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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야 Aug 26. 2023

대화 :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모두가 다 다른데, 어떻게 하나하나 이해겠는가. 그냥 보는 거지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23년, 아니 짧은 21년을 살면서도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마주쳤다 생각하는데,

앞으로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왔다 말한다.


다른 삶을 살아왔는데 어떻게 한 명 한 명 이해하고 하나하나 이해하려 했는지.

너무 지치더라.


그냥 그대로 보는 것


나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녹여서 이해하려고 하면 가끔 '이해가 되지 않고, 왜 그러지? 왜 저러지?'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꾸 나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 시도하는 내 방법은 "그럴 수도 있지"다.



"그럴 수도 있지"





아빠가 애정을 가지고 키우는 구피들도 한 공간에서 새끼를 놓으면서도 부딪힘 없이 오래 살고 있다.





"대화의 시작은 가족으로부터"


몇 년을 같이 산 가족들도 때론 이해하기 어려운데, 내가 과연 누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같은 배에서 태어났지만 누구는 첫째, 누구는 둘째, 누구는 셋째, 넷째인 것부터 다르다. 우리 네 남매만 봐도 이미 다른 삶의 시작선에서 성장하며 가진 저마다의 사고방식과 현재의 삶을 가지고 있는데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얼마나 다르겠는가.


잠시 마당에 나와서 창문으로 보이는 대화하는 식구 모습을 찍어봤는데 너무 포근해 보였다. 또 우리 집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일어나면 눈뜨는 대로, 나른한 오후 여유가 생기는 대로, 저녁을 먹고 배가 부른 대로 차를 마신다. 그러면서 부모님께서는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에게 차를 건네주며 우리에게 물어보고, 대화하고 때론 조언을 해주셨다. 그래서 부모님과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대화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실없는 웃음으로 떠들기도, 진지한 대화를 하며 고민하기도, 서로 슬펐던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를 해주기도 한다.


어릴 적에는 그냥 마구잡이로 내 이야기만 전하고 '속상했어요. 화가 났어요. 짜증이 나요. 기분이 좋아요. 웃겨요.' 또는 '어떻게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런 고민이 있는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를 물어봤다. 그런데 대학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아르바이트도 해보면서 꽤나 경험치가 쌓인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부모님 얘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되물어보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부모님에게 때론 "~이렇게 해보는 게 어때요?"라는 말을 전하게 될 때 드디어 나와 부모님이 같은 내용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 느낀다.


엄마가 되었든 아빠가 되었든 상대가 누구더라도 한 공간에서 대화를 한다. 특히 귀중한 시간은 식구 6명이 모두 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할 때인 것 같다. 누구 한 명 빠짐없이 대화에 참여한다. 그게 어떠한 주제가 되었든.


엄마와 아빠 각각에게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보다 부모님과 함께 할 때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와 아빠도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서로 생각이 다르기에 함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로에 대해서 알아간 것이 얼마나 나의 사고에 중요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네 남매도 정말 친하다. 큰언니는 나의 고민 해결사 역할을 해줬고, 둘째 언니는 나의 첫 번째 단짝 친구, 막둥이에게는 이유 없는 애정을 줄 수 있다. 정말 어릴 적 빼고는 크게 싸운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적으면서도 떠오르는 기억들이 몇 있다면 싸운 적이 거의 없다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무튼 정말 친하게 지내는 내 혈육 친구들이다. 부모님과 소통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특히나 세 자매와 함께 시작된다. 동생은 아직 어려서 대화에 참여하긴 어렵지만(그래서 우리만 대화한다고 질투하기도 한다. 귀엽다) 우리의 대화에서도 예전과 많이 변화된 모습이 보인다. 그만큼 우리 다 많이 성장했더라!


대화가 많은 집이 행복한 것은 사실인 것 같고,

대화가 많은 우리 식구들은 나의 든든한 뿌리다.





"그래서 지금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시사/경제에 대해 꽤나 많은 부분을 잘 모른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삶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관계에서의 중요한 포인트를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기반은 가족 간의 대화에서 시작했다.) 물론 나도 실수도 정말 많이 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행동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하기도 했다.(실수들이 모여서 성장을 이루기도 하더라. 늦어도 사과하기. 가끔은 유하게 넘어가기도 하기.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도 가끔은 삼키기. 등) 물론 지금도 실수한다...(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학창 시절을 비롯하여 나는... 할 말을 무조건 다 하는 사람이었다.


https://brunch.co.kr/@croc-hyeon/1

(이 글만 봐도 자유롭고 산 내가 얼마나 고집이 있는지, 당차게 말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팩트폭격기'라는 말이 찰떡일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누군가는 짐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MBTI는 ESTP이다.) 친구들은 여전히 힘든 고민의 해결을 위해 나에게 달려오기도 한다. 그리고 때론 너무 솔직하게 표현을 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겠다. 사과할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야속하게도 상처를 주고 서로가 힘들어봐야 사과를 할 줄 알았던 것 같다. 지금은 최대한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하려고 노력하지만 예전에는 얼마나 더 고집이 있었는지 '내가 틀린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어리석었던 건 틀렸다고 생각할 필요 없이 누군가가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실수한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만큼 내가 반대로 상처를 받은 부분이 생기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반복되면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했다.(흔히 말해 '손절'이라고 하는 것.) 예전에는 무조건적으로 관계를 딱 선 그어둔 것처럼 나누려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어색하지 않더라도 내가 먼저 손 내밀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다치기 싫어서인지 그러기도 한다.




아무튼 남들이 보기에 나도 어쩌면 '쟤는 왜 저래'의 포인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나조차도 그 마음을 알기에 " 그럴 수도 있지 - 받아들이기"를 연습해보려고 한다. (물론 정말 잘못된 상황이라면 내 소신을 말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무조건적인 받아들임은 나를 멍청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저 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부분에서 "그럴 수도 있지"를 만들면 적어도 내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자꾸 스스로 힘들어하는 부분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어쩌면 이기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소통 속에서 배움이 있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아직 미숙한 글쓰기로 내용이 두서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쓰다보면 나아지겠지. 생각한다.




2023.08.26     날씨 맑음     기록 : 악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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