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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야 Jan 15. 2024

내가 이타적이라고?

취준생이 되어서야 '나'를 알다.


2학기를 한창 보내면서 통학을 하던 날들 중 하루였다.

그날은 취업수업을 듣는 날이었는데, 교수님께서 화면에 여러 단어를 띄워주셨다.  


가치관


수업의 주제는 "가치관"이었다.


가치관을 말로써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본인의 삶 속에서 중요한 가치관이 뭐냐는 질문에 바로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을 진행하기 앞서 교수님은 여러 학생들에게 본인의 가치관이 뭐냐고 물어봤지만, 역시나 빠른 시간 내에 답을 있던 학생을 없었다. 


어찌 되었던 자기소개서에서나 면접의 상황에서는 나의 가치관을 표현해야 하는데, 우리가 이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키워드'였다. 성향을 표현하는 키워드들이 72가지 정도 있었는데, 교수님은 종이를 펴서 자신에게 해당하는 키워드를 5분의 시간 동안 열심히 뽑아보라고 하셨다.


나는 고민을 했다. 저 많은 키워드들 중에 나에게 맞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 유연성 있는

- 정보를 수집하는

- 사교적인

- 자기 확신이 있는

- 느낌이 빠른

- 주장을 펴는

- 글을 잘 쓰는

- 미적 감각이 있는

- 적응력이 높은

- 추진력 있는

- 미래지향적인

- 설득을 잘하는




꽤 많은 키워드를 적었다고 생각한 나였다.


교수님께서 질문을 했다. 


"혹시 친구들 중에 키워드가 50개가 넘는 학생이 있을까요?"

                    

나는 그 질문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5..0...개를 적은 사람이 있다고?' 


50개를 적은 친구는 한 명도 없었지만 40개 넘게 적은 친구가 3명, 대부분의 학생들이 20~30개 정도를 뽑았었다. 나는 고작 12개를 적는 데에도 많은 고민을 기울였는데 말이다.


교수님께서 나처럼 10개를 조금 넘게 적은 학생 8명에게 질문을 했다.


"학생은 키워드를 어떤 기준으로 뽑았을까요? 1번 '남들이 나에게 그런 것 같다고 해서', 2번 '그냥 그런 편인 것 같아서' 중에 어떤 기준이었을까요?"


그 학생은 1번이라고 했고, 나 역시 1번을 기준으로 삼아서 뽑았던 키워드들이었다.


나는 여태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나는 어떤 것들을 좋아하고, 어떤 것들을 싫어하는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분도 되지 않는 이 짧은 시간에 나는 나 스스로가 얼마나 '남들을 의식하면서 살았는지'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5분간 적어 내린 이 키워드들조차 남들에게 부정당할까 걱정을 하면서 스스로를 그렇게 평가했을지도 모른다. 늘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고, 내가 하는 행동에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은 나를 둘러싼 갑옷들이 벗겨져서 스스로를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주변에 나를 아는 사람도 없는데 뭐가 그렇게 움츠러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과거의 내가 안타깝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비난이 무서워서, 남들의 평가가 무서워서' 큰 결정을 하거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민하고 주저했었나 싶기도 했다. 나는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는 물론 취업시장에서는 남들과 차별화된 나만의 키워드를 1~2개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맞지만,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을 '그런 편이다'로 장점 키워드를 넓혀보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뭐가 그렇게 남들에게 평가받는 게 무서웠을까 싶었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건대. 그리고 누가 나를 그렇게 평가할까 싶었다.


동시에 교수님께서는 남들에게 이 키워드를 보여주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적어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다고 하셨다. 이때는 개수보다 중요한 것들을 볼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내가 모르는 나를 찾게 될 거라고.




