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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야 Nov 30. 2023

다시는 지진의 공포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2016년 경주 지진, 7년 전이지만 생생한 공포를 또 느꼈다.


아빠가 모임으로 해외여행을 가서 엄마랑 둘이서 큰 침대에 잠들었다.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며 조용한 시골집에서 평소와 똑같이 잠들었다. 

엄마는 TV를 보다가 잠들었고, 나는 평소에 늦은 잠 시간을 맞춰서 잠들었다.


우리집 바로 뒤에는 산이 있다. 그래서 어떤 소리든 울림이 크게 들린다.


.....쿠쿠쿠쿠쿵...!....


하는 소리가 산에서 들리자마자 엄마와 동시에 눈을 떴고,

곧이어 바로 침대가 흔들렸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재난경보문자가 울렸다.


바로 안경을 끼고서는 남동생 방으로 뛰어가서 잠에 취한 남동생을 깨우고는 일단 거실 불을 켰다.

다행인지 흔들리지 않고 잠잠해졌지만, 놀란 심장을 어찌할 순 없었다.


또 경주였다. 울산에 사는 우리는 경주랑 가까이 있다. 그래서 떨림이 더 잘 느껴진달까.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공포를 또 겪었다.


나는 잘 때 정말 둔한 편이다. 

평소에 누가 날 쳐도 깨지 않고, 한 번 잠들면 10시간 이상은 깨지도 않고 잠을 잔다. 

이런 내가 무의식 중에 땅이 울리는 소리를 먼저 듣고 곧바로 반응했던 '공포'로부터 나온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2016년 중학교 3학년이었다. 경주 지진을 처음 겪기 전까지는 지진 대피 훈련이 있어도 그저 형식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친구들끼리 떠들면서 허리를 숙이고 교내 슬리퍼를 신고 운동장 나가는 날 정도였다.


중간고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서 공부 중이었다.

노쇄한 건물이라서 종종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에도 창문이 덜덜 떨리고 간혹 평소보다 조금 낮은 고도로 비행기가 움직이는 날이면 책상이 덜덜 떨리기도 했었다.


수학문제를 풀던 중, 갑자기 책상과 창문이 흔들렸다. 크게 흔들렸다. 건물이 흔들렸다.

흔들림과 동시에 학원 선생님은 우리를 밖으로 대피시켰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바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놀란 엄마가 학원로 데리러 가겠다고 기다리라 했다.

학원과 우리집은 차로 7분 거리라서 엄마가 곧장 데리러 왔다.


둘째 언니까지 데리고 엄마와 집으로 왔다.


또 지진이 나는 건 아니냐면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는 불을 켜려고 벽을 보고 있었는데, 집에 있는 수많은 도자기가 떨리는 소리와 함께 집이 또 흔들렸다.

처음 온 지진보다 더 큰 떨림이었다.


바로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통신사도 먹통이었는지 전화도 되지 않았다.

쌓아둔 도자기들 중 떨어지거나 깨진 그릇 하나 없었지만, 마당에 벽돌이 몇 가지 떨어져 있었다.

손은 떨리고 있었고, 엄마는 빠른 거동이 불편하신 친할머니를 꽉 잡고서 마당을 나왔다.


집이 떨리던 순간이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집에서 잘 수가 없었다. 도자기 떨리는 소리가 너무 공포였다.

둘째 언니, 나, 남동생 우리는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 마당에 주차한 카니발 의자를 다 피고는 이불을 깔고 히터 켜진 차에서 잤다. 


새벽에도 미세한 여진을 느끼면서 잠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우린 비행기 소리, 집과 가까이 있는 KTX 소리, 헬리콥터 소리만 들려도 예민해졌다.


1년이 지났다. 


이번엔 포항이었다. 둘째 언니의 수능을 앞두고는 지진이 났었다. 같은 공포를 또 겪었다.




잊고 지냈다. 6년이 지나고는 큰 소리에도, 떨리는 소리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줄 알았다.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지진의 공포를 적어도 내가 또 겪고 싶진 않았는데,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는 이젠 대피에 요령이 생긴 건지 몸이 제법 민첩해졌다.....ㅎㅏ.....


잠도 못 들고는 1시간 동안 지진 속보를 봤다. 혹시 또 여진이 오는 건 아닐까 하며.

극도로 긴장했던 몸이 풀리면서 피로감을 느꼈다. 


아빠가 하필 자리를 비웠을 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나라도 엄마 옆에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부터 들었다. 엄마는 아직도 지나가는 KTX소리에 놀란다. 오늘 일이 있기 전까지도 심장 두근거림이 심했는데, 오늘은 아침까지도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아침에 학교에서 지진을 느꼈냐고 물어보면 재난경보문자 알림 때문에 눈을 떴다고만 들었지 떨림은 느꼈다는 사람도 많았다. 


겪은 사람들만 아는 이 공포가 더 싫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으니까 적어도 나 살아갈 때는 더 없었으면 좋겠다.





P.S. 좋은 글을 써보고 싶어서 모아둔 글감들을 제치고, 바로 끄적인 글이 지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23.11.30    날씨 맑음    기록 : 악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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