻고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달달한 글레이즈 도넛을 하나 골랐다. 아직 입에 물지 않았는데도 빙그레 웃음이 난다. 역시 인생은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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