내가 봉사심과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수업을 마치고 곧장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했다. 마침 엄마는 아빠랑 차 한 잔의 여유를 나누고 있었고, 엄마 아빠한테 각각 종이를 주면서 화면 속 키워드들 중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적어보라고 했다. 엄마 아빠가 종이에 적기 전, 내가 남들을 의식해서 키워드를 골랐었는데 너무 부끄러웠다는 말을 했고 부모님은 내가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안타까워하기도 하면서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엄마 아빠는 항상 귀찮은 내색 없이 응했고 지금 생각하면 이런 점들이 24살이 되어도 부모님에게 정말 솔직할 수 있었던 너무 고마운 부분 중에 하나다.)


그렇게 3분의 짧은 시간 동안 엄마 아빠는 '나'를 그리고 '서로'의 키워드를 골랐다. 




엄마가 뽑은 "나"


- 감사하는

- 느낌이 빠른

- 호감이 가는

- 글을 잘 쓰는

- 적응력이 높은

- 도전하는

- 인맥을 활용하는

- 봉사하는

- 이타적인

- 열정적인

- 유머감각이 있는

- 사교적인

- 아이디어가 많은

- 낙관적인

- 학습을 즐기는

- 정보를 수집하는

- 미적감각이 있는

- 미래지향적인

- 호기심이 강한




아빠가 뽑은 "나"


- 글을 잘 쓰는

- 자기 관리를 잘하는

- 봉사하는

- 배려하는

- 이타적인

- 열정적인

- 유머감각이 있는

- 끈기 있는

- 계획적인

- 공감하는

- 학습을 즐기는

- 정보를 수집하는

- 미적감각이 있는

- 미래지향적인

- 논리적인

- 분석적인

- 리더십 있는

- 문제를 해결하는




엄마가 바라보는 '나'와 아빠가 바라보는 '나'는 조금 달랐고, 예상외의 키워드들이 공통적으로 발견되었을 때 너무 놀랬다. 나를 표현하는 키워드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던 '봉사하는', '배려하는', '이타적인'의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들어있었다. 예상외의 결과였다. 교수님께서 했던 말이 정말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이기적이기도 욕심도 많은 사람이라고, 어쩌면 배려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 말로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집안일을 할 때 부르면 툴툴거려도 가장 먼저 옆에 와서 엄마를 돕기도 하고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도 친구가 내 물건을 가지고 싶다고 하면 고민하다 자기 것을 선뜻 내어주기에 바쁘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집안일을 할 때 불러서 도와달라고 할 때 도와주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도왔고, 친구들이 가지고 싶다고 했던 것들은 이미 다 가지고 놀았기 때문에라는 생각으로 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엄마한테 말하니까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남매들 중에 항상 엄마 먼저 옆에 와 있었던 것처럼 그게 그냥 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들이 나에게는 연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일을 시작한 의도는 다르지만 누군가를 그렇게 해서 기쁘게 했던 것들이 지금은 습관이 되어 행동했던 것 같다. 결국 배려의 시작도 '연습'이었다.


예전에는 말을 더욱 직설적으로 내뱉고 내 말을 하기 바빴는데,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 말들에 상처받는 친구들이 생겼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전달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지금까지도 내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의 바탕에도 스스로가 '배려'를 연습해 왔기 때문에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남들이 보는 '나'는 배려와 봉사와 이타심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었다.


짧은 수업에도 많은 것을 배웠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조금 관대 바라볼 것, 그리고 본인은 배려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부부간 서로의 키워드를 골라주는 것은 꽤나 좋은 활동인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는 데에, 서로의 내면을 채울 수 있는 데에 확실한 효과가 있다. 서로 나이가 들면서 자신감을 잃었던 부분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기도 했다. (부정 키워드는 간혹 싸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길ㅎ)



아빠 작업실 옆에는 예쁜 장미가 활짝 피는데 꽤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어느 날 시간이 된다면 '가치관 키워드' '성격묘사 표' 등을 검색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자신을 마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예시 키워드






P.S. 나 자신을 알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아직도 사실 잘 몰라요.


2024.01.15    날씨 맑음     기록 : 악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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